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던 날
살면서 법원이란 데를 처음 가봤다. 입구에서 보안요원이 금속탐지기로 몸을 훑는데 괜히 죄지은 사람처럼 몸이 움츠러들었다. 서류 제출만 하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무슨 교육도 들어야 한다고 해서 시간이 길어졌다.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영상교육이라고 했다. 교육실에 모인 수많은(?) 예비 이혼부부들을 보며 이혼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놀랐다. 띄엄띄엄 앉아있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짜게 식은 분위기가 숙연했다.
영상은 상당히 신파적이었다. 이혼 가정의 여러 케이스를 보여줬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아이나 양육비를 제때 주지 않는 부모를 보며 우리 애들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내 새끼가 저런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눈물이 나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우는 순간 이혼이 진짜 주홍글씨가 될 것 같아서였다. 가능하다면 이혼을 어쩔 수 없는 사고 정도로 넘기고 싶었다. 그래야만 남은 인생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부스럭 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남편 놈이 휴지를 뽑아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훔치고 있었다. 일은 자기가 벌여놓고 이제와 울긴 왜 우는지. 항상 이런 식이다. 누가 보면 나만 나쁜 년인 줄 안다니까.
숙려기간 3개월 후.
1시간 반 전 일찍 법원에 도착했는데 나보다 더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자가 주무관에게 먼저 온 순서대로 번호표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주무관은 누군가 먼저 줄을 서면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순서가 생길 거라고 말했다. 약간 맛집 오픈런 같은 건가? 조정실 오픈 20분 전, 여자가 줄을 섰고 그 뒤에 내가 섰다.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터주느라 앞사람과 옷깃이 자꾸 스쳤다. 여자가 흘긋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혼하는 사람이 참 많네요"
"그러게요.. "
내가 어색하게 웃자 여자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새 출발 하세요!"
훅 들어온 이혼동기의 파이팅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 조정실 문이 열렸다. 신분증을 내고 번호표를 받고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절차는 처음 방문 때보다 더 간단했다. 양육 관련 확인질문 몇 가지가 전부였다. 요란했던 결혼준비과정과 비교하면 허무할 지경이었다.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멀리서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못 본 사이 한 10년은 늙은 것 같았다. 초라한 모습을 보니 더 화가 났다. 백미러로 비치는 남편의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7년의 연애, 16년의 결혼생활.
오빠이고 남편이고 아빠였던, 그리고 내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