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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옹 Aug 08. 2018

여행수필 22 - 삽시도 물망터 뜻하지않은 암벽등반

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 넌 바보가 되는 첫걸음에 있다.

심옹의 여행수필 22편


대한민국의 수많은 섬 중에 이름만큼이나 조금은 특별한 섬이 하나 있다. 바로 충남 보령에 있는 삽시도이다. 섬의 지형이 화살을 얹은 활의 모양과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많은 섬 중에 이 섬을 비교적 이른 순으로 여행한 것은 선유도나 소매물도처럼 유명세를 치루지 않아, 아직은 원시적인 섬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난 원시적인 섬의 풍경에 푹 빠져 1박 2일을 지냈으며 또한 거기서 갑작스레 홀로 겪었던 위험했던 순간의 기억도 가지게 되었다.


보령의 대천항에서 출발하여 1시간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면 삽시도에 다다르게 된다. 비록 홀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하루 일정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할 것 같아 1박 2일로 한 민박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주인아저씨. 민박집에는 다른 손님도 없었다. 삽시도는 충남에서 세번째로 큰 섬이지만 섬이 자랑하는 주요 관광지는 하루 이틀 만에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 큰 섬은 아니다. 


첫 날은 서울에서 출발을 하였기에 삽시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민박집에 짐을 풀어놓고, 민박집 주인아저씨에게 해지기전까지 다녀올만한 곳에 대해 조언을 좀 듣고는 비교적 가까운 밤섬해수욕장과 물망터만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숙소를 나섰다. 밤섬해수욕장은 삽시도에서 가장 긴 백사장을 가지고 있는 곳이고 물망터는 밤섬해수욕장 뒷산 너머 아주 작은 해변의 갯바위에서 짠 바닷물이 아니라 자연용출생수가 나온다는 곳이다. 


원칙적으로는 밤섬해수욕장을 보고 뒤로 돌아 산을 넘어 물망터로 가야하는데, 나는 밤섬해수욕장 끝에서 해안을 따라 물망터로 가기로 맘먹었다. 어차피 돌아오는 길에 산을 넘어서 오고, 가는 동안에는 삽시도의 해안과 바다를 더 보고 싶어서였다. 밤섬해수욕장의 긴 모래사장을 따라 산책을 하면서 삽시도의 여름 풍광에 금새 젖어들었다. 가면서 조개도 줍고, 갯바위에 붙은 각종 생명체들도 구경했다. 홀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사람이 그립지 않은 자연 속의 나,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행복했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섬해수욕장 끝에서 해안선을 따라 갯바위를 넘고 넘어 물망터로 가는 길. 시간을 너무 지체했을까? 조금씩 나아갈수록 바닷물이 밀려들어온다는 것을 감지했다. 하지만 충분히 물망터 가기 전까지는 바닷물이 거기까지 밀려들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바닷물이 밀려들어온다. 물망터로 가면 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바닷물이 갯바위를 넘고 들어오더니 이내 발 디딜 공간마저 없어질 것 같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돌아가다가 바닷물에 빠질 것만 같아 그대로 물망터까지 가서 거기서 등산로를 따라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물망터를 불과 20~30여 미터 앞에 두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멀직이 보이는 물망터 자리는 이미 바닷물에 잠겨 보이지도 않고, 갯바위를 따라난 길도 물에 잠겨 더 이상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난 물이 닿지 않는 갯바위에서 여기를 안전하게 벗어날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한여름 소나기까지 내린다. 잠깐 갔다 온다는 생각에 핸드폰도 챙기지 않았다. 


물망터 뒤편 해변까지는 아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바위에서 뛰어내려 헤엄쳐서 갈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리는 비에 옷은 다 젖고, 만에 하나 바다에 들어갈 경우 어떤 위기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날은 조금씩 어둑어둑해지고, 오랜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결국 난 발을 디디고 있는 갯바위 위로 난 절벽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자연 그로의 해안 절벽. 하지만 다행히 조금씩 발을 디딜 공간과 잡을 풀뿌리들이 있다. 높이도 2~3층 정도 되었을까? 한 번 시도할 만 했다. 천만다행으로 소나기가 그쳤다. 조심스레 한 발짝 한 발짝 깨진 바위 사이로 난 공간을 디뎌가며 겨우 정상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안도의 한 숨을 쉬기도 전, 산 너머 산이었다. 길이 전혀 보이지 않고 빽빽하게 나무와 풀들이 그 절벽 위를 채우고 있었다. 길이 보일 때까지 이 숲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뱀이라도 있으면 어쩌지? 이상한 동물이 나를 물면 어쩌지? 불안한 생각에 천천히 걸을 수도 없었다. 정말 빛의 속도로 껑충 껑충 뛰었던 것 같다. 내딛는 걸음마다 비로 젖은 다리를 매서운 풀과 가시가 혹독하게 할퀴고 지나간다. 그렇게 30여미터를 뛰었을까? 드디어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들이 보이는 길에 안착했다. 하지만 이미 종아리와 허벅지는 풀독으로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입었던 반바지는 비에 젖어 색깔도 변해있는데다 별의 별 풀잎들이 더덕더덕 붙어있어 마치 한바탕 전쟁을 치룬 듯했다. 어둑어둑해진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민박집에 도착을 했다. 주인아저씨가 놀랄까봐 대충 메고 간 가방으로 앞을 가리고 들어갔는데도 조금 빈틈이 보였나보다. 


아저씨 : 아이구, 다리가 왜? 무슨 일 있었어요?

      나 : 아, 네.. 물망터 갔다가 오는 길에 산길로 왔더니.

아저씨 : 그래요? 얼른 씻고 밥 먹어요. 저녁 다 됐으니까. 


민박집 주인아저씨에게는 창피한 생각에 상세한 사건(?)의 경위를 말씀드리고 싶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 옷을 벗고 밝은 곳에서 풀에 긁힌 다리를 보니 가관이 아니었다.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일단 허기진 배를 달래려 샤워를 하고는 거실로 나갔다. 손수 끓였다고 하시는 뜨끈하고 시원한 매생이국과 감칠 맛 나는 밑반찬이 고통을 조금은 지워나가는 것 같다. 이튿날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자가다 잠시 깨면 영락없이 온 다리가 여전히 욱신욱신, 가렵고 따가웠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민박집에 돌아와 편히 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튿날 아침, 오후에 배를 타고 나가기 전까지 난 삽시도의 남은 곳들을 모두 돌아보았다. 물론 어제 못 갔던 물망터도 다시 찾았다. 썰물에 맞춰간 물망터에는 과연 석간수가 있었다. 짠물을 조금 거둬내고 나니 이내 시원하고 신선한 생수가 뿜어져나온다. 바다와 바로 인접한 해변가 갯바위에서 이렇게 맑고 신선한 물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 참 신비로웠다. 마른 목을 적시고 진너머해수욕장과 삽시도 섬 내로 난 솔잎향 가득한 산책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모든 것에 감사했다. 


섬여행이 좋아 무작정 찾아 떠난 섬. 하지만 섬은 바다를 곁에 두고 있었고 바다는 섬을 품고 있었다. 섬에 대한 지식보다 바다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선행되어야함을 절실히 느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 자주 바다로의 여행을 한다. 섬으로 혹은 바다로 갈 때면, 늘 내 자신감과 자만심은 버려두고 간다. 바다가 내게 늘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심옹의 여행수필 23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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