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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eth Jan 19. 2019

브래드 피트 그리고 장동건이라는 배우

A River Runs Through It에서 창궐까지

며칠 전, 한 일 년 전쯤 '다시 봐야지' 하면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사두었던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A River Runs Through It을 봤다. 왜 일 년가량을 묻어두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과거에는 VHR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서 여러 번 본 영화라서 그런지, 고화질로 보는 몬테나의 물살은 내가 기억하는 것 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와이프와 틈만 나면 아이들 데리고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의 도시를 가보려고 하는 터에, 정작 상대적으로 가깝고 저렴한 몬테나는 늘 생각만 하고 아직 가보지를 못했다. 몬테나의 두 거대 국립공원 중 하나인 Glacier National Park에서 우리가 디자인 한 웨딩드레스에 배낭을 걸쳐 매고 산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사진을 보내온 한 신부를 생각하면 나 자신이 창피할 정도다.

그런데 1992년작인 이 영화를 26년이 훌쩍 지난 뒤 다시 보았을 때 가장 신선한 충격은 의외로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 당시 브래드 피트는 신인 배우였고 배우로서의 평가 이전에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의 젊은 시절과 똑 닮았다는 것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많은 미국의 로버트 레드포드 젊은 시절 사생팬들이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보고 즐거운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일화도 생각나고).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당시) 신인 배우의 연기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탄탄해서, 폴 맥클레인이라는 충동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젊은이의 모습을 완벽 그 이상으로 그려내고 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브래드 피트는 누구일까?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왠지 나는 장동건이 떠오른다. 그리고 보니 우연히  얼마 전에 장동건이 열연?한 창궐도 보았다. 워낙 평이 안 좋아서 보지말까 했던 영화인데 그래도 오랫만에 장동건이라는 배우도 볼 수 있겠거니 하는 기대감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든 것 같다.


그러나 기대감은 곧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내가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자세히 분석해서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그때의  나의 인상을 간략하게 적자면, 장동건은 김자준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연기하려고 한 듯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는 피도 눈물도 원래부터 없었던 한 구의 로봇이 되어버려 있었다. 장동건이라는 배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영화와 상업적 재미에 치중한 영화의 차이라고 한다면 브래드 피트 주연의 2004년 작 영화 트로이를 보자. 철저한 상업 블록버스터인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아킬레스 역을 맡아서 스크린 위에서 가장 들여다 보기 흥미로운 캐릭터로서의 아킬레스를 만들어 낸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니서 브래드 피트의 이 연기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 국내 영화 평론가가 장동건을 포함한 몇몇 대형 배우들을 비판하면서 일상연기가 안 되는 배우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상연기란 아마도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거나 또는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에서의 연기 이외의 일상적인 모습, 예를 들면 집에 들어와서 가족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든지, 아니면 편의점에서 담배를 산다든지, 뭐 대충 이런 상황을 연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연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움이라는 아주 중요한 토대 위에 각각의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자신이 연기하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만들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작은 행동들이나 어투 등이 모이게 되면 우리가 그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점점 더 확실해질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정말 중요한 액션이나 클라이맥스에서는 이미 정해진 형태의 특정한 연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상업적인 영화일수록 일상연기는 역설적으로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브래드 피트는 이 일상연기가 정말 잘되는 배우들 중 하나이다. 이런 류의 배우들의  평소 일상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 인물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러운 동시에 그 인물에 대한 호기심은 점차적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더욱 중요한 장면이나 스토리 전개의 완벽한 준비가 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영화팬들이 장동건이라는 배우에게 엄청난 기대를 했던 것이 단순히 그의 외모 때문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친구에서 보여준 신인답지 않은 선이 굵은 연기, 정열과 지적인 감수성 그래서 예술, 독립 영화에서부터 상업적 블록버스터를 아우를 수 있는, 브래드 피트 같은 배우. 장동건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조건과 기회가 주어졌던 국내 몇 안 되는 배우였다. 지금까지의 그의 연기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창궐의 "로봇 김자준"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테니, 언젠가 그가 이 어색하고 단선적인 연기의 껍질을 깨고 나와서 비로소 자기가 연기하는 인물과 하나가 되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는 그가 연기하는 모든 인물들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져 있을 거란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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