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로물루스>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142년, 웨이랜드 유타니 사가 경영하는 식민지 행성 '잭슨의 별'에서 살아가는 '레인'(케일리 스패니). 그녀는 남동생이나 다름없는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와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한다. 마침내 주어진 작업 시간을 모두 채워서 꿈이 이뤄지려는 순간, 레인은 작업 시간이 다시 늘어났고 그녀는 평생 식민지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 '타일러'(아치 르노)가 접근한다.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있는 연료와 우주선을 활용하면 새로운 행성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레인은 목숨을 건 식민지 탈출 계획에 가담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어긋난다. 의도치 않게 로물루스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을 깨워버린 것. 에이리언이 습격하는 가운데 레인과 앤디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사투에 나선다.
오마주와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한 재화의 소비를 한 단위 변화시킬 때 체감하는 효용의 변화분을 한계 효용이라고 할 때, 그 효용의 증가분이 점점 줄어든다는 법칙이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장수 시리즈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잘 보여준다. 한 시리즈가 장수할 수 있는 힘은 첫 편의 임팩트에서 비롯한다. 액션, 볼거리, 스토리, 캐릭터 중 하나라도 관객의 눈을 붙잡으면, 그 매력이 곧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이 된다.
그런데 시리즈가 반복될수록 이 매력은 장애물이 된다. 한 번 자극에 익숙해진 관객은 더 이상 효용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변화를 주는 것도 쉽지는 않다. 오마주와 변화 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 과하게 변주하면 기존 정체성을 사랑하는 팬들이 프랜차이즈를 떠날 테니까. 물론 변화를 주지 않으면 이름값만 남은 채 도태된다.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어깨도 같은 이유로 무거웠다. 본편 4개와 프리퀄 2개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관객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던 시리즈도 되살려야 했다. <로물루스>는 영리하게 과제를 해냈다.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클래식한 매력을 선보이면서도 시대에 맞게 달라진 공포를 선보인다. 그 덕분에 <로물루스>는 다른 시리즈의 수많은 속편과는 달리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준수한 공포 영화
<로물루스>는 독립적인 공포 영화로서 준수하다. 중반부까지는 <에이리언> 1편을, 후반부는 2편을 오마주 하되 전편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초반에는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에이리언과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페이스 허거가 사람의 체온과 소리에 반응한다는 점을 역이용해 복도를 지나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장소만 우주선 내부로 바뀌었을 뿐, 마치 좀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억지스러운 전개가 없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몇몇 공포 영화는 상황을 손쉽게 설정하려고 주인공들을 바보처럼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로물루스>는 다르다. 여섯 캐릭터를 둘씩 짝지어서 남매 또는 커플이라는 관계성을 부여한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인간 주인공의 선택에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생긴다.
각각의 쌍을 다른 공간에 던져두면서 다양한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 쌍은 화물선에, 다른 한 쌍은 로물루스 기지에, 또 다른 한 쌍은 두 공간에 찢어서 배치하는 식이다. 그 결과 죽거나 도망치기만 하는 단조로운 구성을 벗어날 수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여동생 '케이'(이사벨라 메르세드)가 죽는 모습을 바라만 보는 타일러, 그를 도우려는 레인과 그녀를 막는 앤디, 앤디를 원망하는 레인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후반부에는 나름 화끈한 총기 액션을 선보인다. 우주선 내부 중력 생성기와 제모노프의 산성 피라는 변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쌓아 놓은 서스펜스를 일거에 해소하는 쾌감을 안겨준다. 각각의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구성은 마치 게임처럼 보이기에 신선하다. 반면에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는 외계 괴물의 끈질긴 생명력은 <에이리언> 시리즈다워서 반갑다.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하지만 <로물루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오마주가 아니다. 변화다. 구체적으로는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1편이든, 2편이든 <에이리언> 시리즈는 같은 공포를 다뤘다. '미지의 존재로부터의 습격'이 원천이었다. 에이리언은 인류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우주에 대한 공포감을 시각화한 캐릭터였다. 아무리 죽이고, 우주 공간으로 떨궈도 기어코 살아 돌아오는 이 괴물은 이해할 수 없어서 더욱 무서웠다.
특히 그들은 '인간다움'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존재였다. 에이리언은 탄생 과정에서부터 인간다움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들은 인간 숙주의 입을 통해 잉태되고,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난다. 태어날 때는 모체를 찢고 나온다. 이 과정은 인간답지 않아서 불편하고, 잔혹하게 느껴진다.
