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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연한 출발 Nov 04. 2022

의미 없는 삶은 없다: Be Kind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우리는 망설임 끝에 하지 않은 선택에 미련을 두고,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한다. 나와 다른 삶의 태도와 생존 방식을 애써 무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작은 희망이 있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특히 뭐가 뭔지 모를 땐 다정해야 해요(Please be kind)" 


 젊은 시절 에블린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인 남편 웨이먼드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그곳에서 웨이먼드와 에블린은 성공에 대한 희망으로 셀프 세탁소를 인수한다. 50대가 된 에블린은 세금 신고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고, 아버지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시집간 딸을 여전히 못마땅해하며, 딸 조이는 부모로부터 동성애를 인정받고자 하는 한편, 남편 웨이먼드는 홀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는 중국 이민자 에블린이 세금 신고를 엉망으로 하자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다중 우주의 또 다른 나에게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알파 에블린은 다중 점프(버스 점프)를 할 수 있는 요원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는데 그 조건은 강한 정신력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정신력을 가졌던 딸 조이를 무리할 정도로 다중 점프를 시킨 에블린의 욕심으로 결국 조이는 정신이 산산이 흩어져 조부 투파키가 되고 베이글을 만들어 우주를 멸망시키고자 했다. 알파 웨이먼드는 조이 투파키를 막기 위해 다중 우주로 버스 점프를 해서 에블린을 찾아 나서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조부 투파키 또한 에블린을 쫓는다. 하지만 조부 투파키(조이)의 목표는 에블린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갖 복합적인 감정들을 공감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 중요한 요소는 첫 번째로 다중 우주다.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는데 지금의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은 다중 우주의 또 다른 내가 하게 되고 그렇게 우주의 갈레가 나뉜다. 거품처럼 수 없이 많은 다중 우주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만 태양계는 수 없이 많은 행성계 중에 하나일 뿐이며 그 많은 행성계조차 수많은 우주 속에 작은 일부일 뿐이다. 다중 우주에서 에블린은 요리사, 쿵후를 수련한 여배우, 등등 그 무엇도 될 수 있었으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베이글이다. 

"심심해서 베이글 위에 인터넷 구애 광고, 양귀비 꽃, 참깨, 소금, 꿈, 희망, 성적표 등 모든 것들을 베이글 위에 올리니 진실이 태어나더라고. 그 진실은 Nothing Matter. 모두 부질없다는 거야."

 정신이 우주로 흩어진 조이는 다중 우주의 모든 기억, 감정, 경험을 체험하게 되고 그 끝에는 생명체가 없는 행성의 돌덩이가 된다. 모든 희망을 내려두고 베이글에 지배당한 에블린 또한 바위가 된 조이 옆에 또 다른 돌덩이가 된다.

"상식이 통하는 것도 오직 한 줌의 시간뿐이야"

 세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바로 다중 우주 속 성공한 수많은 에블린 중 가장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에블린이 우주를 구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주인공이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우주에서 에블린은 공학자로 다중우주를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했고, 웨이먼드가 자신의 우주를 지키기 위해 도움을 얻고자 찾아온 에블린은 실패만을 겪은 실패한 인생 중 가장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다.

"늘 뭔가 이룰 기회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지. 모든 실패와 놓친 기회들이 에블린 너를 여기로 이끌었어.
"넌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근데 목표와 성공이 하나도 없이 넌 최악의 에블린이라 실패하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다른 우주의 에블린들이 성공할 수 있었어. 그러니 넌 여기서 뭐든 할 수 있어"

 네 번째 요소는 바로 다중 우주로 건너갈 수 있는 버스 점프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선제 조건인 엉뚱한 행동이다. 통계적으로 개연성이 없는 행동이 점프대가 되어 다른 우주의 나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웨이먼드의 점프대는 립밤을 먹는다거나, 손가락 사이 네 군대를 모두 종이로 베어야 한다는 식과, 에블린은 디어드리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점프대가 소개되고 이는 참신하면서도 재미 요소가 된다.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혼합했다. 세금 신고를 눈앞에 둔 에블린 가족으로 시작해, 세금 신고를 적절하게 끝내는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사건과 사건 사이 수 없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상상력의 세계는 마치 꿈같다. 

 실제 그녀의 삶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은 세금 신고를 맡고 있는 깐깐한 국세청 모범 직원 디어드리이며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는 딸 조이가 있다. 처음 에블린의 목숨을 노리는 안타고니스트(적대자)는 파괴적인 힘을 지닌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다. 또한 가장 위협적인 적대자는 자신의 딸 조이(조부 투파키)다. 실제 삶에서 그녀에게 고통을 주는 인물들이 다중 우주로 표현되는 판타지 세계에서 적대자로 설정된다. 

 조이는 다양한 코스프레를 보여주는데 2022년을 살고 있는 청년인 그녀의 내면적 아픔과 고민, 그녀만의 외적 개성, 취향 등 그녀만의 우주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베이글은 성적표 같은 자신의 현실적인 고민거리를 모두 쌓아 올리자 탄생했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데 모여 조이의 복잡한 내면이 블랙홀처럼 구현된다. 그리고 그 베이글이 알려준 진실은 모두 다 부질없다(Nothing Matter)는 것이다. 결국 조부 투파키가 에블린에게 원했던 것은 그녀의 목숨이 아니라 그녀와 똑같이 우주의 모든 진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해서였다. 조이가 베이글로 엄마 에블린을 데리고 가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돌덩이가 된 조이는 에블린이 자신과 똑같이 돌덩이가 되자 실망한다. 조이는 에블린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희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외모지상주의, 마약, 경제난, 가난, 성소수자로서의 삶 등은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는 수많은 문제들의 고통으로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조이의 베이글에 흡수된 에블린은 깊은 내면에 존재했던 모든 희망을 흡수당하고 삶의 끈을 놔버린다. 타국에서 골칫거리로 당장 직면한 세금 신고 문제를 결국 포기하게 만들고, 남편의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한다. 자신을 실망스럽게 보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 인정을 요구하지 않고, 갈수록 속만 썩이는 조이도 포기한다. 그것이 지금껏 딸 조이가 느끼는 삶에 대한 감정이며 태도였다. 동성애자인 자신의 성지향성과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하는 처지, 그리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가난한 현실 등 아직 젊은 조이가 느끼는 세상은 어둠 그 자체였다. 


