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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은의 공부장 Sep 12. 2023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힘

체계적인 성찰 과정 기록


우연히 들은 조각

우연히 시벨리우스 1번 교향곡의 조각을 듣게 되고,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던 컨디션 중 신기하게 다시 기대감, 여유가 피어나게 해 준 그 과정을 한 번 체계적인 성찰로 기록해보려 한다.


굉장히 잘 된 연주. 나는 시벨리우스 1번 교향곡을 이 영상을 통해 처음 들었지만, 이 연주가 굉장히 좋은 연주라는 건 그냥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휘자의 실력도 굉장히 훌륭하고, (누군지 궁금해서 나중에 찾아볼 생각. 이런 게 '지적 호기심'인데 아이들한테 이런 게 있으면 최고로 좋은 것) 각 군단마다 단원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진짜 피곤했는데도 풀버전 영상을 틀고 싶게끔 만들었다.


클래식은 나를 미물로 만든다


"그냥 나는 미물이구나.."


클래식을 듣고 있을 때면 초능력 보호장벽이 내 사방에 형성돼서 철저히 혼자 이 세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갇혀 있어서 외롭고 두려운 게 아니라 굉장히 혼힘으로 단단해지는 기분이 든다. 갇혔다는 표현이 조금 잘못됐을까? 혼자 이 세계에 놓여있다로 정정해 보겠다. 그런 기분을 따라가 보면 아마도 클래식 음악이 주는 깊이와 경외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단원들의 집중력과 몰입이 연주에서 그대로 전해지고, 만들어내는 그 음악의 역사 자체가 그냥 말이 안 된다. 몇 백 년.. 우리가 그 세월을 가늠이나 할 수 있냐는 말이다.

이런 보호장벽.. 여기 안에 나 혼자..! 아무 것도 날 방해하지 못하는 곳

진짜 피곤한데 여전히 할 일은 많고, 중요한 스케줄이 연달아 있을 때, 스스로 여유를 갖지 못해 스케줄에 끌려다니게 되면 어떤 것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여유를 갖고 다시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보고 불필요한 건 제거하고 내가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여유를 되찾는 방법은 깊이와 넓이를 늘리는 사고를 하는 법이다. 도자기를 빚을 때 엄지 손가락을 넣어서 점점 더 깊이를 파고 넓혀주듯이 내 여유의 그릇을 깊고 넓혀주는 생각 훈련하기. (이런 게 명상인가?)


교향곡이 나에게 이런 순간을 주는 거 같다


미물이었구나.. 를 느끼는 동시에 한 발 빠져나와 상황을 볼 수 있게 하고, 정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깊게, 그리고 넓히는 사고"가 가능해지게 만들어 준다. 좁았던 시야가 우주에서 내려보는 것만큼 넓어지고, 그러면서 지금 느끼는 모든 사사로운 감정, 피곤함, 부족한 여유가 다 미물처럼 받아들여진다고 할까.


이건 그냥 클래식 음악이라기보다 특히나 교향곡이 갖고 있는 긴 러닝타임이 주는 힘 같기도 하다.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 라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걸까....? (근데 최근에 비탈리 샤콘느를 듣고 꼭 길지 않아도 그렇다는 걸 다시 느끼긴 했다..)


그냥 우연히 어떤 한 부분에 꽂혔을 때 이게 교향곡이면 나는 완곡이 궁금하다는 욕구가 생긴다. 음.. 어떤 글이 좋을 때, 그게 어떤 책에 쓰인 문장이라면, 그 책이 궁금해지고, 전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느낌이다.


쓰다 보니 아주 똑같은 기분이다.


책이나 교향곡이 좋은 이유는 사색하고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을 주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나는 아이들에게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다른 클래식보다도 교향곡을 우선적으로 가르쳐 주고 싶어 하는 본능이 내 안에 있는데.. 그건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내가 느낀 감정을 시간순으로 따라가 보고자 한다.


이미 한 주를 너무 달려와서 정말 지쳐있는 상태인데, 주말에도 이벤트가 꽉 찼던 때. 두통약을 먹고 죽을 맛이라는 말을 잠깐 쓰고 싶었지..


내 경험상 이런 스케줄 그냥 악바리로 소화하면, 만족스럽지 못하게 일정을 소화하면서 계속 도미노처럼 일이 무너지곤 했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선순위 파악 후 하위 항목을 제거했고, 일찍 카페로 나가서 일을 조금 해보려고 했지만, 컨디션이 중요했던 날이라 절제하고 잠을 선택했다.


그렇게 누워서 시벨리우스 1번 교향곡 8분 즈음을 들으니 진짜 말라가던 대지에서 물 나오는 곳을 찾은 기분이었다.. 음악을 틀어두고 그대로 잠들었다가 40분 뒤에 4악장이 끝날 때쯤 잠에서 깼다. 선잠이었지만 교향곡을 들으면서 다시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이 글은 그 첫 단추(여유와 차분함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보며 당시에 남겨 놓았던 글이다.


교향곡은 40-5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갖는 음악이고, 들어본 사람만이 깊게 만족하며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와 아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무엇보다 교향곡이 클래식의 정점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교향곡을 즐길 수 있게 되면, 편협되지 않는 교양에 집중력도 길러진 상태가 될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디즈니 음악감상>도 보면 [베토벤 전원교향곡]이 가장 긴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원교향곡을 1탄 수업으로 짰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 본능이) 그 뒤로 오페라와 발레곡에 포함된 짧은 곡들이 2,3,4탄을 이루고 있다. 기초를 쌓고 다음 것들을 주는 방식.


이건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뿌리가 깊이 잘 내려진 거라고 생각하는 내 교육관에서 비롯된 듯 하다.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힘이 길러지면, 독서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편협된 생각을 걷어낼 수 있고, 가지가 뻗어 나가듯 그 어떤 피스의 음악도 집중해서 이해하고 깊이 느끼며 들을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악 듣는 순서

- 교향곡

- 발레곡/ 오페라

- 협주곡

- 소나타

- 독주곡


이런 방향으로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심어주고 싶다. 그게 가장 본질이 바로잡히게 클래식을 삶에 적용하게 될 거 같은 느낌! 아직은 느낌이지만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 방향으로 교육을 해주면 분명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




위에서 언급한 지적 호기심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완벽한 공부법』 서평. 지식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지식의 공백을 느낄 수 있다는 말. 너무 좋다!  


*지휘자는 클라우스 메켈레로 시벨리우스 전집을 녹음한, 시벨리우스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높은 지휘자였다. 연주가 수준급인 이유가 있었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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