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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l 17. 2021

엄마 아빠는 당황하지 않아

  아이가 15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와 주말에 외출을 했다. 그런데 외출할 때 마음이 찜찜했다. 아이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가 생겼던 주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는 15개월이 되도록 음식 알레르기로 고생해왔다. 그 주에는 아이에게 새로운 식재료를 먹이지 않았는데도 아이 피부에 두드러기가 발생했다. 이제는 음식이 아니라 바깥 활동만 해도 아이 피부는 붉어지고 눈을 비볐다. 식재료와 보습에 신경을 썼는데도 다시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나타나자 나는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주말 외출이 편치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식사시간이 걱정이었다. 평소 같으면 식당 중 한 곳을 골라 아이도 같이 먹었을 텐데, 그날은 고민되었다. 사실 밥 차리는 일은 ‘엄마'라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다. 나는 아이 알레르기를 걱정하는 마음과는 또 다르게 주말에 ‘밥 차리기'라는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신랑도 옆에서 괜찮을 거라며 전에 방문했던 식당을 가자고 했다.


  결국 우리는 전에 방문했던 중식당에 들어갔다. 중국식 만두인 소룡포를 시켜서 만두피 안의 내용물을 아이에게 줄 생각이었다. 전에 방문했을 때도 같은 방법으로 식사를 했다. 우리 부부가 먹을 우육면과 볶음밥이 먼저 나오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소룡포가 나왔다. 나는 아이 식판에 만두피를 벗긴 만두소를 담아줬다. 아이가 배고팠는지 포크질을 급하게 해서 입안에 음식물을 가득 채우고 오물거렸다.


  만두소를 먹기 시작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가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이는 손을 내리지 않고 계속 눈을 비볐다. 괴로운 듯 몸도 같이 흔들었다. 눈을 비비던 아이 손이 눈에서 잠깐 떨어지자 빨개진 눈밑이 보였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신랑도 식사를 멈췄다. 아이 눈 두 덩이도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아이와 외출할 때 생기는 많은 짐이 너무 복잡해서 속으로 화가 났다. 화나고 떨리는 마음이 목소리에 딸려 나올까 봐 힘을 줘서 누른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짐을 챙기는 사이 아이 얼굴은 급격히 부어올랐다. 부어오른 눈두덩이 때문에 아이 눈이 반쯤 덮였다. 마음속이 왈칵 무너져 내렸다. 우리 부부는 서둘러 아이를 안고 식당을 떠났다.


  평소보다 알레르기 반응이 컸다. 마음이 떨렸다. 차로 이동하면서 신랑과 주말에 운영하는 병원을 핸드폰으로 찾았다. 주말이라 운영 중인 병원이 많지 않았다. 빨리 갈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신랑이 주말 오후에도 운영하는 30여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병원도 운영 종료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지체 없이 그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이를 차 안 뒷좌석 카시트에 앉히고 나는 아이 옆에 앉았다. 차 안의 정적 속에 신랑의 한숨과 탄식이 들렸다. 나는 경직된 표정으로 아이 얼굴을 살피면서 괜히 외식했다고 한탄했다. 신랑은 신호에 걸리자 핸들에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아이는 부은 얼굴로 울지도 않고 불안한 눈동자로 눈치를 보듯 눈알을 굴렸다. 아이가 불편한 몸으로 불편한 분위기를 읽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당황하지 않아!”


나는 목소리 톤을 올렸다.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는 몸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었지만, 분위기만이라도 바꿔주고 싶었다. 나는 이어서 신랑에게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신랑도 내 의도를 읽었는지 내 말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별일 없을 거라고. 차 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전환됐다.


  병원까지 남은 10여분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밝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우리 아이에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중간중간 아이의 두 눈을 확인할 때마다 다시 목이 울컥 메어왔다. 아이는 여전히 부은 눈을 힘겹게 뜨고 있었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꾹꾹 누르며 “괜찮아.”, “엄마 아빠는 당황하지 않아.”, “금방 도착할 거야.”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우리는 병원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시간이 흐르자 부어올랐던 아이 얼굴이 가라앉았다. 처방받은 약을 받으러 약국을 갔을 때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약국 안을 걸어 다니며 진열된 상품에 관심을 가졌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내가 약값을 계산하려고 하자 아이가 비타민이 든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다가왔다. 신랑과 나는 그게 너무 웃겼다. 덕분에 아이는 약국에서 자기 몫의 장난감 자동차를 얻어냈다.


  아이가 힘들 때, 나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부모인 내가 같이 당황해서 허둥대면 안 되겠지. 힘들고 아파서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아이에게 필요한 건 안정일 테니까. 신랑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했다. 오늘처럼 당황하지 않고 아이 옆을 지키는 부모가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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