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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신 Dec 02. 2024

복실이

복실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

20대의 마지막 생일, 나는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애완견을 키우고 싶다는 내 오랜 소망을 알았던 형이, 시추 한 마리를 생일 선물로 데려온 것이다. 나를 위해서였다. 대학 졸업 후 다시 지방 교대에 입학한 나는 진로와 학업 사이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형은 나의 고독을 덜어주기 위해 복실이를 데려왔다.


서울 집에서 처음 마주한 복실이는 엄마 품에 안겨 눈을 뜨기 시작한 어린 강아지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처음부터 반가워하지 않았다. 차를 몰며 강아지를 태운 사람들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며 쑥덕이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복실이의 아양에 금세 녹아내렸다. 3일이 지나자 아버지 입에서 “복식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나는 “복실”이라 부르겠다고 고집했지만, 결국 우리 집 식구들 사이에서 복실이는 복식이로 불리기 시작했다.


복실이는 가족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하지만 배변 훈련이 되지 않아 방 곳곳에 오줌과 똥을 남기곤 했다. 특히 내 방은 복실이의 주요 ‘화장실’이었다. 엄마는 “네 방에서 키우니까 그렇다”며 나무랐다. 그런 소동 속에서도 우리는 복실이와 함께 첫 겨울을 보냈다.


이듬해, 나는 복실이를 데리고 진주로 내려갔다. 배변 훈련은 복실이와 내가 함께 겪어야 할 첫 과제였다. 자취방 한쪽에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배변판을 놓고 훈련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문지를 깔아주고 복실이가 그 위에서 배변을 성공할 때마다 칭찬과 간식을 준 끝에, 복실이는 어느새 배변판을 완벽히 사용하게 되었다.


진주에서의 2년은 나와 복실이 모두에게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아침 강의가 없으면 복실이와 아침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남강을 걸었다. “복실아, 나갈까?” 한 마디에 복실이는 꼬리를 흔들며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복실이에게 하루 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쏟아냈고, 남강의 바람은 내 고민들을 가져가 주었다.


그러나 복실이와 나의 삶은 영원하지 않았다. 교대 졸업 후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서울로 돌아온 뒤로, 복실이와 함께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복실이는 서서히 노쇠해졌다. 활발히 뛰어다니던 복실이가 더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달려오지 못했다. 눈은 백내장으로 흐려지고, 가끔 벽에 부딪히며 힘겹게 걸었다.


어느 날, 복실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수술 대신 마지막을 준비하자고 말했다. 나는 복실이를 위해 산책용 가방을 하나 샀다. 예전처럼 뛰지는 못하더라도, 복실이와 내가 함께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고 싶었다.


그해 여름, 복실이는 마지막 산책을 마치고 우리를 떠났다. 복실이의 작은 몸을 새로 산 산책 가방에 넣어 마지막 꽃가마로 삼았다. 그날 밤, 유난히도 많은 비가 내렸다.


복실이는 이제 없지만, 내 삶의 중요한 시절마다 복실이가 함께했다. 진주에서의 고단한 시간들, 교단에 서기 전의 불안했던 나날들, 그리고 교직의 10년을 채우기까지. 복실이는 늘 나에게서 위로받는 존재였지만, 사실은 내가 더 큰 위로를 받았다. 복실이가 남긴 것은 단지 추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준 따뜻한 시간이자,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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