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이 그간 존재감이 없던 디즈니+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무빙은 OTT 콘텐츠 정보사이트 키노라이츠에서 OTT 콘텐츠 통합 랭킹 1위를 기록했으며, 평점 역시 95.76%의 높은 점수를 기록 중이다. 한 번에 전 세계에 공개하는 넷플릭스와 다른 형태의 디즈니의 릴리즈 정책의 탓인지 세계적인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는 것 같지는 않지만 플릭스 패트롤(Flix Patrol)에 따르면 아시아 홍콩, 대만,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공개한 시점부터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무빙과 스튜디오 앤 뉴
강풀이 2015년 발표한 웹툰 ‘무빙’의 실사화가 처음 공개된 것은 2017년 4월이다. 영화사 New가 ‘태양의 후예’를 성공시키고 드라마 부문에 진출하기 위해 ‘스튜디오 앤 뉴’를 설립하였는데 당시 ‘스튜디오 앤 뉴’는 ‘무빙’을 실사화하기로 결정하였다(Osen, 2017. 4. 19).
이전까지 강풀 웹툰의 실사화는 대부분 영화로 이루어졌지만, 무빙은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스튜디오 앤 뉴는 JTBC와 MOU를 맺었는데 무빙은 끝내 제작되지 못했다. 아마 막대할 것으로 추정되는 제작비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러던 와중 디즈니+가 국내 진출을 선언했고 국내 콘텐츠 수급이 필요했던 디즈니와 스튜디오 앤 뉴는 공급계약을 맺고 5년간 매년 1편씩 제작해 디즈니+를 통해 공개하기로 하였다. 여기에 무빙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무빙과 디즈니+
그리고 2021년 10월 14일에 개최된 디즈니의 미디어 데이를 통해 디즈니는 드디어 한국에 디즈니+를 출시하는 것을 공식화하며 총 7개의 한국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머니투데이, 2021. 10. 15). 그중 하나가 역시 ‘무빙’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무빙’ 외에 다른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오래 기다렸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OTT 관련 특강을 할 때면 나는 늘 이 작품을 소개했다. 국내 드라마 제작비 중 가장 많은 금액인 500억이 투입되는 히어로 물로서, 국내에서 갈수록 존재감을 잃어가는 디즈니+에게 이 작품은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만일 이 작품마저 실패할 경우 디즈니+는 한국에서 실패가 공식화되는 것이라고 말도 덧붙였다.
‘무빙’의 공개는 계속해서 뒤로 밀렸다. 공개 시점이 22년 하반기에서 23년 상반기로 밀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 디즈니+가 점점 어려워지고 한국 사업도 정리한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디즈니+의 정리해고 뉴스와 한국 철수 루머가 나오던 시점 즈음 드디어 공개일정이 확정되고 예고편이 나왔고 드디어 8월 9일 오후 4시에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7편이 한꺼번에 공개되며, 무빙은 실사화를 처음 발표한 지 무려 6년 4개월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뚜껑을 열어본 작품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런 완성도로 선보이기 위해 공개를 계속해서 뒤로 미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식 히어로와 한국형 히어로의 교차점
무빙은 사실 X-맨과 같은 뮤턴트(돌연변이)들의 이야기이다. 무빙 속 캐릭터들은 모두 다 선천적으로 특수한 능력들을 타고났고 이러한 능력은 이들에게 축복이기보다 저주에 가깝다. 이들은 능력자라는 이유로 국가에 이용당하고 평범한 삶을 허락받지 못한다. 각각의 개인들에게는 그러한 능력 때문에 벌어지는 안타까운 서사들이 존재한다. 강풀은 직접 실사 작품의 각색을 통해 웹툰에서 못다한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 넣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래 좋았던 작품이 더욱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 킹덤의 박인제, 박윤서 감독의 연출력과 류승룡을 비롯한 훌륭한 배우들의 명연기들이 조화를 이루며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행해 가고 있다.
마블은 캐릭터별 단독 영화를 통해 각 캐릭터의 서사를 충분히 보여주고 어벤져스에서 이 모든 히어로들을 모아서 전체 서사와 액션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였다. 무빙은 TV 시리즈라는 강점을 이용해 이러한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각 캐릭터들의 서사를 차근차근 빌드업 해나가는 것이다. 1~7부는 아이들의 이야기, 8~13부(현재)까지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한다. 14~15부에서 이강훈의 아버지 이재만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16부부터 다시 현재로 돌아와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빌런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때 그동안 쌓아놓았던 각 캐릭터들의 서사들이 마지막 대 전투에서 맞물리며, 시너지를 내지 않을까 한다.
무빙은 또한 마블 영화처럼 각 캐릭터별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장르적 형식을 취한다. 마블 영화의 경우 첩보영화(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스페이스 오페라(가오갤), 청춘영화(스파이더맨), 흑인 민권운동 영화(블랙펜서), 시트콤(완다비전), 호러(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등으로 각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 장르를 변주한다. 무빙의 경우 청춘 드라마(1~7부), 첩보 멜로(8,9화), 느와르(10,11화)로 각 캐릭터별 특성에 맞는 장르로 변주되어 제작되었다. 이처럼 한 작품 안에서 에피소드별로 장르가 변주되는 작품은 지금까지 국내에 없었는데, 한 명의 작가와 두 명의 PD가 이를 해내고 있다.
무빙에는 한국의 현대사들이 녹아 있기도 하다. 87년의 칼기 폭파사건, 94년의 김일성 사망 등이 극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로 등장하고 곧 등장할 이재만의 이야기에서는 청계천 복원사업 관련 에피소드가 등장할 것이다. 헐리웃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슈퍼 히어로 장르에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들이 녹아 있다는 것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것이 강풀의 웹툰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지점이며, 이는 실사화된 드라마에서 멋지게 구현되었다.
앞으로 남은 7화, 결국 이는 신구세대 특별 능력자들과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남은 에피소드에서 이러한 스토리를 잘 풀어내어 오징어 게임을 뛰어넘는 한국의 명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강풀 초능력 유니버스의 또 다른 명작인 ‘타이밍’, 그리고 ‘무빙’과 ‘타이밍’의 능력자가 다 같이 나오는 히어로들의 콜라보 작품인 브릿지 까지 모두 다 디즈니에서 실사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스튜디오 앤 뉴’는 강풀 작가의 웹툰 영상화 판권을 7개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스튜디오 앤 뉴’는 디즈니+에 5년간 매년 1편씩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했다. 디즈니의 슈퍼히어로 물인 마블 시리즈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한국형 슈퍼 히어로 시리즈인 강풀 초능력 유니버스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 강풀이 창조한 히어로들의 이야기가 히어로 명가인 디즈니와 그 자본력을 만나 새로운 꽃을 피웠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