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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 봉 Oct 22. 2024

하늘과 구름과 노을.

상봉 조감도 : 2024년 8월

아래 내용은 '상봉 조감도' 뉴스레터의 2024년 8월 호입니다. 뉴스레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최근 몇 년간 가장 덥고 습한 날씨가 오래 지속되었던 8월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셨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치듯 느꼈던 행복감들이 크셨길 바랍니다. 저는 지난 달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주에서 한 달을 머물렀습니다. '오피스제주'라는 공유오피스&스테이를 운영하는 곳에서 스태프 업무를 수행하고 숙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사실 아직도 꿈 같습니다. 낯선 곳에 (물론 제주도, 국내이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시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러 경험을 함께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우연히 발견한 지원 공고를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한 것치곤 너무 많은 것들이 선물처럼 제 앞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었습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숙소에 도착했던 첫날. 피곤한 제 몸을 녹인 건 맛있는 식사도, 따뜻한 샤워도 아닌 열기가 아직 남아 있는 핑크색 노을과 구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날씨 요정이라고 자신했던 옛날을 확신으로 바꾸며 미소를 머금고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8월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고개를 들었던 한 달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치면 하얀 뭉게구름도,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남은 햇빛을 머금고 반짝였던 황금색과 분홍색 구름도 있었기 때문이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머리 위에 있던 것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늘과 구름, 그리고 노을이 이번 달의 확고한 취향으로 자리매김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취향을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과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봤습니다.




숨막히는 더위에도

보통은 한여름이라면 더운 바깥 공기보다는 에어컨을 선호합니다. 굳이 나가기보다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마련이죠. 하지만 8월의 상봉은 청개구리 기질을 발현시켰습니다. 제주에 처음 와서 본 그 풍경을 또 보고 싶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예쁜 구름이나 하늘, 노을이 있다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물론 시도할 때마다 성공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땀에 젖은 티셔츠와 수건의 개수만 늘어갔죠. 스태프 업무까지 하다 보면 인간의 몸에 70%가 물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얻은 내성이랄까요. 생각지 못한 인내심이 길러지며 언제든 다시 하늘을 들여다볼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얻은 결과물을 보고 있자면, 그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낍니다. 아, 한 가지 아쉽다고 생각했던 건 금방 변해버리는 하늘의 모습이었습니다. 서글프게도 눈으로 충분히 담고 카메라를 통해 볼 때는 아까와 달라지더군요. 그렇지만 한번 눈으로 담기도 했고, 사진으로도 남긴 것이 나쁘지도 않아서 결국은 만족하기로 결정.


그래서 더 자주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많이 기록하려고요. 때마다 달라지는 각각의 '지금, 이 순간'을 잘 감싸려면,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걷고 뛰어야 했습니다.




구름의 역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을 때는 맑고 청량한 느낌을 가득 안을 수 있습니다. 이제 가을이 다가오면 곧 볼 수 있겠네요. 한편, 여름은 구름이 곳곳에 있어 전혀 다른 모습과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계절의 특성상, 궂은 날씨와 연결되는 구름입니다. 그러나 비가 오기 전후로 특히 감탄할 만한 그림을 보여주죠.


높이 솟은 구름은 보통 적운, 적란운이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합니다. 많은 양의 수증기가 강력한 상승기류에 의해 솟구치면서 생겨나는 구름이며, 번개와 비바람 같은 악천후를 동반하기도 한다는 특징은 사실 우리에게 (특히 저에게) 크게 중요치 않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사랑의 눈빛으로 구름을 예쁘게 담아 햇빛에 물든 여름의 순간을 만드는 일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뭐, 이런 구름이 지나가고 비가 내리면 또 어떻습니까. 시원하게 내려서 오히려 뜨거웠던 열기를 잠시 식혀주는 것도 구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게 된 것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 역시 구름처럼 제 삶에 잠시 '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작고 가벼운 수증기처럼 다가왔던 오피스제주라는 곳이 이제는 (좋은 의미로) 돌이킬 수 없이 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이곳에서 얻은 에너지와 흩뿌려질 빗방울들이 삶이라는 땅에 쏴아-하고 내리며 차분히 열을 식혀줄 거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노을이 건넨 것들

노을은 언제 어디서나 좋아했던 자연의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이곳 제주에서 마주한 노을들은 왠지 모르게 그 결이 더욱 선명했습니다. 물론 정해진 시간이 있어서 악착같이 눈에 담고 온몸으로 느끼려했던 것이 이유였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평소와 달리 바다와 맞닿게 되면서 싱그러움이 한 움큼 더해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하루종일 보고만 있어도 예쁘다는 걸 핑계로 일몰 시간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해안 도로를 향해 달렸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이 과연 뜀박질로 인한 심박수 상승인 건지, 오늘은 어떤 색과 모습이 담긴 노을이 있을까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하면, 저마다의 시간과 기분과 이야기를 담고 온 사람들도 보입니다. 아무 말 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공명하는 연인이 있습니다. 어깨에 자녀를 태우고 더 높이, 멀리 볼 수 있게 하는 부모님도 계십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분도요. 그렇게 황홀한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사진을 공유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갑자기 튀어나온 제 말과 행동은 이미 주워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노을빛에 비춰진 모습들이 근사해서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터라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하여 처벌받아도 사실 할 말은 없었으나, 너그럽고 사려 깊은 마음씨를 가지신 분들 덕에 제주의 삶을 조금 더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한편, 혼자가 아닌 함께 달리면서도 멋진 노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오피스제주에서는 매주 목요일 러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요. 공교롭게도 8월 1일, 그러니까 제가 스태프로 일하는 첫 날부터 함께 러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다른 광경을 펼쳐 보이던 노을 덕에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제 날이 선선해질 일만 남았으니, 새벽에 쌀쌀한 기운과 함께 러닝을 하며 일출을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동안 동네에서 경험하지 못한 하늘과 구름, 햇빛을 마주할 수 있다면 제주에서처럼 바지런히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은 더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기본적으로 더위에 약한 편이었습니다.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면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였고, 땀이 나는 것에 질색하던 사람이었죠. 분명 제게 지난 여름이란 '유난스러운 더위'였습니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한 달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흐르는 땀줄기가 등을 타고 내려와도, 습식 사우나처럼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도 나름 더 오래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이유들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더운 만큼 구름도, 하늘도 예쁘게 피어난다'는 것 때문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기다리며, 노을을 떠나보낼 때까지 몸과 마음은 천천히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평화로운 더위', '소란스럽지 않은 더위'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요.


또 어떻게 보면 마음가짐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상에서 마주했던 노을과 햇빛, 그리고 구름과 하늘 역시 근사하고 아름다웠을 텐데 말이죠. 특별한 경험이라고 인식하다 보니 더 진한 색과 향을 남긴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 돌아가면 9월에도 이 취향을 더욱 좋아하렵니다. 평소의 시간과 공간에 숨은 녀석들을 찾아 인사라도 건네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하늘과 구름, 노을을 힘껏 끌어안아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는 9월은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이라 또 다른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전 오늘도 노을 사냥하러 떠납니다.

위 내용은 '상봉 조감도' 뉴스레터의 2024년 8월 호입니다. 뉴스레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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