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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Oct 19. 2022

법으로 출산을 강요하는 사회

영화 <레벤느망 L'événement>2021 심층 리뷰

 영화 <레벤느망>은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국가가 출산을 법으로 강요하는 불합리한 사회를 조명한다. 원작 에세이 '사건'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불시에 찾아온 이 일로 안은 혼란에 빠지고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뒤로하고 낙태를 간절히 원한다. 


 안(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은 자신의 낙태에 대한 결정을 오직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행하려고 하지만 1960년대 프랑스 사회는 낙태를 하려는 그녀를 도덕적으로 압박하고 비난한다. 안의 선택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당시 프랑스의 법과, 의사들의 인식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 낙태에 부정적인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였다. 비공식적이고 비위생적인 낙태 시술은 안의 목숨까지 위협한다. 안은 뒤늦게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는 하지만 관계를 가졌던 남성에게 의사를 묻거나 사실을 공유하지 않고 이 사태를 오로지 혼자 짊어지려고 한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안을 연기한 배우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사는 뛰어난 연기로 현실감을 더하며 과거에 존재했을 안과 현재에도 어딘가 존재할 안 뒤센느에게 사회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든다. 영화 속에서 임신에 대한 여성과 남성에 대한 태도는 극명하게 나뉜다. 대학을 다니는 여성들(안과 친구들)에게 임신은 질병이지만, 남성들(의사들, 친구들)에겐 철저하게 동떨어진 일이었다. 임신한 아기나 산모에 대한 축복은 존재하지 않으며 안의 낙태에 대한 태도는 완강하다.

 영화에서 남성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초반부 안에게 접근하는 몇 명의 남성들이 있었지만 감독은 구체적으로 안과 관계를 맺은 인물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영화 중반부 안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친구를 따라갔을 때 안의 뱃속 아이의 아빠가 정치학과를 다니며 서점에서 만났다는 남성이라는 것이 소개된다. 그 인물의 이름은 막심으로 영화 중반을 넘어 중후반에 등장해 극을 이끄는 요소로 사용된다.


 성적인 욕망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계획적이지 않은 임신으로 인한 당장의 육체적인 변화 그리고 나아가 미래 계획마저 바꿔야 하는 것은 여성이었다. 안의 수업을 담당한 교수는 안에게 "대개 교수는 교수를 알아보죠. 그걸 학생한테도 느꼈고요"라고 말하며 안의 학업적 성취도와 재능을 인정했지만 안은 뱃속의 아이 때문에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고 낙제를 당할 위기에 처한다. 임신은 '여자만 걸리는 병', '여자를 집에만 있게 만드는 병'이라고 불렸다. 안의 주변 여성 친구들도 임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임신은 '세상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게 된다면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임신이었다. 자신의 꿈, 미래에 대한 안의 의지는 긴 송곳을 자궁에 넣어 직접 아이를 지우려는 행동으로 표현된다. 그 질병을 치료한 뒤 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교수에게 달려가 놓친 학업 내용을 전해받는 일이었다. 


언젠간 아이를 낳고 싶어요. 하지만 인생과 바꾸고 싶지 않아요. 아이를 원망할 것 같거든요

 성적이 좋았던 안은 경쟁자인 학생들에게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시선을 받고 있었으며, 주변의 시선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제한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안은 성장하게 되는데 여전히 오만하다는 막심의 막말과 "그래서 인생 어떻게 살래?"라는 공격에 안은 "내 힘만큼 살면 돼"라고 받아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안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다. 


 영화 <레벤느망>2021은 주인공 안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최대한 컷 수를 줄여 시각적으로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했다.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안을 중심으로 동선을 맞춰 하나의 테이크 안에 사건들을 담으려 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4:3의 화면 비율로 배경보다는 인물에 집중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한시도 안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이 느린 템포의 호흡을 따라가게 된다. 


 여성의 임신과 낙태를 다루는 영화 두 편이 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과 한국 영화 <십 개월의 미래>2021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또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선택하는 주인공을 다룬다. 반대로 <십 개월의 미래>에서 미래는 출산을 선택한다. 미래는 임신 사실을 남자에게 알리는 한편 경력 단절에 대한 문제와 점점 변하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낯섦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770년대 프랑스의 시대상을, <레벤느망>은 1960년대 프랑스의 시대상을, <십 개월의 미래>는 2021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여성의 고민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새겨볼 필요가 있다.


 영화 <레벤느망>은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동명 에세이 '사건'을 각색한 영화다.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자랐다. 그녀는 중등 교사, 대학 교원 등을 거치며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자전적 소설 '빈 장롱'으로 등단, '남자의 자리'(1984)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단순한 열정', '부끄러움', '사진의 용도' 등이 대표작이다.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쓰지 않는다"라는 말로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명확한 길을 제시한다. 영화 <레벤느망>의 원작인 '사건' 또한 그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개봉: 2022.03.10
장르: 드라마/ 프랑스/ 100분
감독: 오드리 디완
주연: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 Anamaria Vartolomei(안 뒤센느 역)
원작: 아니 에르노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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