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 봉 Oct 11. 2024

라떼와 플랫화이트를 좋아합니다.

상봉 조감도 : 2024년 7월

아래 내용은 '상봉 조감도' 뉴스레터의 2024년 7월 호입니다. 뉴스레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올해가 벌써 절반이 지났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이 참 이렇게도 빨리 흘러가네요. 하반기의 시작인 7월도 금방 마지막 날을 내어 주고 있습니다. 유독 더운 날들이었던 것 같아요. 샤오룽바오가 생각날 만큼 찜통에 있는 듯한 더위 말이죠. 머지 않아 동남아보다 더 더워지는 건 아닌지 유난을 떨어보며 이번 뉴스레터를 시작해 봅니다. (안 가봄)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특히 라떼와 플랫화이트를 좋아합니다. 이전에는 거의 아메리카노만 마셨어요. 그 이전에는 커피 음료를 거의 안 마셨고요. 성인이 되고 처음 마셨던 아메리카노는 뱉고 싶을 정도로 쓰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익숙해지더랍니다. 딸기 요거트 스무디나 밀크쉐이크를 자주 마시던 애가 어쩌다 돌고 돌아 진한 커피 메뉴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사회에서 맛본 고통과 슬픔이 더 컸던 탓일까요.


라떼와 플랫화이트. 두 메뉴를 비교한다면, 음료가 담기는 잔과 그릴 수 있는 그림의 크기가 다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우유의 양도 달라서 상황에 따라 여유롭고 은은하게 즐기거나 깊고 진한 커피를 음미할 수 있답니다. 특히 이번 달에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라떼와 플랫화이트를 많이 마셨는데요. 그러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위와 같은 특징이 제 인생을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라떼는 말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껏 제가 경험한 여러 순간들을 다양한 '라떼 아트'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겠다는 것이죠. 라떼를 좋아하시나요? 라떼는 말이죠. 하트도 결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고, 로제타라는 나뭇잎 모양부터 귀여운 동물들까지 무수히 많은 작품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굴곡진 경험들이 그려져 있는 제 삶이 여러 잔의 라떼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습니다. 피아노나 기타, 드럼과 같은 악기를 다루거나 공을 가지고 즐기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반대로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고 술도 한 잔 곁들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취미만 해도 이만큼 많습니다.


커리어라는 영역도 비슷했습니다. 물론 취미만큼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건 아니지만, 분야가 아예 다른 직업과 직무를 경험하고 또 동경했죠. 교육 전공을 살리는 것부터 스타트업을 거쳐 카페 바리스타 업무까지. 머물던 곳마다 잘 해낼 자신도 있었고, 잘 맞는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만큼 오래 있던 것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양가 감정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와중에, 전 너무 많은 것을 좋아해서 탈이었거든요. 또 생각보다 배우고 익히는 것도 곧잘 해와서, 조금만 더 하면 퀄리티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불타오르던 흥미는 어김없이 그 힘을 쉽게 잃어버렸습니다.


제 성향임을 깨달았던 때는 비교적 최근이었습니다. 음, 지금껏 부정하다가 이제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네요. '아, 난 시작은 잘 하는데 마무리가 항상 아쉽구나. 라떼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릴 줄은 아는데 '잘' 그리지는 못하는 구나.'


그래서 지금까지의 제 삶은 '라떼'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심사라는 잔의 크기가 비교적 넓어서,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한 가지 그림을 '잘' 그리진 못했죠.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성향을 떨쳐버리고 싶었고, '다시 돌아간다면'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부정적인 에너지만 내뿜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관심의 씨앗을 이곳저곳 뿌려둔 덕에 그것이 자라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라는 창의 해상도를 높이자'는 마음 속 문장에 힘을 보태주었던 순간이 있었죠. 지금은 이렇게 긍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경험'의 측면에서 맛보기로 얻을 수 있었던 나만의 감이 생겼습니다. 부족하지만 그 영역, 그 주제에 대해 직접 겪어보니 '아, 이건 나랑 잘 맞겠다' 혹은 '이건 쉽지 않겠는데' 라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라떼'같은 삶도 좋지만, 이제는 좀 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멋있다고 느끼기 때문인데요. 지금까지는 다양한 그림을 대-충 그려왔다면, 이제는 작은 하트만이라도 예쁘고 둥글게 꾸준히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치 플랫화이트처럼요. 비슷한 의미로 나영석 PD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오래도록 꾸준한 사람이 너무 대단하게 보인다"는 말이요.




투명한 잔에 진한 플랫화이트


플랫화이트는 '리스트레토'라는 짧은 추출 방식을 통해 얻은 에스프레소와 적은 양의 우유를 섞어 마시는 커피 메뉴입니다. 그래서 라떼에 비해 진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고, 향은 보존하면서 쓴맛보단 고소함을 느낄 수 있죠.


언제부터인지 작은 유리잔에 나오는 이 음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주 가는 카페의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굳이 한두 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투명한 유리잔'과 '단순한 패턴' 때문이기도 합니다.


라떼와는 다르게 플랫화이트는 보통 투명한 잔에 담깁니다. 그래서 시원하게 마실 때는 우유와 커피가 만나는 지점과 커피가 점점 떨어지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고, 따뜻하게 마신다면 갈색 음료와 위의 거품이 얼마나 얇게 펴져 있나를 확인할 수 있죠.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또 플랫화이트는 작은 잔에 담아야 해서, 다양한 그림보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패턴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는 보통 결하트를 주로 그려 주시는데요. 작지만 옹골찬 느낌이 어느새 좋아졌습니다.



플랫화이트의 투명한 잔처럼 무얼 해도 거리낌이 없고 투명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꾸준하게 한 분야에 대해 깊게 파보면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일관성 있게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랬고요. 그러다 보면, 저라는 사람의 향이 더욱 짙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걸 꾸준히 더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계속 갈고 닦아 '상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뾰족하게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본인만의 강점을 만들라는 조언도 종종 얻을 수 있는데요. 지금까지는 동의했지만 제 성향과 다른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 봤을 때, 한 가지에 집중하는 태도가 제게는 더 효과적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꾸준하려면, 다시 생각해봐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일이든 취미든 삶의 많은 요소들에서요. 그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며, 언제 어떤 상황에 가장 행복한지 등을 기록해보면서요.



마침 좋은 기회로 7월 마지막 날부터 제주에 머무르면서, '오피스제주'라는 곳의 노마드 스태프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간 이곳에 머물며 소정의 워크듀티를 수행하고, 다양한 분들과 관계를 맺으며 휴식과 영감의 시간을 얻을 수 있는데요. 과연 제주에서의 8월은 어떻게 채워질지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라떼와 비슷한가요? 아니면 플랫화이트를 닮았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플랫화이트처럼 단순하지만 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추구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각자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래 이메일이나 인스타그램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 혹시나 관련한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자 하신다면 언제든 편히 회신해 주세요.


이번 뉴스레터는 라떼와 플랫화이트를 마시면서 이 두 가지를 제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이 메뉴들처럼 부디 은은하고 가볍게, 부드럽게 읽히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영적, 우희적, 펠리컨적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