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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05. 2022

오늘부터 매일 말해줘야겠다

  설을 지나고 난 바로 다음날 2월 3일. 육아휴직 2년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날이다. 첫 육아휴직 1년을 마치고, 다시 한번 더 육아휴직을 결정할 때는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회사에 복직을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내가 일할 준비가 안 돼있을 것 같았고, 내가 회사를 향해 걸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작년 새해에 회사에 연락하며 영영 보지 못할 것처럼 인사한 것은 그래서이다. 당시에는 길 것 만 같던 추가 1년이 지나가고, 이제는 벌써 1년이 지나갔다면 세월이 빠르다고 놀란다. 겨우 걸음마를 떼고 찡얼거리기만 하던 아이가 이제는 뛰고 말도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많은 발달을 거쳤는데도 지나고 나니 지난 1년이 그저 순식간인 것만 같다.


  가을부터 시아버님이 종종 와서 아이 어린이집 하원을 시키고, 밖에서 같이 놀다가 집으로 데리고 오시기 시작했다.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일주일 모두 오셔서 아이 하원을 시키신다. 몇 주전에는 내가 하원 시키러 갔더니, 아이는 할아버지가 오지 않았다고 울기도 했다.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와 아이의 유대감이 느껴져서 안심이 들었다. 내가 복직하고 나면, 계속 할아버지가 와서 하원을 시킬 테니 말이다.


  지금과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아이가 할아버지와 놀다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없다는 것이다. 밖에서 아이가 할아버지랑 놀다가 "엄마!"를 찾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엄마 보러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 그제야 집으로 온다고 했다. 설이 지나고 나면,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집으로 왔을 때, 실망을 겪을 것이다. 처음엔 힘들지만, 금방 적응하겠지. 할아버지와 하원을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는 잠자기 전에 그림자 극장을 본다. 20개월 이후로는 잘 안 봤는데, 25개월이 지난 요즘에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이 방에서 불을 끄고 그림자 극장을 켜서 아이 침대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듣는다. 신랑은 침대 밖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면서 아이가 잠잘 준비가 되는 시간을 기다린다. 아이가 그림자 극장 버튼을 누르면서 "한번 더"를 외치고 몇 번의 플레이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아이에게 그림자 극장을 아빠에게 주고 자자고 이야기하고, 아이는 더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자야 한다며 강제로 뺏기도 했다. 그때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방안이 떠나도록 컸고, 30분을 넘기는 긴 시간 동안 울다 잠들었다. 이제는 아이에게 우리가 이제 잘 시간이니 아빠에게 주자고 이야기하고 기다려준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아빠에게 그림자 극장을 건네주고 내게 안겨서 잠시 칭얼거린다. 아빠가 나간 뒤 아이는 내 다리 근처에서 뒹굴다가 잠이 든다.


  아이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은 어른보다 길지도 모르겠다. 복직까지 남은 한 달의 기간 동안 여유를 가지고 미리미리 말해줘야겠다. 엄마가 한 달 뒤에 회사에 간다고. 할아버지랑 놀다 와도 집에 없다고. 잘 놀고 있으면 잠들기 전에 엄마가 올 거라고. 그래도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고. 매일매일 말해주고, 매일매일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도와줘야겠다. 집에 와도 엄마가 없는 날이 왔을 때, 아이가 조금 덜 칭얼거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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