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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금쪽이? 오은영박사 탓?

육아문화평론가




" 누군가는 총대를 메어야 하는 걸까 "


최근 뉴스기사를 보다 서이 초등학교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금쪽이 때문, 오은영박사의 환상 때문이라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작가는 육아문화평론가로서 오은영박사의 편도 또 금쪽이와 오은영박사를 

문제시하는 쪽의 편도 아닌 중립적인 개인적 생각을 글로 쓰려한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하고

궁금하다면 네이버에 " 김기탁 "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두 아이를 양육 중에 있으며 10월 셋째가 태어나고 

매주 수십 명의 유아와 초등학생 그리고 부모들을 만나고 있다.


" 금쪽같은 내 새끼 "


양육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보았을 프로그램

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들도 이슈에 한 번은 보았을 금쪽이

그 영상을 보았던 사람이 하나같이 하는 말 


아이가 문제다, 부모가 문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오은영박사의 솔루션은 정말 환상인 것일까?


평론가는 의학적 전문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에 따라

의학적 소견이나 내용은 배제하고 이야기하겠다.





1. 아이가 문제다?



방송에서 나오는 금쪽이들은 하나 같이 문제성을 띄고 있고

그것을 부모가 케어하기 힘들어 결국 금쪽이로 방송에 나오게 된다. 


과연 금쪽이는 이 방송에 나오는 것을 동의했을까?

부모는 한 번이라도 아이에게 방송 출연 동의를 얻었을까?


평론가는 아빠와 아이의 놀이 교육을 진행하며 힘들어하는 아이와

아빠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이해도 되고 많이 속상하기도 하다.


이때 교육자 입장에서는 데리고 나가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나 그렇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 다른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아빠는 오늘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어디를 갈 것이고

어떤 놀이를 아빠와 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의 동의를 얻고 들어오게

되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저 아내가 접수해 아이와 영문도 모른 채 온 아버님들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 수업 시작 전 미리 들어와 적응하는 아이와 수업 시작 후 

늦게 들어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의 온도 차는 매우 크며

아이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동의하에 들어온 아이들의

경우 어떤 놀이를 하는지 알고 있다. 또는 아빠와 이런 놀이를 많이

함께 해본 아이들이다. 


또는 1시간 전 굉장히 힘들어했던 아이와 아버지가 1시간 뒤 

다시 놀이에 들어왔을 때는 현저히 좋아진 컨디션으로 놀이에 임할 때도 있다.


여기서도 보아 지듯 금쪽이에서도 수많은 스테프들과 낯선 환경

그리고 평소와 다른 부모의 모습에 아이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존중받지 못한 상태로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으로 보아진다. 


이는 방송에서 더 과한 행동으로 보여지고 노출되며 아이를

문제 있는 아이로 인식이 되게 편집되어 보여지는 부분이 많다.

왜냐?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론가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아이의 동의를 얻어

예전 방송 출연당시 솔루션을 진행해야 하는데 솔루션 할 만한

일들이 생기지 않았기에 평소에 하던 장난도 아이에게 

더 크게 화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 장면은 솔루션 장면으로 나가게 되었다.


허나 일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다.

그저 아이가 잘못인 것처럼, 부모가 잘못인 것처럼 보여질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쪽이인 아이는 없다. 환경이 금쪽이를 만들어 낼 뿐이다.


우린 누구나 아이일 때가 있었고 사춘기를 경험하며 완성되지 못한

인격을 바로잡아 성인으로 성장해 왔다.


그 기준의 환경에는 가정,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사회가 있었다. 


강의 중 한 어머니가 눈물을 보여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어머니의 말이

자신의 선택으로 아이가 힘든 환경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의 경우 시기를 놓치면 대기를 오랫동안 해야 되는 탓에 

5살이 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겼는데 아이가

느린 개월수이다 보니 유치원 적응에 굉장히 힘들어하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유치원에서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아이로 인식이 되어 부모 또한 자책감을 가진 것이다.


이처럼 이러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 부모의 잘못이라 하기보다

어린이집에서 교육적 부분을 더 많이 할 수 없는 행정과

유치원에서 돌봄을 더 집중할 수 없는 교육적  환경의 문제들로 인해 

아이는 많은데 유치원은 부족, 부모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일은 해야 하는데

아이는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아이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아이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그것이 집이든 어린이집이든 학교든 말이다. 




2. 부모가 문제다.



금쪽이에 출연한 부모들은 대부분이 아이의 양육방식을

잘못 선택해 부모의 양육문제가 거론되고는 한다.


하지만 그 부모는 그러한 양육방식의 문제들을 알지 못한 채 출연한다.

그저 무엇 때문에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하고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여 금쪽이의 문을 두드린다.


왜??

누구도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왜? 없을까?

주변에 육아 전문가가 없을뿐더러 그 집안의 양육방식과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누구도 선뜻 말하기가 어렵고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싸움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연하고 나서야 영상으로 출연자의 양육 환경이 보여지기에

스스로 느끼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얼굴과 아이의 얼굴을 노출하면서까지

솔루션을 받고 싶었을까? 오은영박사가 워낙 유명하기는 하지만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방송에 엄청난 용기를 내어 출연한다는 것은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절실한 사람들에게 잘못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수많은 상담을 받아 봤지만 좋아지지 않다 보니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은 아닐까??


