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뭐든 중간 이상은 했다. 공부도, 글쓰기도, 그림도, 노래도, 만들기도.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뭐든 어중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어중간한 재능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어중간 컴플렉스'를.
엄마의 조기교육 사랑으로 유년시절 나는 이것저것을 짧고, 다양하게 배웠다. 그중 하나가 그림이었다. 화실에서 제일 처음 배운 것은 데생. 처음에는 원기둥, 원뿔, 삼각뿔, 정육면체같은기본도형을그렸고, 익숙해지고 나서는일상적인사물을그리기시작했다. 주로 벽돌, 소주병, 북어포, 신발, 사과같은것들이었다. 가장 연습이필요한 정물은사과였다. 사과는 얼핏 단순해보이지만, 실은 명암과질감을잘표현하기가 쉽지 않아소묘의기본이된다고선생님은말씀하셨다.
며칠 동안 매일 같이 사과를 그리다보니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어느 순간 사과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도 생각만으로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과의 꼭지부터 시작해 봉긋 솟은 위 부분을 지나 갸름하게 들어간 아래쪽 라인, 비교적 평평하고 좁은 바닥까지. 명암은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반사광의 위치는 어디인지도 머리 속에 그려졌다. 이쯤 되니 직육면체인 벽돌은 너무 쉬웠다. 아마 그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 뭔가를 흉내내는 방법을.
ⓒ Pixabay
그렇지만나한테 그림에 재능이있다고 딱히생각하지는않았다. 보고따라그리는걸반복하면누구든이 정도는 할수있다고생각했다. 뭣보다상상해서그리는건젬병이었다. 한번은화실수강생들이다같이공원에놀러갔다와서수채화를그린적이있는데, 머릿속이하얘졌다. 이럴거면사진이라도찍으라고하시지…선생님이원망스러웠다.
그림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뭐든 중간 이상은 했다. 공부도, 글쓰기도, 그림도, 노래도, 만들기도. (물론 춤은 아직도 몸치입니다만)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뭐든 어중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어중간한 재능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어중간 컴플렉스'를. ‘음악밖에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음악으로 먹게 살게 됐다’고 말하는 어떤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부러워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안온한 삶을 위해 대기업 공채를 준비하는 친구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기업에는 취직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며 방송 프로덕션에 들어갔고, 어떻게든 작가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속에는 나를 어중간에서 벗어나게 해줄 뭔가 다른 삶이 있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대표님은내가막내작가일때부터팀장피디로서나를지켜봐왔던방송선배였다. 입봉을하기위해다른프로그램으로옮겼다가, 원고를쓰는작가로서같이일하게된것은그때가처음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원고에대해 이만큼따끔한지적을받은적이없었다. 흉내를내고있다니.그제야내가어떤일에있어서든중간은하지만특별할수없었던이유를 알 것 같았다.이십대 초중반, 갓 작가가 된 나는 가끔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원고로 쓰는 게 부담스러웠다. 사진을 찍는 시각 장애인들의 마음이라든지,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는 중년 부부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인터뷰하고, 고민하면 될 껄. 작가라면 뭐든 상상해서 멋진 문장으로 포장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흉내만 냈나보다.
며칠 지나서였나, 같은팀에서일하던선배작가는내게말했다. "사실나도어렸을때흉내내는걸잘했었어." 선배는막내작가에서바로다큐멘터리메인작가로입봉을한드문 케이스였다. 선배가막내작가로일할당시담당피디에게 인정을 받아단숨에다큐메인작가가될수있었다고한다. 그러면서선배는본인도익숙치않은톤의원고를쓸때다른작가가쓴원고를미리읽어본다고했다. 원고쓰기직전에반복해서읽으면그톤앤매너에적응해서원고가더잘써지기도한다는것이다. 사실나도그랬다. 비슷한아이템의 원고를찾아서입으로 소리내어 읽어보기도했다. 당시엔 좌절감이 너무 커서 큰 위로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흉내를 잘 내는 것도 재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언젠가 내것을 찾을 수도 있겠지.
그토록남들과 다른삶을원하던나는 몇 년 후다수의삶을살게되었다. 다수의삶이라함은, 대다수의사람들이출근하는시간에출근하고, 일을하고, 퇴근하고, 쉬는그런삶말이다. 규칙적인 삶을 살게 되니 이전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누구와먹는지가중요하다며아무술집이나들어가던나는, 블로그를정성스레검색해서맛집을찾아가는즐거움을알게됐다. 인디음악을고집하던내가아이돌음악을듣고퍼포먼스영상을보는즐거움을알게됐다. 엑소의칼군무를 보면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친구의마음을이해하게됐다. 은퇴한부모님의건강보험료를내드릴수있게됐고, 이자가저렴한전세대출을받아서울로이사를할수있게되었다. 흉내내는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우리는다른것을흉내내기를부끄러워 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흉내내는것자체가능력이될수도있고, 그것으로 예상치 못한즐거움을얻을수도있다. 내가김민철작가의 <모든요일의기록>을읽고나도에세이를써볼까, 흉내를내게된것처럼. 이세상에수많은퇴사에세이들이있지만나도써보기로마음먹은것처럼. 누구든오리지널에범접할수없다는것을알고있지만, 가닿으려고노력하면서 희열을느끼는것처럼. 우리는누구나흉내를낸다. 그리고저마다각자의즐거움을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