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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ji 린지 Jul 06. 2020

{소설} 손이 예쁜 그녀는 #2

손이 예쁜 그녀의 짧은 이야기-

그녀는 작은 핸드백조차 남자친구의 손에 맡겼으며, 그 누구를 위한 요리도 하지 않았고 손잡는 것조차 꺼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지 끼는 것을 싫어했다. 반지야말로 손에 자국을 남기는 가장 좋지 않은 악세사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차마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그녀와 사귀었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2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갔다. 평균 이상인 그녀의 외모와 도도한 말솜씨에 반해서 다가왔던 남자들이 단지 그녀의 ‘손’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녀에게 느꼈던 설렘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슬프지 않았다. 그녀의 콧대가 높았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때에는 그녀가 누군가를 절실히 그리워하며 사랑할 만큼 외롭지 않던 아주 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나. 어쨌든 그녀는 그때만 해도 떠나간 남자에 대한 미련을 남기거나 그리움을 남기기보다는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손을 관리하고 그 손을 더 사랑하는 일이 중요했었다.







 그 뒤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그녀도 조금은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 동안 그녀 스스로 남자를 진지하게 만나는 것에 대한 철조망을 조금씩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단박에 허물어 버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철조망을 없애버리려니, 그녀는 손이 다칠까 두려웠다. 이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 적어도 데이트 할 때 잠깐 동안은 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라고 그녀는 스스로 말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연애를 하면서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는 것은 철사가 삐죽삐죽 나있는 철조망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과 같이 힘든 일이었다. 아니야, 지금부터 조금씩 달라질 거야. 점점 더 달라지겠지. 라고 말하며 그녀는 이번에 새로 구입한 최고급 핸드크림을 손에 바르고 있었다. 



 


그녀가 과연 마음을 고쳐먹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쌓였던 외로움에서 나온 기회이자 신호였을까.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아주 짧은 순간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했다. 펜을 취급하는 전문 매장에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나온 5가지 색상의 잉크펜을 고르던 중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카운터 직원에게 쪽지를 내밀며 이 만년필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죄송한데, 제가 오늘 처음이라서...... 


직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카운터 옆에 진열된 만년필과 만년필 목록이 적힌 듯한 용지 번갈아 가면서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는 잉크펜을 고른 후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갔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직원과 입을 굳게 다문 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번갈아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제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원은 만년필을 찾으려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고 환한 웃음과 동시에 부끄러운 낯빛을 띄며 남자가 건네준 쪽지를 그녀에게 살며시 건넸다. 죄송해요, 제가 오늘 처음이라서... 그녀는 직원이 건네준 쪽지를 슬쩍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 


선물하실 건가보네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진열대를 한번 훑어보더니 아, 이거네요. 라고, 그녀의 예쁜 손가락으로 진열장 위를 짚어주며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고맙다는 눈빛을 그녀에게 보내며, 선물포장 해드릴까요? 라고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네, 은사님께 드릴 선물이니 부탁드립니다.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은사님 선물이면 너무 젊은 스타일로 고르셨네요. 라고 말하며 주름이 가득한 손이 방금 고른 만년필을 들고 있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어울리지 않아, 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남자는 그럼 다른 만년필로 추천해 줄 것을 정중히 부탁하였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한손을 입술과 턱 사이에 살포시 가져간 뒤 진열장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어쩜 손을 저렇게 우아하게 다룰 수 있을까!


그녀는 아까처럼 진열장 위를 살짝 짚어주며, 이게 더 좋을거라며 권해주었다 그 말에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잽싸게 직원을 불렀다. 이걸로 바꿔주세요. 그는 그녀에게 미소를 건넸고, 그녀는 그런 그가 나쁘지 않았다.     


(끝, 아마도?) 


*2008년 즈음에 썼던 캐릭터 스케치 같은 짧은 작품입니다. 

*조금 다른 버전으로 시나리오 각색 작업도 함께 진행중입니다. (공모전 및 포트폴리오 용-) 

*이 글과 좋은 인연이 닿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anlinji22@naver.com / 글 관련 문의는 메일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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