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유치원을 조퇴하고 온 날. 아빠는 혼란스러웠다.
[6세 아들] 꾀병이라고만 생각했다
재택근무 중이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점심시간이 채 되기 전 아내가 유치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배가 너무 아파서 집에 가야겠다고 한다는 선생님의 전화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날 아들은 전날, 전전날과 같이 아침에 배가 아프다며 유치원에 가기를 힘들어했다.
우리 온 가족이 코로나에서 회복하고 오랜만에 다시 유치원을 가면서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마음속으로는 유치원에 도착하면 제발 잘 이겨내길 바라면서도 만약 너무 배가 아프면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했는데 그 연락이 온 것이다.
엄마는 아기를 봐야 해서 내가 차를 타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에 가니 부원장 선생님이 먼저 나와 계셨다. 아이들 셋이 다 코로나에 걸려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냐며 걱정해주셨다. 실제로 아이가 셋이 된 이후 가장 힘든 시간이긴 했었다. 아이들이 며칠 간격으로 아파버리고 엄마 아빠도 병이 있으니 낮도 밤도 몸이 편할 시간이 없었다. 특히나 6개월도 안 된 아기가 있어서 더 어려웠다.
아들은 교무실에 누워있다가 다시 수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를 준비시켜 데려 나오시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코로나 낫고서 다시 유치원에 가려니 너무 힘들어하는데 좋아지지 않아서 참 어렵다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부원장 선생님은 “아이가 예민하고 섬세한 편이라서 그럴 거예요. 며칠 더 다니면서 적응이 되면 나아지지 않을까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이 예민한 편이구나?’
나에게는 조금 신선한 얘기였다. 나는 딱히 우리 둘째가 다른 사람들 보기에 예민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매우 사교적인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웃음이 많고 밝은 편이다. 첫째는 확실히 쌀쌀맞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의 행동이 보일 때가 있는데, 둘째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서 예민한 편이라는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웠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듣고 돌아보니, 어떻게 보면 예민하다고 할만한 구석이 있다. 우선 확실히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다. 새로운 환경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해져야만 자연스러운 자기 모습이 나온다. 또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둘째의 5세 때 담임 선생님 말로는 5세 반 말부터 아이가 눈에 띄게 화장실을 자주 갔다고 하셨다. 6세에 곧 올라가니 형님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를 한 것에 부담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고도 추측이 된다고 하셨었다.
아들은 생각보다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만들기를 했는지 색종이로 만든 무언가를 팔랑거리며 들고 나왔다. 그래도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다 라는 마음과 '꾀병이었나?'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서 마음이 복잡했다.
"배가 못 참을 만큼 아팠어?" 나는 운전하며 물었다. 아들은 "참아보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조금 울었어"라고 대답했다. 참 안타깝지만 나는 아주 좋게 받아들이지만은 못했다. 병원에 가볼까?라고 물으니 그래야 될 것 같다고 아이가 대답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상태가 매우 괜찮았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귀가한 누나가 돌아오자 둘이 여느 때처럼 신나게 놀았다. 왠지 속은 느낌이 들어 짓궂어지고 싶었다. 병원에 가야겠냐고 재차 물었는데 아이는 여전히 가야겠다고는 대답했다.
나는 이미 속으로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병원을 가도 배탈로 진단하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다. 아내는 나에 비해 마음이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상상을 하며 이런 일을 완만히 받아주는 게 옳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내내 잘 놀던 아들은 다시 배가 아프다며 다시 칭얼대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아이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귀가해서의 아들의 모습을 증거로 내세우며 참아내고 견뎌야 한다고 내 나름 이성적으로 얘기를 하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내 부정적인 감정이 한껏 묻어난 모양이다. 내 얘기를 들을 때의 뭔가 억울하고 압도된 듯한 아이의 눈빛이 뒤늦게 아른거렸고,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아내와 어두운 침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배가 아픈 것까지도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와 대화하고 오늘의 일을 돌아보니 배가 아파지는 것은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질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부담이 이 아이에게는 배아픔이라는 실질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매번 느끼지만 아이를 대할 때 어려운 것은 아이들에게 그들의 발달 수준 이상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학습에서는 이 부분은 최대한 고려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상에서의 태도나 인성적인 것과 같은, 어쩌면 학습보다 더 어려운 부분에 있어서는 높은 수준을 요구하게 되는 것 같다.
6살. 이 나이만 놓고 보면 얼마나 작고 어린아이인지 실감이 되는데, 아이를 대하다 보면 내 말 한마디에 아이가 즉각 깨달음을 얻고 잘못이 개선되고 내면적인 성숙을 이뤄야 할 것처럼 기대하는 내 모습을 본다. 아까 언급한 아내와 나의 차이가 이것에 대한 인지의 차이인 것 같다.
다음날 역시나 아이는 가기 힘들어했고, 나는 전날 내가 했던 말들이 아이를 설득했다기보다는 도리어 부담을 증폭시킨 것 같아 불편했다. 결론적으로 다시 유치원에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의 아픔을 인정해주고 지켜봐 주니 서서히 나아져서 한 2주 후쯤은 배를 아파하지 않고 잘 등원하고 있다.
육아하는 부모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와 같은 존재인 오은영 선생님은 화를 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부모들은 아무리 화내지 않고 얘기를 해도 아이가 바뀌지 않는데 어떡하냐는 꽤나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하면 화내지 말고 계속 백번이고 천 번이고 말을 할 각오를 하라는 얘기를 어느 영상에서 본 것 같다. 부모는 세 번이나 얘기를 했다고 아이를 다그칠 때가 있는데, 아이는 세 번 만에 말을 알아듣고 행동이 교정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의 아이를 행한 인내가 하루아침에 개선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