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글을 전혀 안 쓰는 이유이기도
퇴사만 하면 여행 생각 일절 없을 줄 알았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퇴사 전엔 퇴사가 고플 때마다 올해 남은 달력을, 가끔은 내년 달력까지 예습을 해가며, 가장 많이 쉴 수 있는 황금연휴를 꼽아보고는 없는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고 몇 날 며칠을 항공사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여행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는 월급을 몇 달 치 저당 잡아 항공권 구입으로 나의 퇴사까지 미루고, 떠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모든 희망을 여행 하나에 불태우며 시간을 죽여나갔다.
그때는 쉰다는 개념이 없었고, 쉬는 날에 내가 한국에 있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인천공항을 찍고 어디로든 날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데, "연휴에 뭐 하니"라는 질문에 "저 어디 가요..."라는 답으로 부러운 시선을 받는 게 마치 대단한 보상이라도 되는양 떠나곤 했다.
긴 연휴를 앞두고 부장님께 보고드릴 건이 있어서 찾아뵈면 보고를 드리기도 전에 "왜 또 어디 가게?"라고 물으실 정도로, 늘 긴 연휴엔 떠났다. 눈치 따윈 집어치우고 늘 길게 쉴 수 있는 휴가에 연차를 꼬박꼬박 낸 덕에 나중엔 당연하게 긴 연휴를 앞두고 떠나는 사람이라는 인식까지 박혀 편하기까지 했다.
그게 직장인의 숙명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퇴사만 하면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덜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다. 혹시 여행을 다니는 이유가 "이번 연휴에 뭐해요?"라는 말에 답을 내놓기 위해 남들 떠나니 나도 떠나야 한다는 강박으로 떠남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혹은 월급의 노예에게 보상을 주는 행위도, 노예해방 이후엔 그런 보상이 필요 없어지는 것마냥 헛된 희망을 품었다.
당연히 오산이었다.
퇴사 직전 다녀온 퇴사여행지인 태국에서 1일 1 똠얌꿍을 외치던 신랑이 호되게 체하고 방콕에서 코사무이를 넘어가네 마네 하면서 결국 호텔에서 이틀을 앓아누운 그 여행 이후에 신랑은 "No more 해외"라고 못 박은 상태였다. 그때만 해도, 여행 직후라 "그래, 올해는 안 갈게. 대신 내년엔 가자."라고 해두며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행 욕구가 설마 또 치밀어 오르겠냐며 자신했다.
태국발이 6개월 이상은 갈 줄 알았는데, 뭘까.
퇴직금이 들어오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다. 언제까지고 백수일지 알 수 없고, 설령 신랑이 창업을 한다고 해도 그게 바로 수입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퇴직금은 언제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증발할 거 같았다.
12년을 고생한 보람이 어느새 증발하고 만다니, 가뜩이나 퇴사를 하고 자유로워지고 나니 내가 회사원이었다는 사실조차도 마치 꿈인 것처럼 아득한데(이 부분은 좋다!), 돈이 증발하는 건 막아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잠재울 수 있을 것만 같던 역마살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몸만 자유로워지면 언제고 편도티켓만 들고 떠나겠다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건 지금이어야만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은 무섭고도 빠르게 집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갑자기 짐 싸고 떠나자고 외치는 와이프덕에 집돌이인 신랑이 많이 힘들어하던 차라, 퇴사를 하면서 약속을 했었다. 갑자기 떠나자고 하지 않겠다와 황금연휴에 사람구경이나 하러 떠나는 목적 없는 여행은 하지 않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앞으론 수입이 없으니 분수도 모르고 그런 사치는 부리지 않겠지란 믿음과 이런 대단한 결심이라도 있어야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을 것 같아서 덜컥 말이다.
그러니 여행의 목적을 찾아야만 했다. 목적 있는 여행이라야 비벼볼 여지라도 있으니. 퇴직금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말라는 그에게 나의 버킷리스트니 지금 떠나야 한다는 설득은 마냥 호락호락하지 않은 신랑에게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이고, 내가 쓰게 될 어떤 글에 대단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떠나야 한다는 되지도 않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영 죄책감이 들었다.
