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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Sep 18. 2024

베테랑2-대중의 기대를 의도적으로 배반한 수작

베테랑2는 1편의 영광을 재현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거대한 성공을 거둔 1편의 정치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새로운 문제를 우리 앞에 툭 던져놓는다. 따라서 1편과 같은 사이다를 바라고 극장을 향한 관객들에게 당혹감을 안긴다. 이것이 대중들이 베테랑2에 실망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런데, 나는 감독의 이러한 시도가 무척이나 좋았다.



베테랑1은 1,341만이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을 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8위에 랭크되어 있다. 베테랑1의 이런 거대한 성공은 류승완 감독이 당시 대중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스크린에서 구현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악과 이에 맞서는 정의로운 형사의 구조는 우리가 익히 보아온 구조이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시리즈, 그리고 마동석의 범죄도시 시리즈가 이런 류의 영화에 속한다. 이 영화들은 모두 무대뽀 형사가 거대한 악을 처부수는 사이다를 보여주며 상당한 흥행을 기록했다. 이 영화들은 모두 공식이 있다. 우선 빌런의 악행을 최대한 잔인하게 그려 관객의 분노치를 최대한으로 올린다. 그리고 너무나도 정의로운 형사가 등장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이 악을 통쾌하게 응징한다. 너무나도 선명한 선과 악의 구도, 명확한 이항대립 구조와 권선징악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스토리는 관객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어릴때 본 로봇 만화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이런 작품들은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 누구나 받아들이기 좋고, 권선징악이 명확해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쉽고 보편적인 스토리 라인들을 갖추고 있다.


     

베테랑1은 이러한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이다. 이는 베테랑1이 실제 우리가 목격한 현실의 빌런을 영화의 메인 빌런으로 삼아 더욱 명확한 이항대립 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베테랑1의 빌런 조태오는 맷값 폭행으로 유명한 실제 재벌 3세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캐릭터이다. 현실에서 맷값 폭행을 자행한 이 재벌 3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베테랑1은 이런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반발로 튀어나온 판타지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써온 유전무죄와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액션 영화에 풀어내어 현실의 한을 풀고자 시도한 영화가 베테랑1이다. 베테랑1의 빌런 조태오는 안하무인과 비열함의 끝을 보여주며 관객의 분노를 극한까지 자극했다. 그리고 이를 처부수는 반대편에는 보잘것없은 연봉에 전세 값을 걱정하며 사는 소시민 히어로 서도철이 있다. 소시민을 대변하는 이 히어로는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당당하며, 정의롭다. 이처럼 악한 재벌, 선하고 정의로운 일반 소시민이라는 이항대립 구조 속에서 대중은 일반 소시민인 서도철에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소시민이 갖은 우여곡절 끝에 대척점에 있는 거악을 쳐부수고 결국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베테랑1이 사이다라는 평을 듣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있다.



베테랑1이 성공하고 비슷한 구조로 승승장구하던 영화가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이다. 범죄도시는 악독한 빌런과 정의로운 히어로 마석도의 대결을 다루고 있는데,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동일한 플롯이 반복되며 식상함을 안겨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계속해서 천만을 넘기며 역대급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바로 이런 지점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절대 악을 상정하고 이를 쳐부수는 스토리를 반복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가? 현실에서 선악이 그렇게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절대악을 절대선이 쳐부수는 판타지를 보여주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사이버 렉카들과 차이가 있는가? 베테랑2는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성찰이 낳은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베테랑2는 1편과 비슷한 장면으로 시작을 한다. 1편에서 언급된 주부도박단 검거 작전으로 시작하며 1편의 이야기가 이어지길 기다리던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그러나, 1편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후 이어지는 스토리들은 1편과 상당히 다르게 진행된다. 2편에서의 빌런은 1편처럼 명확하지가 않다. 해치가 빌런이지만, 감독이 진짜 그리고 싶은 빌런은 그런 해치를 만들어 낸 대중들로 보인다. 정의구현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마음, 그리고 이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이버 렉카들이 메인 빌런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중들은 빌런을 마주하는 마음이 복잡해지고 빌런을 응징해도 시원하지가 않다.


사실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라면 대중의 기대에 철저히 부응하는 것이 좋다. 베테랑1은 이를 그 어떤 영화보다 잘했기 때문에 1,300만이라는 엄청난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런데, 류승완 감독은 9년 만에 나온 후속편을 통해 전작의 정치관을 부정했다. 이는 서도철의 자기반성을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사실 전작의 서도철은 살인만 저지르지 않았지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해치와 비슷했다.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범죄자를 응징하고 그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서도철은 2편의 초반부에도 비슷한 생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서도철은 지금의 해치가 있게한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서도철은 살인에 나쁜 살인이 있고 좋은 살인이 있냐는 말로 이 영화의 주제를 보다 명확히 전달한다. 또한, 전작에서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했던 서도철은 영화 후반부에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어찌보면 대중에 영합하여 거대한 성공을 거둔 전작을 만든 류승완의 우회적인 자기고백이 아니었을까?     



베테랑2는 베테랑1의 거대한 흥행을 모방하여 더 큰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전작에 대해 반성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나는 이 점에서 이번 작품인 2편이 훨씬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의 이음새는 전작만 못하다. 이는 전작에 비해 스토리가 훨씬 복잡하다보니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1편의 경우 단 한 명의 빌런을 악마화하고 이에 대항하는 단순한 이항대립 구조로 설계되다보니 보다 집중력 있게 영화의 전개가 가능했지만, 2편은 보다 입체적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사건을 배치하다 보니 집중력 있게 영화가 전개되지 못했다. 주차장 살해범 전석우, 사이버 렉카 정의부장, 학폭 가해학생 등의 서브 빌런들이 등장하고 각각의 서브 스토리 라인들이 등장했는데, 워낙 많은 인물들과 서브 스토리들이 등장하다보니 극이 산만해져 버렸다. 물론 이를 더욱 깔끔하게 구성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액션은 전작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큰 규모의 액션 시퀀스들이 여러번 등장하는데, 액션의 규모나 연출에 있어서 전편보다 훨씬 좋아졌다. 특히, 빗속에서의 액션신은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무척이나 아름답다. 액션 장인 류승완 감독의 장기가 한껏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당와 베테랑2의 빗속 결투 장면


전반적인 평을 보면 대중들의 반응이 전작에 비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이는 류승완 감독이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매번 똑같은 스토리를 반복하며 사이버 렉카처럼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편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이들에게 베테랑2는 분명히 부족한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그런 대중의 기대를 의도적으로 배반하여 완성한 일종의 반성문과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라 생각한다. 전편만큼 흥행은 어렵겠지만, 최소한 범죄도시에 버금가는 흥행은 했으면 한다. 그게 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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