평론가 아는 지인의 경우도 글쓴이의 조언을 받아

아이의 불리불안 증세를 완화 한적이 있다. 허나 다시 어떠한 계기로

재발하여 미술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원인도 알 수 없고 상담 치료만 더

받아야 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에 원인도 모르는데 상담을

계속 받아야 되는지 글쓴이에게 문의가 왔다. 


이렇듯 심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전문가들조차 아이들의 병명이나

심리적 상황들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여러 번의 심리 치료를

병행하더라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분야에서 원탑이라고 하는 오은영박사에게 상담받을 수 있다니

그것도 무료인데 누가 마다 하겠는가. 예를 들어 내 심장에 이상이 있어

3개월 안에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예약만 1년이 걸리는

서울대 흉부외과 전문의에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가 수술을 마다하겠는가?


양육은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느냐? 들어주지 않느냐?

훈육을 이때 하느냐? 그냥 넘어가느냐?


아이들은 학습을 하며 자라기 때문에 

양육의 선택에 따라 아이의 양육환경이 달라지며

아이의 인격 또한 달라져 간다. 


대한민국에 아이를 5명 이상 키워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합계출산율 0.78명대의 나라에서 한 가정당 많아야 3명

대분분이 1~2명 일 것이다. 그런데 1~2명만 키워보고

육아를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이 새로운 것이 양육이다. 


잘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아닌 다른 인격체의 아이이기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아이가 못나지 않다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만 주위에 더 많아져도 부모는 더 잘하려

노력하지 않고 아이의 기준에서 생각하며 아이의 올바른 인격을 위해

애쓰고 노력할 것이다. 


알면서도 방치하면 잘못된 것이지만 알면서 배우고 고치려 하는 것은

잘못되기보다 오히려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일부의 잘못된 부모로 인해 수많은 부모들이 똑같이 취급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당신 또한 그런 취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은 환상이다?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박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던 내용이 화재가 되며 오은영박사가 출연한 금쪽같은 내 새끼를

비판했다. 해당 게시글은 삭제된 상태다. 


또한 체벌이 금지되어야 된다고 이야기 한 부분이 오냐오냐 키우게 된다.

아이들이 예의 없이 자란다 등의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체벌 없이 양육하는 것은

매우 힘겹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평론가 또한 어릴 적 많이 맞아 봤기에 그 효과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허나 잘 못된 체벌은 역효과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맞아본 사람도 때려본 사람도 다 알 것이다.

체벌로 인해 만들어진 환경은 결국 좋지 않은 결말로 이루어진다.


계속 체벌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하라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적절이라는 것이 어떤 기준인 것인가? 누구의 기준인가?

체벌하는 사람의 기준? 맞는 사람의 기준?

그럼 어른도 회사에서 말 안 들으면 체벌해야 말을 듣는 것인가?


체벌을 하다 보면 강한 욕설이나 아이에 대한 비판도 따라간다.


한 중학교 아이가 이야기했다.


" 매는 맞으면 사라지지만 말은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


과연 체벌하는 사람이 입을 꾹 닫고 체벌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무조건 적인 체벌이 옳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수많은 아이와 환경이 다르기에 양육의 방식도 내 아이에게 맞는

수많은 방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의 어린시절 수많은 체벌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어린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고 있었기에 그것을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것을 스스로 경험했기에 지금의 양육 방식이 우리 아이에

맞는 양육 방식이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누군가는 그래야 된다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아야 된다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일 것이다. 



솔루션은 환상일 것일까? 

어떤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전문가도 타인의 생활방식을 모두 

꿰뚫어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완벽한 치료법을 구사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금쪽같은 내 새끼는 좀 다르다.

가정의 상황을 녹화하여 모니터로 전문가뿐이 아닌 

부모까지 그 상황을 지켜보며 각성한다. 


흔히 말의 기억은 왜곡될 수가 있다.

하지만 영상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 말, 표정까지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상담받는 당자자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효과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10번의 심리 치료보다 한 번의 큰 자극이

인간에게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론가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도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한 부모가 있다. 그 후 굉장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만 보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주위에 나타난 부분이

명확하기에 환상으로만 이야기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하는 오은영박사나 부모들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왜? 지금에서야 금쪽이 탓을 하고 오은영박사 탓을 하는가?


다른 전문가들이 더 나아가서 부모들을 도와줄 수는 없는가?


한 명의 금쪽이가 수많은 금쪽이를 대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금쪽같은 내 새끼 또한 방송의 취지를 문제의 이면만을

집중적으로 편집하는 것이 아닌 아이가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방송하여 다른 부모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모범이 되는 방송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이번 서이초등학교의 안타까운 사고는 단순히 부모, 아이를 떠나

행정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바가 크다.


행정이 바로 서지 않으면 그 문제는 고스란히 교사, 학부모, 아이가

모두 떠안게 되어 있다. 늘봄학교도 교사들이 반대하는 이유 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의 이면만 쫓아 비난하고 잘못되었다 말하기보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이루어져 있는지를 우선 보아야 한다.


그것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환경에서는 균열이 일어나고 

언젠가는 무너져 내리는 부실 환경이 되어 버릴 것이다. 


" 내가 존중받고 싶을 때는 아이나 어른이나

상대에 대한 존중을 해줄 때 비로소 내가 존중받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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