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로 연극 관람을 좋아한다.
어린시절 시골 촌에서 살아 연극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친구가 수원 소극장 연극표를 주었다.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때의 그 연극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겨주었다.
영화와 다르게 살아있는 배우의 연기에 감정이입 되어 나도 어느새 그 연극안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종종 시간이 될때면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았었다.
퇴근 후 대학로 소극장을 찾는 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하다. 오늘도 자연스럽게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서서 걸음을 옮겼다. 마로니에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니 유난히도 고운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발끝까지 내려온 가을의 깊은 색들이 눈과 마음을 차분하게 물들인다. 잠시 벤치에 앉아 단풍잎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어느새 가을도 끝자락에 와 있음을 느끼며, 지금껏 지나온 길을 조용히 되짚어보게 된다.
어린 시절, 꿈 많던 청춘, 그리고 지금의 나. 화려한 단풍처럼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 있던 내 지난날의 인생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마음속에 스친다.
가을은 참 묘하다. 화려하면서도 덧없고, 풍성하면서도 쓸쓸하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단풍처럼 말이다.
잠시 뒤 나는 다시 일어나 소극장으로 향했다.
“뷰티플라이프” 이미 영화로도 소개되었던 내용이고 연극으로도 두번째 관람이다.
매번 관람할때마다 느끼는 다른감정이 밀려온다.
연극은 인생의 말미를 함께 보내고 있는 노년의 부부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랜 세월 함께하며 쌓아온 애정 어린 순간들, 또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서히 펼쳐진다. 현재의 다정한 모습 뒤에 담긴 그들의 인생 여정이 궁금해질 즈음, 연극은 시간의 역순으로 부부의 과거를 되짚어가며 중년의 결혼 생활과 청년 시절의 연애까지 보여준다.
노부부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들이 하나씩 오버랩된다. 나는 무심코 눈물이 차오름을 느꼈다. 내 기억 속의 부모님은 늘 묵묵히 우리 가족을 지키는 든든한 기둥이었지만, 이 연극 속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젊은 시절, 힘들고 가난했던 그 시절에도 함께 살아 숨 쉬던 청춘의 순간들을 상상해 보게 된다.
연극의 마지막은 1970년대 부산의 청춘 남녀,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의 연애 시절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살기 힘들던 그 시절에도, 청춘만큼은 한없이 생생하고 아름다웠구나." 이 연극을 통해 나는 그들의 숨겨진 젊은 날을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혜화동의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내 마음은 따뜻한 울림으로 가득했다.
2024.11.12 대학로에서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