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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Nov 23. 2021

분노,
나를 지켜줄 가장 충직한 친구.  

정신과 의사선생님은 내게 끝이 있는 스트레스와, 없는 스트레스를 나누어서 물어봤다. 

나는 끝이 없는 스트레스를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가족끼리 사업을 하고, 

통제광인 아빠가 있고, 

더 심한 친척들이 있다.  


의사선생님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누군가 이해해준다는 그 기분 하나만으로도 나는 치유 되는 기분이었다. 


*



하지만 이사를 해야해서 새로운 병원을 찾아가야 했다. 

이미 마음에 안 맞아서 병원을 바꾼 전적이 있는 나에게는 꽤나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었다. 


그 때 나와 일을 하는 친척 중 하나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엄연히 내가 고용을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애매했고 불편했다. 

서로 조심하려고 했다. 

아니 나는 조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손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손아랫사람에게 월급을 받는 불쌍한 나. 

 

이 사람 역시도 이 전에 소개한 순탄 중 한 명인데, 

자신이 당했던 n년간의 시집살이로 인생 모든 프리 패스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비교적 젊은 세대인 내가 봤을때는 사실 그의 행보들은 불쌍하기보다는 불쾌하다.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고 유산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자꾸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조차 되지 않으니까. 

그냥 그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시집살이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성질이 더러워졌다고 했으며

자신이 화가 난 상태가 아주 당연하고 

주변에 그 화를 감추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신경질적인 말투는 항상 나의 신경을 긁었으며,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고용인으로서 까지 가지 않더라도) 최악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경우가 없었으며 

수습을 하는 시간보다 변명을 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나는 항상 그걸 달래거나 들어줘야 했다. 

내가 손 아랫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고용주이기 때문에 그의 자존심이 상할 것을 염려해서 항상 배려해야했다. 


그 사람이 또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 왔다. 

그런 말들이 나를 정말 힘들게 한다고, 그만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별 얘기 안했는데 왜 난리야?]


별 얘기 안 했는데. 

별 얘기를 오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 짜증을 내면서 말하면 별 얘기이지않을까? 


분노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어기제 중 하나라고 했다. 

내가 분노를 표현하면 상대는 더 이상 그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분노를 거세 당했고 내 주변은 내가 뭘 싫어하고 힘들어하는지. 

왜 내가 약까지 먹으면서 버티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


나는 예의 차릴 것도 없이 끝까지 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울증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지 한 달이 지났고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만 하자는 상대에게,

네가 나한테 한게 얼마인데 고작 이정도로 그만하냐고 물고 늘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한 후에야 대화는 끝이 났다. 


그는 아직도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많이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배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양상을 띄는 행동을 한다. 

배려와 두려움은 한끗 차이엿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차이를 모르는 어른이 되었다. 


*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모르는데로 가자고 했다고 지나가는 차에 하는 척 욕을 했다. 

그래서 같이 했다. 지나가는 차에 하는 척. 

아저씨는 조용했고, 내가 내릴 때 까지 말을 걸지 않았으며 

내릴 때는 존대를 했다. 


어떤 친구가 나한테 그랬다. 

"한 놈만 걸려봐라 상태인데" 

그랬다. 나는 지금 한 놈만 걸려봐라 상태인것이다. 

이제는 나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기분을 나쁘게 해도 

하하.... 하고 속으로 삼켜내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충분히 내 기분이 나빴음을 표현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수 있게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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