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욤 카네, <보르도 우정 여행>(2019)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르도 우정 여행>의 첫 장면은 <프렌즈: 하얀 거짓말>에서 이미 낯익은, 막스의 시골 별장에서 시작한다.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하는 막스.
귀마개에다 이갈이 방지 마우스피스까지 끼고 잠시 낮잠에 빠진 막스는 악몽에서 깨어난 듯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숨을 헐떡이며 몰아쉰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다시 정신을 차린 막스는 혼자서 부지런히 집을 정돈하고, 마당을 쓰는 등 분주하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역시 예상대로, 하나 둘 모여든 친구들이 막스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집안으로 들어온다. 아마도 깜짝쇼를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친구들을 발견한 막스의 표정은 좋지 않다. 심지어 화를 내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60세 생일 깜짝 파티를 해 주려 했던 친구들은 겸연쩍게 변명을 한다. 그동안 연락이 끊겨서 우리 모두 네가 보고 싶었어. 60번째 생일을 혼자 보내게 할 수는 없잖아...
전편에서는 보지 못했던 여자, 애인으로 보이는 사빈에게, 막스는 막무가내로 자기는 혼자 있고 싶고 생일 파티 따위는 전혀 하고 싶지 않다고 계속 화를 내는데, 갑자기 나타난 낯선 남자로 인해 막스는 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집안을 구경시켜 준다는 핑계로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그 낯선 남자는 집을 팔아 줄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막스는 전처와 헤어진 후, 새 여자와 살고 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이 든 별장을 팔려고 내놨다. 친구들과는 몇 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뱅상의 주도로 다시 여기서 모이게 되었다. 그들의 불화는 막스와 에릭의 싸움이 발단이 되었는데, 매사에 돈으로 생색내는 막스에게 에릭이 욕을 퍼부었던 것이다. 싸움은 에릭과 했는데 나머지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몇 년이 흘렀다.
마리가 우린 평생을 함께 하려고 다시 온 거라 하고, 문제의 발단이었던 에릭도 사과하려고 왔다고 하자, 내가 아니라 별장이 그리워서 왔겠지 하며 비아냥거리던 막스도 그제야 미안하다며 너희를 다시 보는 게 힘들었다고 화해한다.
몇 년간 친구들에게는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 것이 눈에 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온 마리옹은 술잔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분노조절 장애 증상을 보이며 아들을 돌보지 않고, 에릭 또한 갓난아기와, 매사에 불화를 겪는 유모 한 사람을 동반하고 나타나, 와이프는 이비자에서 마약을 팔고 있다고 떠벌인다. 또 전편에서 자기는 게이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뱅상은 수석 발레리노 출신 동성 애인과 함께 왔다. 세월과 함께 상황이 변했고 각자 나름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후의 전개는 사실 조금 지루했다. 휴가를 즐기는 중년의 남녀, 술과 음식, 춤, 떠들썩한 농담. 싱글이건 커플이건 끊임없이 짝을 찾는다. 그리고 합방. 먹고 춤추고 섹스하는 것이 이들의 휴가다. 지루할까 봐 스카이 다이빙 장면도 좀 넣었다. 그래도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지루한 영화도 끝까지 본다.
친구들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막스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목에다 밧줄을 걸고 물에 빠지며 자살을 시도하는데, 수심은 얕고 줄은 길어서 너무 코믹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래도 친구들 손에 구조된 그의 넋두리만큼은 웃을 수 없는 내용이다.
난 다 잃었어. 대출을 너무 많이 받아서 지급 불능, 채무 초과, 파산 상태가 된 거지. 호텔, 식당, 집, 모두 다 팔아야 해. 아내와 친구까지 잃었고. 눈앞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졌어. 1년 동안 재기하려고 애썼지만 안 됐어.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그런데 너희는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우정은 영원하다 뭐 그런 헛소리 때문에? 이미 깨진 그릇을 왜 붙이려는 거야?
앙투안이 이의를 제기한다. 진정한 친구는 좋을 때만 함께 하는 게 아냐. 지금 우리는 네 곁에 있고 널 정말 아끼는 거 알잖아.
영화에서는 이런 친구를 모두 한 마음으로 격려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지만, 현실에서는 뭔가 하나만 잃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일이 많다. 혹시라도 내게 해를 줄까 봐,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 봐, 그의 불행이 전염되기라도 할까 봐 꺼리는 것이다. 자신과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달라지면 어딘가 대화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우정처럼 유지하기는 어렵고 깨지기 쉬운 것도 없다.
결국 막스의 애인인 사빈은 막스에게 실패를 그냥 받아들이고, 이별 또한 받아들이라고 충고하며 그를 다독인다. 집을 팔려던 순간에 막스는 그 집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환영 속에서 친구들의 옛 모습과 만나고, 마음을 돌려 매각 의사를 철회한다. 집을 사려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나듯 떠난다.
어릴 적 소꿉친구도 살아가는 길이 달라지다 보면 공통분모가 적어지고 사고방식도 변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조정하려 들며 매사에 부정적인 피드백을 준다.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해 주었는데, 나에 대한 의존의 정도가 지나쳐서 부부싸움이 있을 때마다 밤이건 낮이건 생중계를 하고,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한다. 처음엔 서로 호감이 있어 가까워졌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는 남편에게 줄을 대 볼 목적이 있었다. 나에 대한 정보, 내가 한 말을 수집해서 써먹는다. 나의 호의를 당연히 여기며, 호시탐탐 이용할 기회만 엿본다. 앞에서는 친한 척하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즐긴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이 적지 않다. 물론 상대방의 입장에선 내게도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문제를 조율할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자연히 정리가 되기 마련이다. 남자들 중에는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발언을 했다고 수십 년간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라고 했던 인연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경우도 보았다. 분명히 엊그제까지만 해도 함께 놀러 다니던 사이였는데...
젊어서 한때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인간관계에서 너무 힘든 노력은 지양하는 편이 서로를 위해서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존중하고 좋은 에너지를 교류할 수 있는 관계만 자연스럽게 남게 되는 것 같다. 사람도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관계에서 생겨나는 상처도 덜 아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프렌즈: 하얀 거짓말>과 <보르도 우정 여행>의 대본을 좀 더 발전시켜 차라리 8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훨씬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풀어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그와 동시에, 우정을 다루었던 K 드라마 몇 편이 떠올랐다. <우리들의 블루스>, <디어 마이 프렌즈>, <슬기로운 의사 생활>, <응답하라> 시리즈 등, 한결같이 수준 높고 인기도 좋았던 명작들이라 나 자신도 애청했던 작품들이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아웅다웅 말 많고 탈은 많아도 그들의 우정은 끈끈하게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우정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런 드라마들이 인기를 끈 이유가 현실에서 그런 우정을 찾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우정의 유효기간도 쇼츠처럼 점점 짧아져서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클이 돌고 돌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이 들어서도 친구는 또 사귈 수 있다. 애호하는 것이 있으면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 같은 관심사를 나누는 기쁨이 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인데. 그냥 나만의 생각이다. 하긴 인생에 무슨 정해진 법칙이 있겠나? 때로 같이, 때로 혼자, 왔다 갔다 변하는 것이지.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던 <보르도 우정 여행>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마리가 어린 아들을 잃을 뻔하다가 극적으로 구조하며 아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각성하는 사건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너는 엄마야, 정신 차려! 하는 운명의 외침이 마리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해가 지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친구들의 실루엣을 비치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막스가 별장을 팔지 않았으니 내년 여름에 또 모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