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천재인것 같아요

by 누피

"서우, 이미 뽀로로 비타민 두 개나 먹었잖아. 하나 더 먹으면 어떻게 되겠어, 응?"

"세 개"

"..."


나는 그저 단것을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말을 하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엄마한테 혼난다거나, 배가 아프다던가 그런 일반적인 대답이 아닌 산수를 해버리는 아기라니..워낙 언어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 막연히 문과 쪽일 거라 생각했는데 셈까지 잘하는 걸 보니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육각형 인재인가.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우리 아이 천재론'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우리 똑쟁이, 실리콘밸리 가야겠다."

"실리콘밸리?"

"응, 실리콘밸리. 거긴 똑똑한 사람만 갈 수 있거든."

"서우처럼?"

"그렇지, 나중에 창업해서 돈도 많이 벌고"

"돈 많이 벌면?"

"멋진 곳도 가고 맛난 것도 먹고 장난감도 실컷 사는 거지"


나는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서우를 떠올렸다. 현생에 찌들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훗, 이게 바로 젊은 부모들의 특권인가. 망상 한 스푼에 하루의 피로가 사라지는 마법.


"실리콘밸리 가서도 이모 잊으면 안 돼"

"응"


서우가 짐짓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문득 나의 지난 육아가 떠오른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로 시작해 '왜 이거밖에 못하니'로 끝난,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대하고 실망하고 울고 화내던 시간들. 이제는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막연한 기대로 행복했던 날들은 끝났지만, 기대를 내려놓음으로 평안에 이르는 날들이 아직 내게 남아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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