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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n 11. 2021

쇼핑몰 앞에 앉아서

  어떤 날은 예상치 못한 순간, 과거를 마주하기도 한다. 마치 영화처럼 재생되는 기억을 보느라 눈동자는 현재를 담지 못한다. 멍한 상태로 멈춰 서서 과거 속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다. 20대 후반에 쇼핑몰 카페에서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친구와 쇼핑몰을 돌다가 매장들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을 때였다. 나는 매장마다 걸린 봄 옷들 사이에서 허리 높이까지 오는 진열대에 시선을 멈췄다. 구두가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옷 가게에서 왜 신발을 파는 거지?’

머릿속에 어릴 적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과거가 재생됐다.



  아마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계절은 여름이었고, 해가 지면서 어슴푸레한 하늘을 만들고 있었다. 동네 골목을 걸어서 시장 어귀에 도착할 때쯤에 하늘은 어두워졌고, 가게 간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시장 골목에서 아주머니들과 걸어 나오는 엄마를 나는 한눈에 발견했다. 엄마에게 달려가서 엄마를 부르고 엄마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나는 종종 퇴근하는 엄마를 마중 나가곤 했다. 엄마를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빠 없이 나만이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은 날은 엄마랑 단 둘이서 저녁을 사 먹고 들어오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옷을 사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많지 않았다. 엄마가 미싱사였기 때문이다. 우리 남매는 주로 엄마가 공장에서 가져온 옷을 입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옷을 사러 들어갔다. 아마 오빠 청바지를 샀던 것 같다. 옷가게 안에는 엄마 허리춤 정도 높이의 진열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 굽 높은 여성 샌들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그 신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판매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엄마 얼굴이 한껏 들떴다. “엄마한테 어울리니? 살까?”하고 묻는 엄마 목소리가 환했다. 설레어하는 엄마와 달리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웃거리기만 했다. 옷가게에서 신발을 파는 이유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엄마는 신발을 매대에 다시 올려두고 옷가게를 나왔다. 엄마는 편한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고 전혀 화려하지 않은 샌들을 신은 채 초등학생 딸의 손을 잡고 저녁길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 그때 엄마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20대 후반에 돌이켜보니 엄마 모습이 낯설었던 것 같다. 자신의 물건을 사는 경우도 드물었을뿐더러, 쇼핑하며 신난 모습은 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물건을 사는 경우는 생필품이 필요한 경우나 우리 남매의 옷과 신발이 작아진 경우였다. 엄마 말에 따르면 주변 사람에게 풍족히 베풀던 아빠 덕분에 우리 가정은 풍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23살에 엄마가 된 엄마는 그런 살림을 아껴서 이어 나갔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엄마 몸무게는 10kg 이상 줄었다. 엄마는 여태 밝은 옷, 유행 타는 옷은 오래 못 입는다고 사지 않았는데, 몸무게가 줄어든 뒤로는 그런 옷도 곧잘 사 왔다. 오빠랑 나는 엄마 스타일이 바뀌는 게 어색했다. 우리 남매는 엄마에게 왜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으려 하냐고 한 소리씩 하기도 했다. 그때 엄마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다시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다. 50대 초반이 된 엄마는 더 이상 꾸미려 하지도 않았다. 20대 후반 쇼핑몰 카페에 앉아서 생각하니 엄마 모습이 애잔했다.


  쇼핑몰 카페에서 친구가 나를 툭 건드렸다. 내 눈동자는 다시 현실을 담았다. 뭐하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매대 위 신발에서 시선을 거두고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갑작스레 들어온 엄마에 대한 기억때문에 마음이 물결 위에 던져서 둥둥떠다녔다. 그날 어떤 물건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는 30 중반이 되었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되었다.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는 아이 물품만 가득하다. 쇼핑몰을 가도 아이 물품만을 사들이고 있다. 어릴  옷가게에서 샌들을 사지 않은 엄마 마음을 조금은   같다. 신랑과 아이와 함께 쇼핑몰을 돌다 보면 옷가게에 놓인 신발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면 전과 달리 엄마의 젊은 날을 떠올리던  20 후반이 생각난다. 20 후반에 옷가게 안에서 신발을 마주했던  이후로 나는 엄마 신발을 사러 엄마와 쇼핑몰을 가기도 했는데. 필요 없다는 엄마에게 억지로 사서 안기기도 했다. 그때 엄마는 그다지 기뻐했던  같지 않았다. 어쩌면 단지 내가 가졌던 무겁고 애잔한 마음을 덜어내려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엄마와 쇼핑을 다니지 않는다. 50대 후반이 된 엄마는 이제 친구들과 종종 쇼핑을 다니는 것 같다. 어떤 날은 못 보던 옷을 입고 우리 집에 와서 친구와 나갔다가 산 옷이라고 신나서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 마음에 안도감이 든다. 딸에게 엄마의 불행한 모습은 짐이 되고, 행복한 모습은 안심이 된다. 엄마가 친구와 쇼핑 다닌 이야기를 더 자주 해주면 좋겠다. 엄마가 자신의 즐거움을 미루지 않고 행복하길 바란다.





[사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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