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별과 함께한 고비사막의 두번째 이야기
고비사막에서 보낸 이틀은 잊을 수 없는 편안한 날이였다. 숙소 이동을 위해 늦은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렸다. 오늘은 차량 이동 시간이 짧은 날이었고, 유목민 게르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샤워나 세안은 기대할 수 없는 하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30분 정도 차로 이동한 후, 유목민 게르에 도착했다.
고비사막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낙타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 앞쪽에는 유목민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간이 벤치에 앉아 있던 10명 남짓의 가족들은 시종일관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목민 가족 중 한 명이 몇일전 결혼을 했다고 했다. 몽골에서는 결혼 후 가족들이 모여 3일 동안 축하하며 즐기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도 가족들은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어린아이들은 공놀이를 하며 마당을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은 알몸 상태로 뛰어다니며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사진 속의 나는 얼굴은 새까맣게 타 있었고, 입고 있던 원피스는 옆집 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그 아이들을 지켜보며 나도 미소 지었다.
우리는 잠시 짐을 정리한 후, 가족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게르 안에서 바라보았다. 가이드가 말하길, 그들은 곧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가족들은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타고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이제 그곳엔 우리만 남아, 고비사막을 배경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을 차례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척박한 땅 위로 부추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바람을 맞으며, 마치 유목민 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잠시 후, 검정색 개 한 마리가 우리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우리는 살짝 겁을 먹고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 시간이 되었고, 가이드 자야가 점심을 가져왔다. 그날의 메뉴는 몽골식 볶음국수였다. 하지만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음식이라고 했다. 국수에 김치와 고기를 넣어 볶은 음식은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볶음국수를 다 먹고 난 뒤, 우리는 다시 레몬을 짜서 보드카와 하이볼을 만들었다. 그렇게 고비사막의 바람을 맞으며 낮술 한잔을 곁들인, 여유로운 오후가 이어졌다.
오후일정은 낙타타기가 전부였고 낙타에서 냄새가 많이 나고 바람에 날려 모자나 주머니속의 물건이 떨어지면 낙타가 놀래면 위험하다고 안내해주었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낙타체험을 위해 목장으로 향했다.
낙타목장 근처에 다른목장을 바라보니 그목장은 더 큰목장이였고 그목장은 낙타가 1000마리나 되는 큰 목장이라고 했다. 그 목장은 몽골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라고 가이드 자야가 알려주었다.
역시 몽골의 부자는 낙타나 말의 숫자로 결정하는가 보다.
낙타를 타는 기분은 처음엔 꽤 낯설고 어색하다. 말이나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먼저, 낙타는 키가 매우 커서 올라타는 순간부터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 들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낙타가 일어설 때, 뒷다리부터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몸이 앞으로 확 기울어지며 순간적으로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이때는 마치 아래로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긴장했다.
일단 낙타가 완전히 일어나고 나니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고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낙타의 걸음은 말과 다르게 느리면서도 큰 흔들림이 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상체가 앞뒤로 천천히 흔들리는데, 이는 마치 파도 위를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들었다. 걸음걸이가 일정해서 처음엔 그 흔들림에 적응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니 리듬에 맞춰 몸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안정감이 들었다.
낙타의 털은 거칠고 두꺼워 손으로 만질 때는 약간 뻣뻣한 느낌이 들고, 낙타 특유의 냄새가 가까이서 느껴졌다.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낙타의 등이 땀에 젖어 미끈거리는 감촉도 있다. 고비사막처럼 넓고 황량한 곳에서 낙타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사막의 바람과 모래, 그리고 낙타의 리듬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독특한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엄마와 딸이 낙타를 끌며 서로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딸은 놀고 싶어 보였고 엄마의 부탁으로 낙타를 끌어주고 있는 듯했다. 투덜거리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딸은 그저 더 자유롭게 뛰놀고 싶을 뿐일텐데.. 미안!! 꼬마친구..ㅎㅎ
초원을 한 바퀴 돌고 우리는 목장으로 돌아왔다. 손과 발은 대충 소독용 물티슈로 닦아내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세안과 양치를 위해 준비한 5리터짜리 생수 한 병이 있었다. 그 물은 다음 날까지 4명이 나눠 써야 했는데, 평소 물을 펑펑 쓰며 살던 우리에게 이 생수 한 병은 고비 사막에서는 무척 귀한 자원이 되어 있었다.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생각에 서로 웃음이 터졌다. “얼굴도 닦고 목도 닦으려면 물을 더 줘야지!”라며 장난스러운 말이 오갔다. 조금 더 물을 주겠다며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생수병에서 직접 물을 따라주는 대신, 종이컵에 한 컵씩 담아 쓰는 게 낫겠다며 정해진 양을 서로 나눠주었다. 그렇게 물을 아껴 쓰면서도 우리는 “정량만 줘야 한다”라며 투정을 부리며 깔깔댔다. 그 귀한 물을 한 컵씩 나누는 순간마저도 우리에겐 즐거움이었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저녁노을이 점점 짙어지며 초원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해온 에어베드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우리만의 작은 공간이 생겨났다.
어둠이 내리자 하늘엔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에서 선명한 별을 본 지가 참 오래된 것 같았다. 바쁘게 흘러가는 서울살이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시간이 떠오르며, 문득 슬퍼졌다.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그 하늘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하늘 한쪽에서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보였다. "북두칠성이다!" 우리는 흥분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사진 속에서도 별들은 또렷하게 담겼다. 그 밤, 초원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마치 우리만을 위한 특별한 무대 같았다.
우리는 그 특별한 무대 위에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에어베드에 바람을 넣기 위해 넓은 초원을 뛰어다녔다. 웃음소리가 초원에 울려 퍼지며, 우리는 한 편의 영화 장면처럼 그 순간을 즐겼다. 그렇게 우리만의 영화를 찍으며, 별을 바라보던 그날 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별빚으로 조명을 대신하며 잠들었다.
[고비사막에서의 못다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