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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아저씨 Aug 03. 2022

딸의 남자 친구. 그것은 아빠의 위기?

벌써 남자 친구라니...

초등학교 3학년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사귄다고 한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 ‘초등학교 3학년에게 사귄다는 건 뭘까?’ 물어봤다. 서로 좋아하면 사귀는 거라고 한다. 반에 사귀는 애들이 많냐고 물어봤다. 두 커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네라고 한다. 아직 그 나이 또래에 흔한 개념은 아닌 듯하다.


우리 딸의 남자 친구가 되어버린 이 아이는 나와도 면식이 있는 아이다. 유치원 때부터 우리 딸아이와 사이가 좋았고 그 당시에도 나름 유명한 커플이었다고 한다. 유치원에서 나들이를 갔을 때 그 남자아이가 꽃을 꺾어 한쪽 무릎을 꿇고 전해주는 사진이 휴대폰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인사도 잘하고 유쾌한 인싸 재질의 괜찮은 친구이다.


그때부터 이미 커플이었는데 이제야 남자 친구가 된 것은 무슨 뜻인가? 그 이유는 이제야 우리 딸이 직접 인정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딸의 취향은 명확하다. 웃기면 좋아한다. 남자애는 꿈이 개그맨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 웃기기를 좋아하고 쾌활하고 인사도 잘한다. 어떻게 표현하면 유쾌한 장난꾸러기 기질이라 그 친구가 장난치면 우리 딸이 놀리고 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이 친구는 우리 딸에게 좋아한다는 표현을 많이 해왔었는데, 이번에 딸도 이 아이를 “좋아한다”라고 인정을 한 것이다.


초3의 좋아한다는 것이 사춘기 때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이 노는 게 즐겁고 자주 같이 놀고 싶고 그런 것일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이 사건에도 아빠는 왠지 과잉 반응을 하게 되었다. 과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미래가 보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성장하면서 어차피 찾아오는 그런 과정들. 그렇다고 찾아오지 않는다면 또 걱정이 될 만한 이성친구를 사귀는 그 시기 말이다.


조금 웃길 수 있지만, 아직 어린 딸이 그 친구를 남자 친구로 정의한 순간 나에게는 위기감 같은 것이 찾아왔다. 어떤 위기감이냐 하면 4차 산업 혁명 얘기가 뉴스에 나오면 자주 대두되는 그런 느낌의 위기이다. 인간이 AI에게 대체되듯이, 이 아빠도 남자 친구에게 대체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딸과의 관계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느슨해지지 않게 항상 긴장감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다. 남자 친구가 아빠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 말이다. 돈 벌어다 주는 것 빼고는.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가까웠다가 멀어지게 되면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빠랑 노는 게 재미 없어지고, 아빠는 자꾸 이거 하지 마라 잔소리만 해대면 멀어지고 싶을 것 같다.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운 다른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이의 행동반경을 넓어질 것이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아직은 아이가 사춘기는 아니기에. 그런데, 요즘 애들이 워낙 빠르다고 하니 나는 마치 우리 딸이 사춘기의 문턱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춘기가 오기 전에 조금 더 좋은 아빠로 인식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남자 친구도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고, 아빠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딸에게 부어줄 수 있어야 대체 불가능한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일단은 그 아이보다 더 재밌게 놀아 줄 방법도 찾아낼 것이다. 잔소리는… 필히 줄여야겠다. 입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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