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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Aug 28. 2022

가족이라는 끈적한 늪

영화 <초록밤>2022 리뷰

밤이 낮보다 어둡지 않고

낮이 밤보다 밝지 않은

우리 모두가 흩어지고 짙어지는, 여름밤


 짙고 습하며 찜찜한 영화의 분위기와 연극과 영화 무대에서 탄탄히 쌓인 연기력을 통한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를 감상하기에 충분한 에너지와 활력을 더한다. 감독의 연출은 이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만든다. 


 원형의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로 일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주부다. 원형은 장애인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원형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장례식장에 아버지의 친가 가족들(두 고모)이 모이고 부의금 때문에 갈등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죽음의 그림자가 원형 가족을 따라다닌다.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한이 남아 남은 가족들에게 화를 입히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원형의 가족은 불교의 장례를 통해 화를 막고자 기도를 올린다. 하지만 장례식 이후에도 원형의 가족들에게 찝찝하고 끈적거리는 무언가 계속 따라다닌다.

 영화에서 중요한 관계는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다. 원형의 아버지는 무기력하고, 어머니는 남편 가족들의 돈에 대한 욕망과 가족사에 얽힌 치정 가득한 모습에 질린다. 원형은 부모님과 고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끼어들지 못하지만 한 발자국 뒤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끼어들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다. 현실이 버겁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찼음에도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모텔을 전전하며 만나는 여자친구 예원은 결혼을 원하지만 원형은 회의적이고 그럼에도 임신을 하고 싶어 하는 예원 커플은 현실감을 더한다. 침묵은 원형의 아버지와 원형의 성격을 대변한다. 영화 내내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담배를 피운다. 그런 모습에 어머니는 진절머리 친다. 원형은 갈등에 직면할 때면 아버지처럼 입을 닫고 담배를 피운다. 소파에 누워 TV보다 잠든 어머니의 모습은 모텔 침대에 누워 자는 원형의 여자 친구 예원과 오버랩되면서 원형과 예원의 미래는 원형 부모님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더 낫지 않은 미래를 연상하게 한다. 감독이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다. 


 영화는 대사보다 시각적인 스토리 전달 방식이 눈에 띈다. 관객들은 각자의 삶과 경험을 영화의 여백에 적용할 수 있다. 그렇게 영화의 스토리는 스크린 밖으로 확장된다. 

 필름으로 촬영한 듯한 화면의 질감은 보는 관객들의 시각적 만족도를 높이고, 인물이 떠난 빈자리를 비추는 우리 주변의 공간마저도 특별하게 만든다. 제목에서 사용된 초록이라는 언어가 주는 의미와 화면 가득 펼쳐지는 시각적 효과를 통해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매너를 붙잡아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서브텍스트를 한층 깊게 만든다. 초록색은 자연, 생명, 평화, 안정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뜻하는 한편 부패, 죽음, 스산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녹색은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느낌이 부각된다. 영화에는 죽음이 가득하다. 놀이터에서 목이 메어 죽은 고양이, 할아버지가 죽음과 연이은 또 다른 죽음, 짐승의 죽음, 자살을 연상케 하는 메어진 목줄, 생명력 없는 연인 관계, 스산한 바람, 초록색이 만연한 밤이 그렇다.


개봉: 2022/ 07/ 28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한국/ 89분
감독: 윤서진
주연: 이태훈(아버지 역), 김민경(어머니 역), 강길우(원형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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