(O서킷 트레일 1일 차)
배낭여행 5일 차)
산행지 : 칠레 파타고니아 O서킷 트레일
산행일 : 2023년 3월 09일 목요일
누구랑 : 산찾사 & 오석민
동경로)
호텔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
나탈레스 버스 정류장 07:10 출발
국립공원입구 탐방안내소(라구나 아마르가) 09:20 도착
셔틀버스로 휴게소(웰컴센터)까지 이동하여 산행 시작 09:57
세론 야영장 도착 14:30
※ 산행거리 : 14Km 산행시간 : 4:30 (오룩스웹에 기록된 거리와 시간으로 표기)
(0 서킷 트레일 1일 차 동선이 표기된 지도)
이른 새벽에 석민씨의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벌써?
그러고 보니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호텔 조식은 6시부터 준다고 했으니 우린 샤워 후
배낭을 꾸려 곧바로 떠날 만반의 준비를 끝낸 후 식당을 찾아드니
여긴 한 사람 분량의 식사를 기본으로 포장해 놓고 기타 음료와 과일로는
사과와 바나나 그리고 추가로 먹을 수 있는 빵은 물론 계란까지 구비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계란은 날계란이다.
찐 계란인 줄 알고 3개나 집어와 간식으로 챙기려던 나는 좋다 말았다.
ㅋㅋㅋ
석민씨가 사전에 숙소를 예약할 땐 다녀간 여행자들의
선호도를 최우선으로 참고한 이유가 바로 이런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호텔은 이른 아침 첫 로컬버스로 떠나야 할 여행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더구나 가격마저 저렴해 가성비 갑이다.
우린 식사를 끝낸 후 양치만 하면 되니 곧바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 밖은 아직까지 어둠이 내린 이른 새벽....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다 보면 이 골목 저 골목의 숙소마다
우리처럼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들을 옮긴다.
그들 손에는 다들 핸드폰을 보고 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구글맵 지도를 보며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는 여행자다.
그럼 이쯤에선 핸드폰을 집어넣고 그들 꽁무니를 따라가도 무방하다.
드디어 도착한 버스 정류장....
아직도 어스름한 이른 아침의 버스 정류장엔 여행자들로 복작댄다.
우리가 예약한 버스는 07:00 정각에 떠나는 버스인데 여긴 가는 목적지와 시간대 별로
딱히 정해 놓은 승강장을 분류해 놓지 않아 알아서 눈치껏 그리고 아주 잽싸게 올라 타야만 했다.
오늘도 정각에서 10분 늦게 출발한 로컬 버스는 끝없이 광활한 초원을 달린 끝에 깎아지른 듯한
준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라구나 아마르가 국립공원에 우릴 토해 놓았다.
토레스 델 파이네란 지명은
토레스(Torres)가 스페인어로 탑, 그리고 파이네(paine)는 푸른색을 의미한다.
그러니 토레스 델 파이네를 직역하면 푸른 탑이 된다.
이곳 국립공원 북쪽에 위치한 w자형 트레일의 오른쪽 맨 위에
우뚝 솟은 세 봉우리(남봉 중앙봉 북봉)에서 따온 것인데 이 공원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으며 우린 o서킷 트레일을 완주하는 마지막날 그곳을 올라설 예정이다.
아래 사진은 국립공원 아마르가 탐방 안내소의 내부 모습이다.
여기에선 여권번호를 비롯한 신상정보와 트래킹 일정 등을 기록하고 입산료를 지불한다.
우린 그곳에서 석민씨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서류를 보여주고 확인받는 것으로 정식 입산 허가를 받았다.
이젠 산행 초입의 방문자 센터까지 걸어가든
셔틀버스로 가던 트래커의 능력대로 진행하면 된다.
당연 우린 w트레일이나 o서킷 트레일이 시작되는 초입까지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여행자들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자
아주 쾌활하고 통통한 여인이 운행비를 즉석에서 받아 챙긴 후 표를 끊어 준다.
