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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Sep 05. 2023

어쨌든, 장례

봄과 여름, 두 번의 죽음

월요일 아침, 엄마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참 이상한 한 해다. 올 가을에 있을 손녀의 결혼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봄에는 친할머니가, 그리고 여름에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딸의 결혼식까지 꼭 한 달이 남아 이제 막 청첩장을 돌리시려던 부모님은 갑자기 부고장부터 돌리게 되었다.




친할머니는 99세까지 장수하시다가 올봄에 돌아가셨다. 그 시절엔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니 실제로는 100세를 넘기셨다. 90세가 넘어서도 정정하셨지만 서서히 아들딸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실 때쯤, 아빠는 막내 예비사위까지 다 함께 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하셨다. 왠지 할머니가 곧 떠나실 것 같으니 다 같이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으시다며. 원래 토요일에 가려다가, 남자친구가 결혼식에 가야 해서 일요일로 하루를 늦췄다. 토요일 오후, 할머니댁에 가져갈 카스테라를 사서 나왔는데, 먼저 본가에 내려가있던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할머니 돌아가셨어."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막내 왔냐며 환하게 웃는 아빠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토요일에 갔으면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뵐 수 있었을 텐데 하루를 늦추는 바람에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후회, 자책. 그리고 이미 17년 전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에 이어 친할머니까지 돌아가셨으니, 우리 아빠는 이제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는구나 하는 안타까움. 친할머니 빈소에서 아빠를 끌어안고 "우리 아빠 불쌍해" 하며 엉엉 울었고, 아빠는 오히려 그런 나를 다독여주셨다.


할머니의 죽음과는 별개로 빈소는 왁자지껄했다. 할머니는 백 년 동안 건강히 살다 가셨기 때문에 모두 좋은 마음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친할아버지 산소 옆에 할머니가 묻히는 순간에도 아무도 울지 않았다. 무덤을 파고 관을 넣고 그 위를 흙으로 덮는 모습들이 어린 증손주들에게는 생경한 광경일 뿐이었다. 선산에 쭈그려 앉아 장례식장에서 싸들고 온 음식을 나눠 먹고, 마지막으로 대가족 사진도 한 장 남겼다. 모두들 예감하고 있었다. 집안의 큰 어르신이 떠나셨으니, 6남매의 온 식구들이 이렇게 다 같이 모일 일은 앞으로 없을 거라는 것을.




외할아버지는 87세의 나이로 올여름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으셨다. 처음에는 우리를 잘 못 알아보실 뿐 평소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었지만, 증상이 차츰 심해져 벽에 똥칠을 하시기에 이르렀다. 결국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게 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갑자기 심정지로 세상을 떠나셨다.


살면서 할아버지께 쌓인 것이 많으셨던 할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눈물을 흘리셨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도, 예배를 드릴 때도, 입관실에서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볼 때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평안했다. 살아 계시는 동안 할머니와 자식들 마음에 상처를 주신 할아버지였지만, 안 좋았던 기억과 감정은 모두 할아버지와 함께 보내드리고 좋은 추억만 간직하기로 했다. 할머니도, 엄마와 삼촌도, 조금은 홀가분해지신 듯했다.


선산에 묻히신 친할머니와 달리, 외할아버지는 지역에서 운영하는 추모공원에 봉안하기로 했다. 장례식장에는 우리 빈소뿐이었는데, 이곳에 도착하니 운구버스 수십 대가 줄지어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죽음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실감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운전기사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버스에 타서는 삼촌에게 유골함을 판매했다. 카드 결제 현금영수증도 안 되는 대신 저렴하게 해 준단다. 당연히 이곳 직원인 줄 알았건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운전기사와 한통속인 외부 잡상인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누군가는 또 제살길을 찾는다. 발인을 마치고 장례식장에 돌아와서는 식구들끼리 남은 음식과 일회용품을 나눠 가졌다. 다 끝나고 집에 가면 저녁으로 장례식장에서 가져온 남은 음식을 먹어야지. 달라진 것은 이제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뿐, 우리는 다시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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