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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Dec 26. 2023

경성크리처-‘괴물’이 되지못한 그저그런 '크리처'

국내 괴수물 중 최고라 평가받는 작품인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주한 미군이 포름알데히드라는 독극물을 하수구에 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실제 있었던 맥팔랜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봉준호 감독은 이 사건을 한강을 휘젓고 다니는 ‘괴물’을 탄생시킨 원인으로 차용하였다. 이뿐 아니라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미국이 타국에서 저지른 만행들을 은유하는 사건과 아이템들을 등장시키며 미국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다. 미국은 괴물이 출몰하여 사람들을 잡아갔는데도 이들을 구출하는 것보다 있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잡아야 한다며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있다. 이는 과거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고 거짓 주장한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미군은 괴물을 잡기위해 에이전트 옐로우라는 화학 무기를 만들었는데, 이는 미국이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의 밀림에 살포한 에이전트 오렌지와 이름이 닮아있다. 이는 흔히 말하는 고엽제로 당시 미군의 무차별적인 고엽제 살포는 우리나라 참전 군인들에게도 큰 후유증을 가져다주었다. 즉, 영화 ‘괴물’은 한강에 출몰하는 괴물을 통해 진짜 괴물과 같은 짓을 해온 미국을 비판하는 정치영화로서 기능한다.



경성 크리쳐도 이와 유사한 스탠스를 취한다. 경성 크리쳐의 괴물은 일본의 광기가 창조한 피조물 묘사되며, 영화 괴물에 비해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일본의 만행을 비판한다. 일본은 의도적으로 생체실험을 통해 괴물을 만들어내고 이를 전쟁에 이용하고자 한다. 이때 이 작품에서 차용한 것은 인간의 신체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다. 영화 ‘괴물’의 맥팔랜드 사건처럼 실제 있었던 731부대를 배경으로 하여 일본이 실제 행했던 괴물 같은 만행이 보다 사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괴물은 이러한 생체실험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크리쳐’이다. 아무 죄 없는 조선인을 잡아다가 여러사람을 실제로 죽여가며 실험한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이 작품속의 ‘괴물’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미국의 51번째 주 대한민국 땅에서 미군에 의해 만들어진 ‘크리처’라면 경성 크리처의 ‘괴물’은 당시 진짜 식민지 조선 땅에서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크리처’인 것이다. 작품에서는 중간중간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어떠한 것인지 토로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런 내용들까지 더 해 이 작품은 일제의 만행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극은 과욕을 부리면서 온전히 주제를 전달하지 못하고 애매한 노선을 취한다. 좀 더 주제에 집중했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부분에 힘을 주면서 갈팡질팡 표류한다. 극에 등장하는 1945년의 경성은 너무 화려하다.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에 있는 듯 너무 아름답게 도시를 보여주고 있고 사람들도 나름 행복해 보인다. 도시가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보여 도대체 왜 독립을 해야하는 것인지 공감하기 힘들게 미장셴을 구성했다. 아마 화려한 미술을 통해 눈을 사로잡고 싶어서 그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극에서 말하는 일본의 잔인무도한 행위들과 유리된 채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에서 미술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용도로도 사용되지만, 주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미술을 그저 눈요기 용도로만 사용하였다. 


극의 시대 배경인 1945년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던 시기이다.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마치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을 것이다. 극에서 이런 느낌을 주는 대사들이 가끔씩 등장하기는 하지만, 거리는 평온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잘 설득되지 않는다. 1945년 당시 패색이 짙던 일본의 패전 분위기, 이러한 전세를 뒤집기 위한 일본의 광기, 731부대를 운용했던 일본의 이력 이런 요소들은 생체실험을 통해 괴물을 만들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된다. 이걸 잘 엮고 극의 분위기로 잘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막대한 돈이 투여되었다고 과도하게 대중성을 쫓다가 이도저도 아닌 작품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냥 생각없이 보다보면 3~4부 부터는 나름 스피디하고 볼만하게 전개가 된다. 개연성 같은건 조금만 덜 따지고 그냥 쭉 따라가다보면 그냥 그럭저럭한 재미는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많이 아쉽다. 막대한 자본으로 멋진 이미지만 잔뜩 보여주고 진짜 중요힌 이야기는 겉만 보여준 느낌이다. 전세계인이 보는 작품에서 731 부대를 그냥 자극적인 소재로만 낭비했다는 아쉬움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잘 기획된 크리처물 하나 본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700억원이 투여된 대작이라고 들었는데, 110억원이 투입된 영화 ‘괴물’에 비해 재미도 의미도 부족하다. 넷플릭스의 작품들이 K-콘텐츠 제작에 투입하는 돈은 많아졌지만, 품질은 전보다 못한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콘텐츠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는 통설을 다시한번 공감하게 한다. ‘괴물’이 될 수 있었지만 그저 그런 ‘크리처’가 되어버린 이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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