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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pr 12. 2023

'글로벌'이라는 절벽을 향해 돌진

커리어 키워드


 오랫동안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를 동경했다.


대학 시절에는 WFP 취업을 희망했다. 바람의 딸 한비야 때문이었을까?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 반기문 UN사무총장? 이유는 모르지만 글로벌 시대정신에 끌렸다.


대학 졸업전 IVI 자원봉사를 하면서 '글로벌' 커리어 궤도 진입은 시작됐다. PR에이전시도 외국계였고, 그 다음 진로도 글로벌 No.1 제품을 가진 대기업을 선택했다. 그러니 아일랜드 국제NGO에서 일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 석사 과정 진학은 거의 운명처럼 느껴졌었다.



"나가서 공부하네요. 일하면서 하겠어요."


10 여년전 대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재미로 타로 점을 봤다. 그 때 당장 궁금한게 없었던 나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나갈 이 있을까요?" 물었다. 리더는 내 카드를 읽으며 그럴 거라고, 그런데 일을 하며 공부를 할거라고 했다.


국제NGO와 석사 과정의 조합이 딱 그러했다. 마침 2019년은 시리아, 로힝야, 예멘 난민위기가 중첩되던 시기였다. 전 세계가 난민이라는 국제문제를 정치경제를 넘어 학문적 관점까지 동원할 때였다. 몇 차례 세계기아리포트를 진행하며 자신감이 붙었던 나는 먹이를 찾듯이 대학원을 다녔다.


장은하 교수님의 '인도적 지원' 강의는 특히나 좋았다. 강의는 실무 덩어리였던 내게 이론의 궤적을 열어주었다. 마침 일하는 단체에서 인도적 지원 포럼과 트레이닝을 준비하고 있어서 교수님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일과 학업의 시너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무렵 팀원도 채용해 이론에 다시 실무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그야말로 터졌다. 코로나는 전공에 큰 질문을 던졌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국경을 넘어서는 국제 문제를 단일 국가 외에 도시, 기업, NGO, 개인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해결하자는 다자적 접근이다. 하지만 전염병은 국경을 걸어잠궜다. 모든 이동을 막고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왔던 관성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해외 사업 현장으로의 이동은 물론, 자금이 빠르게 감소했다. 우선순위가 조정됐다. 국제문제는 국내문제로 환원됐다. 학교도 직장도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동기들의 휴학도 늘었다. 글로벌 인재는 하루 아침에 발이 묶였고, 이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그 때 단체에서도 조직개편이 진행됐다. 독립 부서였던 커뮤니케이션팀이 마케팅부로 편입됐다. 조직 차원에선 나름 합리적 조치였겠지만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다. 양날개같았던 일과 학업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번에 꺾였다. 나는 1년 휴학을 선택했다.



글로벌이라는 절벽 앞에서


2021년, 팬데믹이 2년째에 접어들며 생태계와 원헬스에 대한 문제 의식이 높아졌다. 학교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COP26을 맞아 발빠르게 '환경과 개발' 강좌를 개설했다. 시의적절했으나 학교는 현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코로나 시기에 글로벌 최전선은 아수라장이었다.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을 때, NGO는 국제약속의 무력함을 목격해야 했다. 주요 행위자는 국가로 리셋되고, 국가간 약속들은 연기됐다. 해외 원조는 미니멈으로 전환됐고, 로컬 NGO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엄청난 정보와 고민, 모순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건 어찌보면 최전선에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행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질문들을 바탕으로 NGO, 비영리, 시민사회에 대해 홀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단체와 내 업무의 한계를 이해하게 다.


'글로벌'은 이전까진 가능성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는 깊은 절벽이 되어버렸다. 그 절벽 앞에서 누군가는 용감하게 날아올랐고, 누군가는 멈춰 섰다. 난 후자였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세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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