 가장 무기력해 보이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남편 웨이먼드는 모든 것을 해결했다. 에블린은 남편 웨이먼드를 한심해하고, 무시하며 그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다중 우주 세계에서 그녀의 가장 큰 조력자는 바로 남편인 웨이먼드다. 그는 희망을 품고 에블린을 찾아와 그녀가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 게다가 싸우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현실과 정반대인 알파 웨이먼드의 모습에 그녀는 점점 그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그의 도움으로 다중 우주를 경험하며 지금의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의 삶을 보면서 현실 에블린은 좌절한다. 쿵후를 연마해 유명 여배우가 된 그녀는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비싸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모두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과 이렇게 차이가 난 결정적인 선택은, 가장 큰 차이점은 첫사랑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가지 않는 선택을 한 자신의 미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반전이 있는데 그렇게 무능하고 한심해 보이던 남편,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남편이 자신을 만나지 않은 미래에서 그 역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성공한 삶을 이루고 명품 드레스를 입고 만난 파티장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만약 두 사람이 젊은 시절 헤어지지 않고 만났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 같다고 후회한다. 이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부족하든, 풍요롭든, 행복하든, 외롭든 우주의 또 다른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갈래의 삶을 동경하고, 꿈꾸고,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웨이먼드의 상냥함, 친절함 그리고 그의 공감 능력이 가족을 구한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이미지 구현이 강점인 영화다. SF(Science Fiction)를 장르로 하는 만큼 얼마나 새롭고, 그럴듯하며,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사한 소재를 사용한 영화는 마블에서 제작한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다. 하지만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수 백억에서 수 천억의 제작비를 자랑하는 메이저 상업 영화들과 다른 방식으로 다중 우주를 표현했다. 앞서 두 스토리 라인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평범한 가정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적대자 또한 외계인이 아니라 주변 이웃들이었다. 전체적으로 아날로그적인 표현들과 VFX 기술력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으며 그것이 새로운 에너지와 매력을 뿜어낸다. 조부 투파키를 표현하는 의상들은 파격적이고 강렬한 멋이 있으며(Punky), 손가락이 소시지인 우주, 알파 웨이먼드가 다중 우주로 넘어갈 때 사용하는 전문적인 기기들은 아날로그로 구현된다. 


 영화에는 다양한 오마주들이 존재한다. 웨이먼드와 에블린이 쿵후 고수인 다중 우주를 사용할 때 보여주는 액션 씬은 과거 성룡 영화(홍콩 영화)의 생활 액션을 떠오르게 하며, 성공한 에블린의 삶을 보여주는 씬에서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조명 카메라 움직임이 왕가위 감독의 화양 연화를 오마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포스터 2, 3, 4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몽타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다. 관객들이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인물들이 겪는 감정과 느낌을 한층 강화시켜 줄 수 있는 몽타주들이 존재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몽타주들이 많아지며 인물들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데 첫 번째는 후반부 돌이 된 에블린이 옆에 있던 조이 돌에게 다가가다가 조이 돌이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조이를 포기하지 않는 에블린 또한 함께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몽타주로 우주에서 두 행성이 서로 부딪히며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장면이 등장하고, 연이어 에블린과 조이가 포옹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돌과 돌이 부딪히고, 행성과 행성이 부딪히고, 에블린과 조이가 극적으로 포옹하며 화해하는 장면이 완성된다. 이는 이미지로 스토리를 강화하며 관객들에게 더 폭발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효과를 주게 된다. 

 또 하나는 베이글에 현혹된 에블린이 조부 투파키 앞에서 남편 웨이먼드를 유리 조각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연이어 등장하는 몽타주는 에블린이 이혼 서류에 사인한 뒤 그 서류를 들고 웨이먼드의 가슴팍에 내리꽂는 장면이다. 이 행동은 웨이먼드를 칼로 찌르는 행위와 이혼 서류에 사인해 웨이먼드에게 전달하는 두 가지 행동을 몽타주로 연이어 사용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더한다. 작게는 초반부부터 베이글을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는 조이를 보여줌으로써 원형이 돌아가는 모습들을 꾸준히 관객에게 주입하면서 베이글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준다. 이렇듯 감독은 뛰어난 몽타주 사용으로 영화를 한층 깊고 다채롭고 탄탄하게 만든다. 


 이 모든 요소들을 하나의 영화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파트는 편집이다. 다양한 특수 효과와 많은 몽타주 장면들, 점프 컷, 기준이 되는 현실과 다중 우주를 구분하는 표현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감독의 연출 의도와 편집으로 표현하고 싶은 에너지와 감정들을 모두 고려하고 계산해야 한다. 스토리와 영상미, 연출, 연기, 편집, 촬영, 미술 모두를 붙잡은 영화다.


"절 자랑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침내 제가 자랑스러우니까요"

장르: SF, 액션, 코미디, 어드벤처, 판타지/ A24(배급)/ 미국/ 139분 
개봉: 2022. 10. 12
감독/각본: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주연: 양자경(에블린 역), 스테파니 수(조이 역), 케 후이 콴(웨이먼드 역), 제임스 홍(아버지 역), 제이미 리 커티스(디어드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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