여름에 북유럽부터 시작해서, 유럽이 추워질 즈음에 동남아로 넘어와, 내년 봄 즈음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딱이겠는데, 명분이 없었다. 목적 있는 여행을 위한 그 어떤 목적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떠나야 한다는 집착으로 혼자 골몰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찾은 답은 신랑의 창업을 "여행의 목적"이랍시고, 신랑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역시 많이 보는 것 외에 답이 없다며 그에게 이 여행이 단순한 "여행"이 아님을 꾸준히 설득했고, 그 덕에 신랑이 지금 하는 공부의 연장선으로 북유럽부터 여행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희망적으로 신랑이 2학기 과정을 안 듣고 그냥 떠나도 될 것 같단 희망적인 이야기를 밝힌 게 6월 말.
하지만 그건 엄연히 신랑의 여행의 목적이 아니던가.
여행을 가는 건 결정이 됐는데, 나는 왜 이다지도 못 떠나서 안달인가 싶은 마음에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목적을 알아야겠는 거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나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내 답을 찾는데 또 남의 답을 커닝했지만,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에서도 내 여행의 이유를 찾지 못했고, 정여울 작가님의 '여행의 쓸모'에서도 역시나 내 여행의 쓸모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작가님들이 쓴 글을 읽다 보니 이런 글도 못 쓰면서, 여행은 왜 좋아하는 거냐며 나를 구석으로 몰았다. 자괴감.
‘대단한 글도 못 쓰는 백수 주제에, 있는 돈이라도 아껴야지 어딜 돈 쓰러 갈 궁리를 해’하는 자책이 또 며칠간 나를 괴롭혔다.
그 괴로움도 오래가지 않았으며 여행을 가는 이유를 찾기 위한 혼자만의 고군분투를 이어갔다.
첫 해외여행이자 어학연수였던 캐나다에 가기 전, 해외여행을 떠나는 회사 언니들을 보며 한국이나 외국이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데 뭘 구경한다고 돈을 몇 백씩이나 써서 떠나나 궁금했었다. 비슷한 월급일 텐데 이 형편에 어찌 떠나나, 빚이라도 내서 여행을 가는 건 아닌가 싶게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가보면 알게 된다는 이야기도 헛된 허영이 내 안에 자리잡지 않도록 부단히 귀에서 마음에서 밀어내며 해외여행 생각은 오래도록 없었다.
그러다 영어가 잘하고 싶다고 떠난 캐나다에서, 어쩌다 일주일의 방학이 주어져 떠난 뉴욕과 워싱턴에서, 그건 허세라고. 그건 사리라고 치부한 여행의 첫맛을 알았다.
그때부터였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걸 안 건.
역사학자도, 지리학자도, 건축가도, 미술가도 아니었는데, 겉핡기라도 잠깐잠깐 만나는 몰랐던 세상은 늘 재미있었다. 학창 시절 공부는 더럽게 안 했지만, 그래도 깨알같이 미술시간에 들었을 법한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눈앞에 마주하는 재미는 미술에 문외한이었지만, 이 여행은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 때마다 갖가지 투어를 하고도 머리에 남는 건 고작 몇 개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백만 원은 우습다는 듯 매년 떠났다.
그때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학창 시절 내내 숙제를 하는 대신 늘 매를 맞는 쪽을 택했던 내가 캐나다에서는 어학원에 가는 버스에 타면 항상 숙제를 했다. 미리도 아니고 늘 당일 어학원 가는 버스 안에서. 모르는 문법이 나오면 낯선 동양인이 되지도 않는 떠듬떠듬 영어로 현지인에게 숙제를 도와달라고 불쑥 청하곤 했다. 묻는 데에 조금의 주저함이나, 거리낌은 없었다. 제대로 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답을 구하기에 몰두했고, 그게 그들에게 어떤 폐가 될 거란 생각보다는 어떤 부족한 낯선 이에게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서 굳이 이 먼 곳까지 날아와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구사했을 모국어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이에게 자비를 내려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나중에 직장인이 되고 나서 생각했다, 그때 그들도 출근길이었을 텐데 낯선 동양인이 불쑥 문법을 물어오는 아침 출근길,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답을 주려고 했었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얼굴에 당당함을 넘어선 뻔뻔함을 묻히고 살았고, 그게 한 번도 부끄럽지 않았었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였다.