그때 어느 여성이 달러를 내밀자 아주 완고하게 그러나
활짝 미소를 띤 그 여인은 달러 NO. 페소화 o.k를 외친다.
걸어서 갔다면 큰 수고로움을 치를 뻔했다.
의외로 방문자 센터까지 비포장 도로의 언덕을 굽이굽이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모르고 객기 부리다간 큰코다칠 뻔...
드디어 우린 대장정의 출발선에서 등산화 끈을 조였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o서킷 트레일을 시작한다.
순간 설렘과 두려움이 마구 교차했다.
그런 복잡 미묘한 마음을 추슬리고 달래는데 어느새
방문자 센터에서 구입한 석민씨의 뜨거운 커피 한잔이 큰 도움이 되었다.
션찮은 오른쪽 무릎
끊어내지 못한 목감기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긴 여정로 인한 여독.
그로 인해 땅 밑으로 한없이 꺼져 들어갈 듯 느껴지던 몸상태가 잘 견뎌줄지?
그러나 난 해 낼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엔 변함이 없다.
다만 함께 할 동료에게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드디어 우리 둘은 방문자 센터를 등 뒤로 보내는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등로는 방문자 센터 뒤편으로 이어진
평탄한 길을 걷다 보면 이내 갈림길과 마주한다.
여기서 우린 직진길을 외면 후 진행방향 우측길을 택했다.
세론 야영장으로 향한 길은 방문자 센터를 지나서
만나게 된 첫 갈림길을 지나자 구불구불 언덕길로 이어지고 있다.
그 언덕길의 고갯마루에 이르자 석민씨가 배낭을 벗어던져 버린다.
오늘 세론 야영장 까지는 14km의 거리로 걷기 좋은 등로라 이런 풍광엔 이런 여유가 어쩜 당연한 일이다.
우리 뒤를 따라 언덕을 올라서던 외국의 트래커들도
언덕의 고갯마루에선 다들 우리처럼 한동안 포토타임을 갖은 후 출발한다.
이젠 가야 할 시간...
그냥 훌쩍 떠나기엔 아직도 미련이 남았던가?
훗날 석민씨가 내게 말하길
첫 언덕을 올랐을 때 그 느낌과 풍광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좋았단다.
아래 사진에서 석민씨가 바라본 방향으론 흰 눈이 쌓인 고산준봉 옆으로
흰 구름이 감싼 토레스 삼봉으로 짐작된 침봉이 어슴프레 확인된다.
지금 이곳은 여름에서 가을로 향한 길목에 서 있다.
초원의 야생화는 이제 다 지고 씨방만 달고 있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그늘진 곳엔 늦게 피어 올린 꽃들이 한여름 풍성하고 화려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덧 초원을 지난 등로는 우거진 숲 속으로 이어지고
로컬 버스로 함께 이동한 탓에
초반 함께 걸음을 이어가던 트래커들이 하나 둘 주위에서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우리 둘만이 대자연의 품속을 거닐고 있었다.
그나 나나 우린 왁작지껄의 혼잡스럼이 아닌 조용조용한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걷던 중 만난 이 남자...
저 홀로 자기 모습을 담으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기에
내가 그 수고로움 대신해 멋지게 사진을 담아주고 난 후 함께 추억의 사진을 남겼다.
인도 출신의 미국 국적 이 남자는 수다쟁이다.
나는 그 남자의 호들갑이 썩 내키지 않았는데 훗날 계속 만나게 된 산장에선 그는 우릴 본체만체했다.
대다수의 트래커들은 첫 느낌과 인상이 주는 행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석민씨는 그동안 여행에서 만난 인간들은 경험상 세 부류로 나누고 있었다.
1. 인종 나이 성별을 떠나 한 인간으로 서로 간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트래커.
2. 겉과 다른 그러나 뚜렷하게 느낌이 와닿은 가식적인 친절의 트래커.
3. 무례하고 시건방진 쓰레기 인성의 인종 차별주의 트래커.
