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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신 Dec 08. 2024

할머니의 된장국 그리고 그리움



마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 끝. 외할머니의 집은 조용하고 낡았지만, 늘 정돈되어 있었다. 부엌의 찬장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밥솥에서는 언제나 밥 냄새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세상을 배웠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느 아침, 할머니는 된장국을 끓였다. 국물은 짙고 산초 알갱이가 둥둥 떠 있었다. 첫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을 때, 쌉싸래한 산초 향이 코끝을 찔렀다. 나는 곧바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으셨다.

“산초 맛이 쓴 거 아이다. 건강해진다, 많이 묵어라.”

쓴맛을 견디며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을 넘길 때마다 그 국물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가슴 속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쓴맛은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힘들어도 먹어야 한다는, 몸이 아니라 마음을 살찌우던 사랑.


다른 날에는 콩나물국을 끓여주셨다. 맑은 국물에 떠 있던 커다란 멸치. 나는 멸치의 눈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하셨다.

“머리가 제일 맛있다. 그냥 두지 말고 씹어라.”

그때는 그 말이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할머니는 내게 국물 한 숟가락 속에 생의 이야기를 담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 먹고 나면 알 수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대학 때문에 외갓집 근처로 이사를 갔다. 동사무소에서 등록 서류를 받으러 가던 날, 나는 모아 두었던 용돈 만 원을 할머니께 드렸다.

“이걸 어디다 쓰라고…”

할머니는 고개를 흔들며 지폐를 받아 들고는 곱게 접어 호주머니에 넣으셨다. 그 작은 돈이 왜 그렇게 고맙게 느껴지셨을까. 그날의 할머니는 평소보다 작아 보였고, 그 작아진 어깨가 지금도 마음을 저민다.


밤이 되면 이모네 집 부엌에서는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그 주방 한쪽에서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춤을 따라 추었다. 할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쳤고, 사촌동생은 나를 흉내 내며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따라 했다. 웃음소리와 밥 냄새가 뒤섞이던 그 풍경. 그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로워서, 끝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 그때의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와 사촌동생. 심지어 마이클 잭슨마저도. 그들은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춤을 추던 밤을 꿈속에서 꺼낸다. 할머니는 여전히 된장국을 끓이고, 사촌동생은 내 뒤에서 웃으며 따라 춤춘다. 눈을 뜨면, 그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나를 울린다.


어쩌다 Billie Jean이 흘러나오면, 그 노래는 더 이상 나를 즐겁게 하지 않는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춤이 아니라, 그 춤을 보며 웃어 주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떠났고, 나 또한 그들을 오래전에 떠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웃음은 여전히 나를 찾아온다.


나는 가끔 된장국을 끓인다. 하지만 산초를 그리 진하게 넣지는 못한다. 그 향이 떠오를 때마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질까 봐. 멸치가 떠 있는 콩나물국을 마주할 때마다, 그 국물 속에는 멸치 대신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별은 지나고 나면 슬픔으로 변하고, 슬픔은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그리움은 끝내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지만, 그 힘이 너무 무거워 나는 자주 숨이 찬다. 밥 냄새가 스며들었던 그 시절, 그리움이 없는 나는 얼마나 가벼웠던가.


할머니의 된장국은 이제 내 삶 어딘가에서 계속 끓고 있다. 그 쓴맛조차도 이제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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