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애 Jan 26. 2023

빈티지 컵

내가 좋아해서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어. 한 잔 줘봐라.“






신혼 초 시부모님이 잠시 집에 들르셔서 커피 한 잔을 타서 갖다 드렸다. 어머~ 이 컵 예쁘네~ 나 줘라.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들어 보시던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니, 황당했다. 어머님은 한 번 더 말씀하셨고, 아들은 컵을 왜 달라고 하냐며 웃으며 말했지만. 요구를 멈추지 않으셨다. 그때 내가 안 된다고 했으면 끝났을까. 어머님과 아버님, 맞은편에 있는 남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가져가세요, 답했다.





어머님댁 싱크대 앞에 서면 자연스레 건조대 위의 컵에 시선이 멈췄다. 맨 앞에 자리하고 있는 컵에 대해서 어머님은 너네가 준 컵 아주 잘 쓰고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네 개였던 컵이 세 개가 되었지만 불편함은 없다. 컵은 많으므로.





이번 설에 제사를 지낸 후 설거지를 하는데 어머님이 또 말씀하셨다. 너네가 준 컵 잘 쓰고 있다고. 마음속에 내내 자리 잡고 있던 말이 순간 튀어나왔다. 어머님, 어머님이 가져가셨잖아요. 빈티지 컵을 좋아해서.. 이거 쓸 때마다 너네 생각하면서 쓴다. 남은 컵도 어머님 다 드릴까요? 너네 안 쓰나. 네, 괜찮아요.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올게요. 예상하지 못한 다음 대사가 흘러나왔다.





뺏겼다고 여기며 마음이 불편했다. 컵이 뭐라고. 엄마한테 받아온 식기 중 가장 좋아하던 디자인이어서 아꼈는데.. 엄마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어머니와 취향이 겹쳤네. 그나저나 쓰던 컵을 들고 가려 하신 건 무슨 마음이었을까. 듬직한 아들을 놓을 수 없던 어머니는 아들내외가 쓰고 있는 같은 컵을 쓰며 아들과 연결되고자 하셨던 걸까. 너네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 속에 며느리가 없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아들인데. 어머님의 아들인데.. 남편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원하시면 다시 데려가세요. 작년 가을, 어떤 계기로 나는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니, 어머니 그 컵 다 드릴게요. 가져가세요. 




작가의 이전글 부탁해. 놀래키지 말아 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