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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Nov 06. 2024

한강 작가님, 건강하세요.

한국어의 동사 그리고 형용사

1988년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50대 여성이었는데 당신의 귀한 아들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나를 꽤 예뻐해 주셨다. 그 분은 손이 귀한 집에 시집을 와서 딸 셋을 연달아 낳고 늦은 나이에 가진 넷째가 다행히(?) 아들이었고 그 아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분이었다.


그 분은 국어 문법에 꽤 엄격하신 분이었는데 특히 형용사의 모음조화 원칙을 말할 때나 쓸 때나 잘 지킬 것을 강조하셨다. '반가와', '고마와', '괴로와'라고 읽고 써야지 ''반가워', '고마워', '괴로워'와 같이 모음조화 원칙에 어긋나게 읽고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맞춤법 규칙은 몰라도 형용사의 모음조화 원칙은 철저하게 잘 지켰던 편이었는데 해가 바뀌고 1989년이 되고 한글 맞춤법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현실음을 대폭 수용하여 '반가워', '고마워', '괴로워'가 표준어가 되고 '반가와', '고마와', '괴로와'가 비표준이 되어 버려 너무 황당했었다. 가끔 60~70년대 후시녹음된 영화를 보다 '반가와요', '고마와요' 처럼 모음조화를 제대로 지킨 대사를 들을 때면 마치 불과 몇 달 뒤에 세상이 뒤집혀질 것을 전혀 모른채 하루 하루 충실히 자기 업무를 했던 동독의 슈타지처럼, 몇 달 뒤에 바뀔 맞춤법이 다 뒤바뀐 세상이 올 줄 모르시고 '반가워', '고마워'라고 잘못 발음하던 제자들을 안타까워 하며 열성적으로 '반가와', '고마와'를 가르쳐 주시던 그 선생님이 생각이 나곤 한다.


언어는 생물체와 같아서 끊임 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다. 지금은 폐기된 가설이지만 나 때만 하더라도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배웠는데 그 근거 중 하나가 뒷 모음이 앞 모음의 영향을 받아 앞 모음이 양성모음이면 뒷 모음도 양성모음으로, 앞 모음이 음성모음이면 뒷 모음도 음성모음으로 발음된다는 모음조화였다. 한국어 우랄알타이어족 가설은 폐기되었지만 한국어에 모음조화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현상인데 그것도 많이 붕괴되고 있고 특히 20세기 후반기에는 사실상 현실에서 더이상 '고마와', '반가와'라고 발음하지 않았는데 1989년 한글 맞춤법 개정안은 이러한 현실음을 사후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최근 한국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양상 중 하나가 형용사를 마치 동사처럼 활용하는 현상이다. 한국어에서 동사와 형용사를 합쳐서 용언이라고 하는데 그 형태나 활용법이 비슷하다 보니 어떤 단어가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그때 판별법 중 하나가 명령형이나 청유형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가라', '가자', '가세요'처럼 명령형, 청유형으로 바꿔서 자연스러우면 동사이고 '예뻐라', '예쁘자', '예쁘십시오'처럼 바꿨을 때 어색하면 형용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많은 한국어 화자들이 청유형으로 쓸 수 없는 형용사인 '건강하다', 행복하다'와 같은 형용사를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처럼 청유형으로 잘못 쓰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이지만 '행복하자'는 틀린 표현인 것이다. 굳이 쓰고자 한다면 형용사를 동사화해서 '행복해지자', '행복하게 지내자'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는 틀린 표현이고 '건강히 지내세요'. '행복하게 지내세요'라고 해야 옳바른 맞춤법 표현인 것이다. '고마와'가 '고마워'로 바뀐 것처럼 미래 어느 날에는 맞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적어도 2024년 현재는 틀린 표현이다. 틀린 표현이라도 쓸 수 있고 나도 또 때로 쓰는 경우들이 있긴 하지만 쓸 때 쓰더라도 틀린 맞춤법 표현인 것은 알고 썼으면 하는 작은 소망은 있다.


그런데 그래서 뭐. 의미만 전달되면 되었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할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도 아빠한테 쓴 손편지에서 '건강하세요'라고 하는데 내가 방구석에서 이런 얘기하는 게 뭐. 쓰면 쓰는 거지. 외않되.


한강 작가님, 수상 축하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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