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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Nov 20. 2021

지옥-종교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연니버스의 결정판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은 올해 공개되는 넷플릭스 국내 오리지널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이다. 원작인 웹툰 ‘지옥’이 워낙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를 넷플릭스의 자본력으로 실사화 할 경우 엄청난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빌어 인간을 통찰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나 또한 상당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었다. 연상호 김독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불러오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이에 마주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많이 그려왔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재난을 불러오지만 이러한 재난 상황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 연상호 감독의 일관된 자세이다. 이 작품 또한 연상호 감독의 일관된 세계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영화에서 초자연적 현상은 딱 두가지만 등장한다. 죽을 날짜를 통보하는 '고지'와 고지 받은 날, 저승사자가 지옥으로 사람을 데려가는 '시연'. 영화는 이 현상을 최대한 극적이게 그리고 있지만 그렇게 많은 장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이러한 현상을 마주한 인간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연상호 감독은 다양한 주제들을 풀어놓는다. 공포의 본질, 그것이 불러오는 인간들의 광기,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종교의 본질이 바로 그것이다. 



지옥을 관통하는 주제는 종교의 탄생과 권력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전반부인 1~3부는 종교가 탄생하는 과정을, 후반부인 4~6부는 종교가 권력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통찰한다. 어느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시연’된 지옥행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속으로 몰고 간다. 도대체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오래전부터 예고하고 설명해 온 정진수(유아인)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고 이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긴다. 전반부인 1~3부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선지자가 우상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른바 종교의 탄생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종교의 역사는 상당히 뿌리가 깊다. 과학이 존재하지 않던 고대 시대, 온통 설명이 불가능한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종교에 기대기 시작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을 그럴듯한 언어로 설명하는 이는 제사장이었고 그 대가로 제사장은 권력을 획득했다. 연상호가 바라보는 종교관은 제사장의 권위에 오르고 있는 정진수와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민혜진 변호사 간의 대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정진수: 옛날 고대 사람들은 일식이 신의 분노 때문에 생겼다고 믿었데요. 그래서 하늘에 있는 큰 개가 해를 베어 물었다고 생각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큰 개를 잡겠다고 사냥꾼들을 출동시키고 그랬다네요. 


민혜진: 사냥꾼이 낫지 않아요? 일식을 신의 분노라고 생사람이나 잡는 제사장보다는요     


정진수: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게 아닐까요? 원래 인간들이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 버리는 족속들이잖아요.     


사람들이 종교를 갈구하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인간은 종교를 통해 알수 없는 사실에 이유와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안식을 얻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새진리회의 유지 사제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신이 아무 원칙이 없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종말이야.” 규칙이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위험 현상이 계속해서 이어질 때 인간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라는 시각인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종교의 작동 원리로 또 한 가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공포”. 

죽음으로 현세의 삶이 끝나더라도 다른 세계에서의 삶이 이어지며, 신을 믿지 않는 죄인은 지옥불에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 이러한 공포는 인간을 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포가 인간을 참회하게 하고 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내세를 향한 인간의 공포를 이용해 권력을 확장해왔다. 중세시대 카톨릭의 면죄부, 미국의 지옥불 설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공포는 기독교가 이 시대에 가장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한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기독교에서 설계한 ‘지옥’은 구약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옥’이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신약부터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아인 예수가 증언을 함으로서부터  ‘지옥’의 세계관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기 시작된 것이다. 기독교가 구축한 ‘지옥’의 세계관은 원죄와 구원을 통해 설계된 것이다. 인간은 원죄가 있고 그 원죄를 씻어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한 구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렇게 구원 받은자는 천국에, 그렇지 못한자는 지옥에 간다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세계관이다. 연상호 감독은 스스로 신의 섭리를 설파한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지옥’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세계관을 마음대로 설정하며 권력을 확대하고 유지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며, 기독교가 설계한 세계관에 도발적인 의문을 던진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中 지옥으로 가는 "카론의 배" 부분


종교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별개로 연상호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영화적 재미를 위한 타협을 하고 만다. 마지막화의 클라이막스는 연상호의 다른 작품처럼 신파적이다. 또한, 마지막화 내내 인물들의 행동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르면서 이야기가 매듭지어진다. 그간 연상호가 보여주었던 단점이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스펙터클해지는 마지막화가 재미있다고 하였지만, 나로서는 앞서 잘 쌓아놓은 문제의식들이 갑자기 급하게 정리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이 작품은 이렇게 아쉬운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호평할만한 작품이다. 그간 연상호 감독이 표현해오던 인간의 부정적 본성에 대한 탐구들을 집대성해 이 작품에 모두 집어넣은 것 같다. 현재까지 나온 연니버스의 결정판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옥"은 도발적인 주제를 던졌고 텍스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이는 여러가지 논란을 양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는 미국의 경우 이 작품이 확산되면 그 파급이 좀 있을수도 있다. 만일 논란이 확산되면 해당 이슈를 통해 이 작품은 또 한번의 대흥행의 동력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과연 결과가 어디로 흐를것인가? 그 결과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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