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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Nov 03. 2021

편도체

  공황 약을 다시 먹은 지 두 달이 지난날이었다. 얇은 반팔을 입고 처음 이 병원을 찾았는데, 이제는 가을 코트를 팔에 걸치고 의사 앞에 앉아 있었다.


"대뇌보다 깊은 곳에 편도체라는 게 있어요. 뇌는 여러 개의 시냅스가 연결되면서 신호를 주고받는데, 이 경우는 편도체랑 이어지는 연결 중 한 회로가 과반응하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공황이 발생하는 이유를 묻는 내 질문에 의사가 한 대답이었다. 약을 먹는 행동은 내 몸의 어딘가를 고치려는 의도이다. 고장 난 어딘가가 팔이라면 팔을 조심하고, 인후라면 목을 아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가 고장 난 건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몰랐다. 의사는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치 내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듯 말이다. 그리고 내 다음 질문도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추가 질문을 하려 입술을 떼자마자 의사는 빙긋 웃고는 설명을 이었다.


  의사의 말을 내가 이해한 대로 옮기자면 이러했다. 시냅스는 자유롭게 연결되고, 연결을 이리저리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연결이 왜 발생하는지, 왜 과반응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공황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연결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있을 뿐이다. 그 연결이 바로 대뇌에서 편도체로 연결되는 시냅스이고, 사람이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다행이네요."

나는 뜻밖에도 다행이라는 대답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고들었던 공황에 대한 질문 끝에 알고 싶었던 사실은 이 병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는가 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정말 내 잘못이 아닌 건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선천적인 거냐고.


  의사는 다시 한번 손을 저었다. 그러면서 의사가 덧붙인 설명은 이러했다. 우리의 뇌세포는 6세까지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때 만들어진 세포들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 세포들 사이에 다양한 상호작용을 주고받고 그 연결이 바로 시냅스이다. 시냅스 연결을 결정짓는 원인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밝혀진 바가 없다. 안타깝게도 한 번 연결된 회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연결이 약해질 뿐이고 언제든지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공황이 재발률이 높은 이유이다.


  '6세 이전......'

  뇌세포가 6세 이전에 완성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생각의 흐름은 6세 이전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습관 같은 것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어린 시절 기억을 들여다보기 싫어 까맣게 칠해버렸다. 새까매서 보이지 않는 어린 날 기억 속에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감기에 걸리는 게 아니잖아요?"

  의사가 말을 이었다. 감기처럼 공황도 뭔가 잘못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놀라서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는 감기에 걸리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시절의 한 겨울날이었다. 나는 열이 많이 났다. 나는 아프다고 울었고, 엄마는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엄마는 내게 일어나 보라고 재촉했고, 나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무거운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는 말을 안 듣는다며 또 화를 내고, 어쩌라는 거냐고 짜증을 쏟았다. 시간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밖은 어두웠다. 나는 꾸역꾸역 패딩을 껴입고 엄마와 밖으로 나왔다. 나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걸었지만,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며 빨리 걷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엄마가 차도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 나는 쭈그려 앉았다. 엄마는 꼭 응급실을 가게 만든다며 아파도 왜 밤에 아프냐고 나를 질책했다. 다른 아이들은 괜찮은데, 꼭 나만 이렇게 유별나게 아프다는 이야기도 했다.


  칠흑같이 까맣고, 뼈마디가 떨릴 정도로 몸을 떨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생이 되고는 아픈 걸 숨기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도 저녁에 열이 올라 몸에 한기가 느껴졌던 날이 있다. 나는 그날 엄마에게 일찍 자겠다고 방으로 들어간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밤에 몰래 거실에 나와 타이레놀을 찾아서 먹고 다시 들어갔다. 성인이 되어서는 몸이 아플 때마다 쓸모없는 몸뚱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아플 때마다 마치 내 몸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대해 왔다.


  "감기는 그냥 아무나 걸릴 수 있어요. 잘못해서 걸리는 게 아니에요."

  여태 아프면 내 잘못인 줄 알았다는 내 대답에 의사가 또다시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감기처럼 공황 또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이번에는 나도 의사를 따라 미소 지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이번에는 그냥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고 편도체를 검색했다. 검색한 사진을 보니 구불구불한 뇌 안쪽에 작은 영역에 빨간 칠이 되어있었다. 그곳이 바로 편도체였다.


편도체는 측두엽 전방의 대뇌 피질 내측에 위치한다. 모양이 아몬드처럼 생겨서 그리스어 'almond(편도)'에서 유래하였다. 편도체는 감정, 특별히 공포와 공격성을 처리하는 핵심적인 뇌구조로 알려져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백과사전에 적힌 사진과 설명을 찬찬히 살폈다. 공황의 실체가 이거였다.





[사진]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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