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은 순식간이었다. 사실 우리 커플은 반년 정도 헤어졌다 다시 만났었다. 그걸 알고 있는 양가 어른들이 다시 만날 거면 결혼하라며 이야기가 오가더니, 순식간에 결혼식 날짜까지 받아오셨다. 그게 결혼식 3달 전의 일이었다. 급하게 결혼식을 준비하며, 나에게 선물이 찾아왔다. 첫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입덧이 심한 편은 아니었으나, 차멀미가 심해져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힘들어졌다. 덕분에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었고, 준비하던 모든 일이 중단되었다.
내가 움직이질 못하니 남편이 결혼식 준비를 주도적으로 해야 했다. 보통은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남편이 도와주는 편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남편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생각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결혼식 날짜는 곧인데, 결혼식장을 검색은 하는 건지, 스드메가 왜 필요한 건지 물으며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남편이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스튜디오 촬영은 인위적인 것 같아 나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드레스와 메이크업은 결혼식의 꽃 아닌가? 남편이 결혼식 준비를 귀찮아하는 것만 같아, 답답하고 한편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입덧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가 찾아보고 끝났을 일을 질질 끌고 가는 거 같아 보였다.
기다리다 결혼식 날짜가 될 것 같아 급하게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약속을 잡은 후 남편을 데리고 결혼식 업체에 찾아갔다. 업체를 찾아 약속을 잡아놨으니 같이 가보자는 말에도 남편은 시큰둥하기만 한 것 같았다. 그때 뱃속에 첫째가 없었다면, 이 결혼이 유지되었을지는 장담 못 했을 것 같다.
내가 서두른 덕분에 우리는 업체를 선택하여 결혼식 준비를 무사히 할 수 있었고, 결혼식 업체를 선정하고 나니 다른 일은 무난히 흘러갔다. 나와 남편은 어릴 때부터 거실을 서재처럼 쓰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 점은 너무 신기하게도 마음이 맞았다. 우리 부부의 몇 안 되는 공통점이었다. 결혼식장에 관련된 준비를 하면서 삐그덕거렸지만, 아파트와 혼수에 대해선 일사천리로 합의가 되었다. 24평 좁은 아파트 거실에 가득 찰 만한 9인용 식탁을 두고, 한 벽면을 책장으로 채우고는 우리 둘 다 결혼생활에 설렘을 느끼며 행복했었다.
어떤 결정을 앞두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남편은 P일까? 남편은 본인이 행동을 안 한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빠른 거라고 했다. 본인은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고 싶어 여러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중에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하는 거라고 했다. 남편의 계획엔 늘 플랜 B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편은 J인 걸까?
사실 나는 남편이 핑계만 대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MBTI를 공부하며, 남편은 결혼식 준비를 뭉그적거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본인 나름대로 여러 가지 데이터를 만들고 있었던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계획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변수에 관한 생각이 많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입장에선 게으르고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에겐 시간이 필요했던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물어보니 그랬다고 했다.
여보 눈엔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생각하고 계획 중이었어. 나도 열심히 찾아보고 있었는데, 여보가 갑자기 알아서 다 해버리니까, 한 편 허무하더라. 그래서 결혼식 준비하는 데 좀 기분이 안 좋았었어.
맙소사, 그도 나에게 쌓인 게 많았었다니. 우린 서로 왜 대화를 하지 않았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