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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토끼 Oct 08. 2024

오페라의 유령

혼자 할수 있는 일 없는 일

가끔 난데없이 너의 유령을 본다. 너가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다. 여기 이곳에 너가 있을 리가 없지.


사실은 혼자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언제 두사람이 그렇게 꼭 붙어 지낸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히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편하고 자유롭다. 그전과 다름없이 나는 여전히 성실하기까지 하다.


봐라. 나 혼자도 잘할 수 있다!! 라고 자랑하고 싶은 순간. 사실 이런 자랑을 할 수있는 사람이..

너 밖에 생각 안나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내 일정만 고려한 채 누구를 배려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렇게 편하다는 걸 오랜시간 잊고 있었다.


보고싶은 공연을 한장 예매했다. 티켓 한장만 사면 되자나!! 럭키비키.  10월엔 콘서트, 11월엔 뮤지컬 예매를 끝낸 나 자신 뿌듯하다.


의외로 나의 식욕이 왕성해졌다. 음식을 와구와구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다. 밤늦게도 먹는다. 나는 너와 있을 때 왜 그렇게 적게 먹었을까. 너가 많이 먹어서 그랬나보다. 너를 더 먹게 하려고 그랬던가. 왜그랬지. 내 배를 부르게 했어야했는데.....지금은 내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밤 9시에도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과자도 먹는다.


종종 같이 먹던 스시집을 못가게 되었으므로 스시가 먹고 싶은 생각이 며칠동안 들어서 처음으로 배달 어플을 써봤다. 처음 시도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배달 라이더가 어디에 있는지 굳이 다 보여주고 굳이 메세지가 많이 왔다. 메세지도 음식의 양도 많았지만 야무지게 다 먹고 첫배달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추석 기차표를 스스로 예매 했다. 이제 버스는 못타겠으니까 집에 내려가려면 기차를 꼭 예매 해야 하는데 표 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어서 매번 너가 명절표를 예매 해주었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대기하지는 못했지만 취소표를 잘 노려서 보란듯이 왕복으로 잘 샀다. 아주 자랑스러운 순간.


토요일에 스터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통 군것질로 뭘 먹을까 고민한다. 이 시간이 꽤 즐겁고 행복하다. 일주일 내도록 과자로 가는 손을 힘들게 막기만 하다가 토요일에는 그래도 약간 먹자는 날이다.


너가 있을 때는 너가 좋아하는 닭꼬치를 사왔었지만_ 너가 없으니 닭꼬치는 먹을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거기 닭꼬치는 너무 맛있기 때문에 혼자 두개를 사서 다먹었다. (나는 닭꼬치 두개를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치열하게 더운 여름을 보내느라 올 여름에는 차가운 음료를 꽤 많이 먹었다. 코코넛커피스무디에 빠져서 동네 카페를 돌아다니며 사먹었는데 가장 맛있는 곳은 내 방에서 가장 멀었고 코커스가 먹고 싶은 토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저번 토요일을 마지막으로 내년을 기약해야겠다. 요즘엔 설탕 가득 묻힌 꽈배기를 좋아한다.  이번 토요일에 또 사먹어야지.


혼자하기 아직 망설여지는 일은 바로 여행이다. 종종 바람쐬러 지방에 가거나 호캉스를 즐겼는데 혼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과정을 시작하기가 조금 귀찮다. 숙소를 잡고 기차를 예매하고 맛집을 찾아 밥을 먹고 이동하고......나 자신과의 약속은 쉽게 귀찮아지고 안지켜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온통 주위에 커플들뿐일텐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이 힘들 것 같다. 심지어 혼자 부담하기에 내가 원하는 숙소는 꽤 비싸다. 조용한 곳인데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고 책보고 수영하고 아침까지 주면서 십만원인 곳을 못 찾아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고 결제도 하지 못했다.


나의 여행메이트 찾기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다. 소개 자리에 나온 분들은 거의 마음에 안들기도 했고 오래 만나고 싶은 상대들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지만 내가 까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도 익숙해지는게 예전에는 그런 자리가 너무 기운이 빠져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낯선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알아보는 게 좀 재밌어지려고 한다.


나는 과연 나의 여행메이트를 찾고 너의 유령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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