우린 o서킷 트레일을 완주할 동안 여러 트래커들과
교감을 나누었는데 지금 만난 인도인은 2번째 부류라 볼 수 있다.
등로는 숲 속을 벗어나
점점 고도를 낮추어 가더니
사행천으로 흘러가는 강변을 옆에 둔 초원지대로 내려서고 있다.
그 길을 내려서던 우린 세찬 바람을 한차레 맞았다.
그러나 어제 나탈레스 강변의 공원에서 맞았던 바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려했던 매서움이 다소 누구러진 부드러움을 품고 있어 그때 맛본 추위와 달리 오히려 청량감을 선사한다.
그걸 보면 석민씨가 그날 옷을 안 산건 잘한 일이다.
이제부터 우린 초원을 걷는다.
그 초원엔 말들이 태초부터 그래 온 듯 풀을 뜯으며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우린 한동안 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길게 이어진 초원 한가운데를 우린 한동안 걸었다.
걷는 동안엔 순간순간에 강한 바람이 초원을 훍고 지난다.
그때마다 바람을 피하지 않은 풀잎들은 눕거나 파르르 온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풀잎들이 일제히 파르르 몸을 떨 때면 나는 내가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며 세파에 시달리던 모습으로 투영되어 조용히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어느덧 또 다른 초원으로 연결시켜준 원목다리를 지나면
그간 긴 여정에 지친 여행자의 안식처가 될 줄 세론 야영장이 지척이다.
이미 예전에 w트레일을 걸었던 석민씨는 오늘 세론 야영장까지 이어진 초원을 걸어오며
먼 여정의 고단함에 대한 보상은 다 되었고 예전 걸었던 w트레일보다
이곳에 대한 느낌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드디어 우린 세론 야영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오늘 세론 야영장까진 모든 걸 보고 느낀 감동의 코스였다.
고산준령의 설산과 세찬 바람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활한 초원이 한 줌의 바람에도 일제히 파르르 떨던 모습과 맑고 청명한 하늘에서
느닷없이 내려치던 빗방울까지...
세론 야영장에선 예약자 명단을 확인 후
방문자란에 시작한 곳 내일 가야 할 코스와 국적 이름 등등..
신상명세를 자세히 기입해야 했던 절차를 끝내자
이미 설치 완료된 야영장의 텐트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배정받은 우리 텐트엔 침대의 매트리스와 동급인 안락하고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고
동계용 침낭이 구비돼 있어 하룻밤 머물기엔 완전 최상급 시설을 갖추고 있다.
텐트 안에 짐을 풀고 난 우린 샤워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뜨거운 물은 적당한 수압으로 무한정 쏟아져 내린다.
우린 깔끔하게 샤워 후 보온성 강한 따스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산책에 나섰다.
그러다 어느덧 배고픔이 밀려든 저녁에 식당을 향했다.
식사는 저녁 아침 모두 7시에 제공된다.
그 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하자 푸짐한 식사가 나왔다.
아래는 이날 내가 맛나게 드셔준 저녁 메뉴다.
콩수프
으깬 감자와 버무린 쇠고기 스테이크
통밀빵
오이, 당근, 양배추로 만든 샐러드
우유, 요구르트, 과일 같은 걸 얇게 썰어 넣은 생수
식사 후 텐트에 들어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나는 이날부터 컨디션이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혹시 몰라 난생처음으로 아스피린 한 알을 복용하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 한밤중 화장실을 가려고 텐트를 벗어난 순간 밤 풍경에 감동을 먹었다.
이날밤 달빛이 얼마나 밝던지?
손에 든 헤드렌턴이 무용지물이 될 정도 달빛이 내려앉은 야영장은 아름다웠다.
이런 건 혼자 보면 죄받는다.
ㅋㅋㅋ
그러나 내가 깨우기 전 부산스러운 나 때문였나?
석민씨가 텐트 밖으로 나왔고 우린 한동안 잠들지 못한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