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Apr 28. 2023

정답 아닌 오답을 지워가는 시간

오만과 편견


멀리 가고 싶어 대학원을 선택했다. 당시의 업에 학위를 더해 더는 뒤돌아 보지 않고 나아가고 싶었다. 그 때는 대학원 인생 중반부 필수코스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오답 몇 개를 지운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삶은 더 선명해졌다.






삐이. 국제문제는 전문가가 다루어야


취업 이후 내 삶은 실용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자신만의 주제 의식이 뚜렷한 사람을 리스펙했다. 대학원에 가면, 석박사를 하면,  주제의식이 좁혀질거라 막연히 기대했다. 그렇게 글로벌 거버넌스를 선택했다.


일도 보탰다. 인도적지원과 국제개발협력 접근이 어렵고 복합 원인을 가진 국제문제를 다루다보니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했다. 언어, 국제규범, 미디어, 모금, 캠페인, 애드보커시, 인사 등 하나하나가 국내 활동보다 더 고민하고 가시화되어야했다. 하지만 현장의 수혜자나 프로그램 참여자를 만날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보니 전문성은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당위나 설득으로 흐르기 쉬웠다.


학교에서 이론과 케이스를 공부할 수록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벌어졌다. 전문가는 필요하겠지만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누구를 위한 전문성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현장을 갈수 없다면, 이재민이든 난민이든 제1원인을 마주할 수 없다면... 위에 쌓는 전문성은 의미없다 판단했다.



삐이이. NGO는 수평적이고 민주적 조직


전공을 선택할 때 '글로벌 거버넌스학''시민사회NGO학' 사이에서 꽤 고민을 했다. 그 놈의 전문성 때문에 전자를 택했지만 기업에만 있어서 NGO를 너무 몰랐다. 궁금했고 배우고 싶었다. 다행히 공공대학원이 공공 분야의 교류를 장려해 타전공 학점도 인정해주어 3학기부터 시민사회NGO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시민사회NGO 강의는 시민, 사회, 대화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다. 시민은 곧 자유인을 뜻하며, 그것은 타인의 지배를 받지 않을뿐만아니라 타인을 지배하지도 않는 존재라는 것. NGO 활동은 그것이 어디를 향하는 우리 사회에 발을 딛고 있어야한다는 것. NGO의 가장 중요하고 큰 자원은 대화라는 것. 이는 당시 내 일터가 NGO임에도 일터에서는 배울 수 없던 것이기에 너무나 귀했다.


하지만 당시의 일터에는 여유가 없었다. 가치에는 동의했지만 성과가 필요했고 시간에 쫓겼다. 좋은 동료들이 모였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대화는 줄었고, 사회에 발을 딛기도 전에 모금을 따져봐야 했다.


지향하는 가치가 조직을 결정하진 않았다. 조직은 조직이었다. 어떤 성장과 속도를 추구하느냐가 결정적 차이였다. 나는 외형적 팽창에 내 남은 삶을 걸고 싶지 않았다.



삐이이이. 최종 좌표 결정해야할 나이


학문의 길은 그것이 전문적이든 비영리이든 보다 뚜렷한 목적지로 향하는 티켓이라 생각했다. 두 차례의 이직, 그리고 영리에서 비영리로의 이동 속에서 스스로를 박쥐처럼 느끼기도 했다. 소속이 불분명한 경계인같기도 했고, 엉덩이가 무겁지 못한 사람같기도 했다.


논문을 포기한후 4학기부터는 이 곳 공공대학원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강의들을 듣기로 작정했다. 그러면서 정책학, 사회복지학, 의료행정학으로 전진하게 됐다. 5학기에 접어들자 활동가 동료들보다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 사이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내 모습은 퍽이나 쭈뼜했고, 교수님과 원우들도 신기하듯 대했다.


두번째 스무살의 대학원은 자신감으로 시작했다. 일하며 세상을 어느 정도 알았고, 역량과 경험이 꽤 쌓였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감이 단단함과 세련됨으로 발전할거라 기대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공공이라는 그라운드에서 마주한 우리의 얼굴은 모두 비슷했다. 부모의 얼굴로, 피곤한 관리자의 미간으로 미래가 아닌 서로를 바라볼뿐이었다. 다른 업종의 이방인에게도 활동가 같은 동류의 다정다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다고 들어갔지만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나오고 말았다.


정착하겠다고 결심했건만 떠돌이임을 인정하고 말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흔의 머릿속에 박혀있던 똥답들을 빼내니,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장난스런 마음이 솟아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