몰라도 괜찮고, 낯설어도 괜찮고, 그래서 실수해도 괜찮고, 실수 좀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완벽을 강요하지 않았고, 내 딴에 완벽이 남들에겐 구멍 투성이었지만, 스스로 정한 완벽이라는 기준에 나를 가두고 어지간히 피곤하게 살아왔는데, 스스로에게 넉넉해질 수 있는 그 시간, 조금 몰라도 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잠시나마 나의 무지를 비난할 것 같은 시선에서 벗어난 듯 자유로워지니, 어학원 가는 버스에서 문법 하나 몰라도 괜찮다는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넉넉해보는 그 시간이 그냥 좋았다.
"몰라도 괜찮아. 너 배우러 왔잖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폭설로 뉴욕에 발이 묶이고 3일 동안 시카고행 비행기가 뜨지 않을까 매일 아침 공항으로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어도 내 키만큼 쌓인 눈에 몸을 내던지는 영화 같은 동심을 맛보고,
잠시 맑아진 것 같아 내내 들고 다니던 우산을 숙소에 두고 향한 센토사섬에서 미친 듯이 내리는 비를 피해 뜻하지 않게 오랜 시간 비 오는 해변의 운치를 느꼈고, 그러다 편의점에서 산 빨간 우의를 입고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그 해변을 잠시나마 걸었으니.
여행은 훅 들어오는 예기지 못한 상황에도 그저 웃음 짓게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단 한 번도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해본 적이 없다. 구글 맵이 있다는 현대적 편의를 고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낯선 여행지에서는 길을 잃어도 그 나름대로 또 다른 여행이 펼쳐진다는 걸 알기에. 하지만 왜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 있어서는 잠시의 방황이, 길 잃음이 쉽게 용인되지 않는 건지. 그래서 잃어도 되는, 내던져도 되는 여행이 그토록 끌렸나 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여행 중이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로마에 와 있다. 8월 7일 한국을 떠나 12월 2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끝이 나는 이 긴 여행은 이제 조금 적응이 된 상태라, 짐을 싸고 풀고 다시 싸는 건 인제 좀 이골이 난 상태다.
간혹 어떻게 지내냐는 지인들의 안부인사와 함께, 왜 글을 안 쓰냐는 말도 듣는다. 퇴사 이후 시작한 블로그에도 가끔 소식을 전하고, 브런치에도 소식을 전하다 여행을 간다는 말만 남기고 뚝 끊긴 소식에 어떻게 여행은 잘하고 있나 궁금할 만도 하다.
여행을 하면 카톡도 잘 확인하지 않을 만큼 여행에만 몰두하는 편이다 보니 여행이 시작되고 나서는 당연히 글은커녕 초반엔 일기조차 쓸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억이든 휘발되고 마는 인간의 비루한 기억력 앞에, 이러면 안 되겠단 생각에 초반 시차 적응기를 제외하고는 짧게나마 기록을 하고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개발새발 적어 놓은 기록들을 여행기랍시고 공개하기도 뭐 하고, 그렇다고 정성껏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주변에서 소식을 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들이 와닿아 글을 하나 올려본다.
혹시나 제 근황을 궁금해하실 분들이 또 계실까 싶기도 하여^^
우리 부부가 퇴사를 할 때 긴 인생 여행에서 잠시 길을 잃어보기로 계획한 것처럼, 이번 여행도 길눈이 밝은 나 대신 길치인 신랑을 앞세워 길을 최대한 많이 잃어보고, 그래서 색다른 상황에 웃음 짓기를 바라본다. 그동안과 달리 돈을 펑펑 쓰는 여행이 아니기에 고행이 될 수도 있는 이 여행의 끝에, 내가 몰랐던 나를 더 발견하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목적 없는 여행이 아니어야 하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전과는 다르게"이다.
전에 없던 긴 여행이니 한껏 멋을 내고 가는 여행도, 갖고 싶다는 이유로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워 오는 여행도, 아무리 어질러도 돌아오면 다시 체크인한 것 같은 정돈된 호텔서비스도 없을 여행이지만, 이 여행은 여행대로 모르는 세상을 만난다는 생각 하나로 설레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마치 매일매일 이렇게 기분이 좋은 꿈을 꾸어도 되나 싶게, 현실감 없이 구름 위를 걷고 있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님이 이야기한 대로,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재미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가 돈값하는 여행이었냐고 묻는다면, “네”라고 답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