<로물루스>는 그와는 결이 다른 공포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범죄자나 인공지능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위협'이라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반영했다. 그래서인지 <로물루스>는 인간을 닮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인조인간이 있다. 그들은 인간을 똑 닮았다. 인간과 똑같이 말한다. 심지어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레인을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 양식은 인간답지 않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희생한다. 과학장교 '룩'(이안 홈)은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거리낌이 없다. '검은 액체'를 이용해 개량 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지속하려고 정작 사람을 가차 없이 희생한다. 앤디도 잠시 포맷된 동안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인간을 빼닮았지만 전혀 인간답지 않은 행동은 에이리언과는 다른 두려움을 자아낸다.
인간다움을 잊은 세상
달라진 속성의 공포는 <로물루스>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는 '잭슨의 별'에서의 삶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24시간 내내 해가 뜨지 않는 곳을 벗어날 수 없다. 레인이 계약한 노동 시간을 다 채워서 이주 신청을 하자마자 노동 시간이 실시간으로 늘어났듯이. 즉, 인간이 더 풍요롭고 넓은 공간에서 살겠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식민지 개척은 오히려 인간들을 사지로 몰고 간다.
로물루스 기지 안에서도 비슷한 결의 사건이 반복된다. 인간을 더 완전하게 개량하겠다는 목적의 실험은 오히려 로물루스에 타고 있던 모든 인간을 해친다. 즉, 인간을 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욕망은 인간 같지만 인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조인간의 행위와 같은 궤에 있는 셈이다.
이는 익숙한 형태의 에이리언 대신 '오프스프링'이 마지막 장애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프스프링은 제모노프의 몸과 인간의 얼굴을 지녔다. 인간을 닮았고, 인간처럼 표정도 짓지만 결코 인간은 아닌 '불쾌한 골짜기'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충격을 선사한다. 이는 인간을 위하는 존재나 행위가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세태와 그 세태가 유발하는 두려움을 시각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시리즈의 새 출발
<로물루스>의 스토리텔링은 <에이리언> 시리즈에 일관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눈에 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피에르 죄네가 각자 개성을 녹여낸 시리즈였다. 반대로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로 이어지는 프리퀄은 리들리 스콧만의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본편과 프리퀄은 분위기가 상이하고, 설정도 미묘하게 달랐다. 특히 프리퀄은 기원이 분명하지 않았던 에이리언의 신비함을 벗겨내 시리즈 개성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로물루스>는 바로 이 괴리감을 채워준다. 기존 에이리언이 등장하는 장르 영화로서의 쾌감은 본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에 인조인간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자극하는 프리퀄과 궤를 같이 한다.
미술 디자인의 영역도 가교 중 하나다. 로물루스 기지를 비롯해 우주선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1편과 같이 투박한 기계미가 돋보인다. 반면에 검은 액체가 있는 실험실만은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한 유려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있다. 프리퀄과 본편의 장점만을 더해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를 공간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영화의 부제가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인 것도 시리즈의 새 출발을 알리는 듯 보인다.
방점은 찍지 못했다
다만 <로물루스>는 시리즈를 회생시키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뛰어난 연출과 편집, 스토리텔링으로 서스펜스를 끌어올려도 기존 시리즈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에이리언을 완전히 격퇴한 줄 알았지만 인간 몸에서 새로운 괴물이 튀어나온다거나, 어딘가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이 죽지 않고 등장하는 식이다. 다음 사건을 예상할 수 있다 보니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캐릭터 구축도 아쉽다. 사실 남매애를 내세운 선택은 꽤 흥미롭다. 보통 상업영화에서는 이성애, 동성애, 우정, 형제애나 자매애를 감정적인 동력으로 자주 활용하기 때문. 그런데 정작 앤디와 레인을 제외하면 남매애를 보여주는 형태는 일차원적이다. 또 앤디와 레인의 남매애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레인이 특유의 개성을 보여주는 대신 '엘렌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2024년에 맞게 업데이트한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
결과적으로 <로물루스>는 시리즈의 연결고리, 혹은 새 출발 그 이상의 위치에 올라서지는 못한다.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기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레인의 다음 이야기는 여전히 기대가 크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모처럼 명성에 맞게, 또 시대에 맞게 배출한 수작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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