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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Dec 17. 2021

타일, 한 끗 차이 (2)

민트색 vs 치약 색




수 없이 많은 화장실 레퍼런스를 모아 왔다. 어떤 색의 타일이 우리 집에 가장 잘 어울릴 것인지, 어떤 색감이어야 평안한 마음으로 볼 일(?)을 보는데 집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타일로 포인트를 줘야 손님들이 화장실에 딱 들어갔을 때 '이 집주인 센스 있네' 하고 생각할지를 염두하면서 말이다.


버건디? 핑크? 크림색?(그놈의 크림색) 오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마음속 종착지는 민트 역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민트 맛도 민트 색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워낙 좋아하는 색이 밋밋한 색들이라.. 그렇지만 밋밋한 색으로만 마감된 집은 뭔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화장실 정도는 포인트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민트 색 타일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계속 나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가에 대해 밤마다 고뇌를 했다. (이렇게 소심하다 내가) 옷도 검정, 네이비, 베이지 색 밖에 입지 않는 내가 민트 색 타일을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큰 결심이었던 것이다. 디자이너가 그려준 도면을 보면서 괜찮을 거야, 예쁠 거야.. 내 안의 소심이를 다독였다.





타일 시공 날, 주방부터 둘러보고 뒤를 돌아 화장실을 들여다보았다. 화장실은 한창 타일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자동적으로 내 입에서는 "잠시만 멈춰주세요!" 하고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이게 민트 색이었던가? 내가 이 색깔 타일을 골랐다고? 이건 민트가 아니라 페리오 치약 색이잖아!





타일 낱장 한 개만 보고 선택했을 때는 분명 내 눈에  민트 색으로 보였었는데, 화장실 벽에 붙어있는 타일은 내가 선택한 색이 아니었다. 착오가 생긴 게 분명했다. 발 밑에 놓인 낱장의 타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가 선택했던 바로 그 색이었다. 젠장할.


그렇지만 이 타일로 뒤덮일 화장실 벽을 생각하니 괴로웠다. 다른 타일로 갈아엎을까? 저 위에 민트색 페인트를 바를까? 짧은 시간 동안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아도 방법이 없었다. 당장의 해결책은 한 면의 반만, 그러니까 벽의 1/2만 이 타일로 붙이고 나머지 벽은 바닥과 동일한 타일로 마감하는 것이었다. 그럼 괜찮을까? 구릴까? 나 지금 꿈꾸는 중인가? 여긴 어디지?


때마침 동행했던 나의 열 살짜리 감각 넘치는 아들은 패닉 상태의 애미를 자극하는 한 마디를 날렸다.

"여기 마치 공중 화장실 같아!! 캬하하하!"

그믄흐르... 음므 지금 쁙친거 안보이느...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동요나 자극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란 말이다! '예뻐, 괜찮아, 상큼해, 고급져' 같은 따뜻하고 간지러운 말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현장에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나는 한 명이 있었다. 나의 과 후배이자, 설계 및 인테리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동생. 센스 넘치는 녀석에게 속상한 마음에 카톡을 보냈다. 함께한 세월이 길어, 녀석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내가 보낸 타일 사진을 보고 잠시 난감해하는 듯한 동생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언니, 이거 티파니 색인데요? 매일 티파니 보석 상자에 들어가는 기분일 거 같아요!"


녀석은 나를 너무나 잘 알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말이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이 화장실에 멋진 이름을 붙이노라.

티파니에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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