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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저녁 Oct 25. 2020

연예인 많이 봐요?

많이 보긴 합니다만,


소개팅과 각종 모임, 심지어는 일가친척들에게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연예인 많이 봐요?”. 공대 출신이 “컴퓨터 잘 고쳐요?”, 문창과 출신이 “소설 잘 써요?”라는 질문을 듣는 것과 비슷한 일이려나. 여하튼 연예계에 기자라는 명함을 들고 한발 걸치면서부터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해진다. 연예인을 질리도록 많이 보긴 하는데 이걸 일주일에 몇 번이라고 정확한 수치로 대답해야 할지, 많이 보긴 하는데 연예인이 아니라 업계 관계자라고 말해도 될지. 종종 함께 술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지만 그게 다 근무의 일환이라고 하면 젠체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답하면 호기심을 가득 담은 상대방의 눈빛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진다. 연예인이 그냥 과장님, 부장님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내게 연예인은 오랫동안 팬심을 품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저 취재원 중 한 명일 뿐인데. 도무지 저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기자를 그만두기 직전까지도 꽤 어려운 숙제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나한테 연예인에 관해 묻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겉으로 티는 못 냈지만).


연예인 많이 보냐는 것 다음으로 공식처럼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연예인 실물 누가 예뻐요? 누가 제일 잘생겼어요?”


연예인 많이 보냐는 궁금증에 비하면 이 질문은 난이도 하 축에도 못 낀다. 실제로 봤을 때 가장 멋졌던 연예인을 대답하면 그만이니까.


“A 배우는 실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마담 투소인 줄 알았다니까요. 모공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B 배우는 잘생겨봐야 얼마나 잘생겼을까 했는데 진짜 말도 못 하게 잘생겼더라고요. 옛날 연예인들이 진짜배기 미남이구나 싶었어요.”


상대는 그제야 흥미를 갖고 놀라워한다. 기다렸던 대답이 나온 거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질문 3단계 끝판왕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 질문도 여지없이 공식처럼 등장한다.


“지라시 그 내용 진짜예요?” 


이쯤 되면 조금 짜증이 난다. 그냥 대충 대답하고 넘기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게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라시 많이 몰라요”라고 답하면 각자 인터넷이나 지인들에게 접한 온갖 지라시 내용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C 배우가 드라마 찍을 때 갑질해서 하차한 거라면서요.’, ‘사실은 이혼한 이유가 이러쿵 저러쿵이라면서요.’ 

그럼 난 또 속이 어지러워진다.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실을 이야기해줘야 할지, 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듣고만 있어야 할지. 괜히 이야기를 보탰다가 ‘내가 아는 기자한테 들었는데 그 소문 진짜래’라는 낭설의 진원지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심지어는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잘 지내? 실시간 검색어에 뜬 지라시 진짜야?’라는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차라리 ‘자니?’가 낫지 지라시 팩트체크가 웬 말이냐.     


남편은 달랐다. 연예인 질문 3종 세트 가운데 단 하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연예인을 많이 보는지, 실물은 누가 제일 예쁜지, 지라시는 사실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럽쇼, 요놈 봐라?!’


늘 겪던 패턴과 달라 흥미로웠다. 연예인 질문 3종 세트 대신, 남편은 본인이 만난 연예인 일화를 쏟아냈다. 브루노 마스가 어떻고, 레이디 가가가 어떻고. 미국 스튜디오에서 인턴 생활하며 만난 팝스타 에피소드를 마구마구 털어놨다. 


‘아뿔싸, 요놈 봐라!?’


나의 여러 유난스러운 구석 중 하나는 ‘아는 척 알레르기’이다. 척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잘남을 동경한다. 말로 떠들지 않아도 대화 중에 뭉근하게 흘러나오는 지적인 향기를 추구한다. 논리 정연한 구조를 갖춘 아는 척이라면 예외. 이게 다 내가 잘나지 못해 생긴 유난스러움이다. 하지만 콩깍지에 씐 것인지 귀신에 씐 것인지. 나는 남편의 잘난 척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색다른 경험담과 지식을 민망해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에 마음이 끌렸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못하는 일이라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콩깍지는 얼마 안 가 벗겨졌다. 남편의 아는 척 범주가 첫 데이트 때 털어놓은 소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마저도 종종 까먹는 남편이었다.


한 번은 해외 출장 중 짐 자무쉬 감독을 보았다고 잔뜩 들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한참 뒤 날아온 남편의 물음표 향연.


“어? 그게 누구야? 근데 자기 거기 몇 시야? 아까 먹은 케밥 무슨 맛이야?”


남편은 짐 자무쉬인지 뭔 무쉬인지보다 유럽 시차와 길거리 음식이 더 궁금했다.


“자기. 자기가 첫 데이트 날 <커피와 담배>가 네 인생 영화라고 한참 얘기했잖아.”

“아, 그랬나? 그게 짐 자무쉬 영화야?”


이런 식이다. 처음엔 황당했는데 이젠 남편이 이럴 때마다 숨넘어가게 웃는 나다.     

종종 남편에게 말한다. 

“자기는 나처럼 까다로운 여자 말고, 작은 이야기에도 눈빛을 반짝이며 신기해하는 여자를 만났으면 더 행복했을 것 같아. 맞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때마다 남편은 대화가 피곤하게 길어질 것을 예감하는지 이렇게 답한다.

“싫어. 난 그냥 자기가 좋아.”


연예인 많이 보냐고 묻던 인연들은 각자 나름의 이상한 구석들이 있었다. 좋게 말해 이상한 구석이지 사실은 구린 면면들. 번지르르한 외면 뒤에 숨은 연민을 자아내는 어둠들. 세상엔, 이 세상엔 정말이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그건 대학 졸업장이나 직업, 말발로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오로지 직접 겪어봐야, 기어이 흑역사를 만들고 나서야 체득할 수 있다. 많이 안다고 다 잘난 건 아니다. 아마도 나는 남편의 건강한 자신감과 자존감에 본능적으로 끌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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