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 사회에서 가장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를 두고 다양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평론가들 상당수는 이 작품을 상당한 수작으로 평가하는 반면, 대중들은 이 영화에 대해 상당히 좋지 않은 평가를 하고 있다. 대중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은 개연성 문제이다. 지적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외벌이 가족이 어떻게 저택에 살고 있으며, 취직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어떻게 살인을 계속해서 저지를 수 있는냐는 부분이다. 먼저, 외벌이 가족의 저택 거주 문제는 이 영화의 배경이 지방중소도시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이 가능하다. 제지회사 공장들은 진주, 군산, 양산 등의 지방 중소도시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이러한 지역에 거주할 것이고 그런 지역의 산속에 단독으로 지어진 주택이라면 큰 규모라고 해도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에도 못 미친다. 지역에 따라 서울 전세 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들이 수두룩 하다. 25년 경력의 전문가가 3억원 이상의 대출을 끼고 이러한 집을 소유한다는게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다음으로, 경쟁자 살인의 문제는 이 영화 제목이 “어쩔 수가 없다”인 이유와 맞닿아있다. 정리해고 후 1년이 지나고 계속해서 취업이 안된다고 해서 경쟁자를 살인하겠다는 발상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은 나와 우리 가족이 살기 위해서 살인은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이는 그가 가부장적 사회가 남성에게 부여한 부양자 역할의 압박 속에서 생존을 위해 폭력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은, 그로 하여금 윤리보다 생존을 우선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의 살인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구조적 폭력이 한 인간의 판단을 어떻게 뒤틀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에서 유만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가부장 사회에서 부여한 가장의 무게를 극대화해서 표현한 것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그의 이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주인공 유만수는 외벌이 가장으로서 아름다운 아내, 두 아이, 어릴 때 살던 큰 집을 모두 자신의 힘으로 얻었다. 회사에서 보내 준 장어를 집 앞마당에서 구워먹으면서 만수는 행복한 표정으로 말한다. 다 이루었다고... 한 가정을 풍족하게 먹이고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만수는 해냈고 이에 큰 행복을 느낀 것이다.
완전한 가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한 것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그가 느끼는 행복감의 원천이다. 반면 그가 실직을 하고 가장으로서의 지위가 거세된 상황에서 그는 커다란 초조함을 느낀다. 보다 못한 아내가 다시 치과에 간호사로 취직을 하고 잘생긴 의사와 일을 하면서부터는 불륜에 대한 의심까지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의 부양이라는 남성성이 거세된 주인공이 타인을 죽여서라도 가장으로서의 지위를 복원하고 싶어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행동이다. 즉, 만수가 타인을 죽여서 자기 지위를 복원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강요한 남성 역할 수행에 대한 강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전작들에서 일관되게 가부장 사회가 부과하는 젠더 역할의 폭력성을 비판해왔다.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는 복수의 서사를 통해 여성에게 강요된 ‘희생과 속죄의 미덕’을 전복시키며, 금자는 자신을 구원하지 않는 사회에 맞서 스스로 정의를 실현한다. 부도덕한 남성 권력의 상징인 백선생은 금자와 여성 감옥에서 만난 여성 출소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응징된다. 〈아가씨〉(2016)는 식민지·가부장 이중 권력 아래 억압받던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지식·성적 지배 구조를 무너뜨리며 해방의 서사를 완성했다. 이 작품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통제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데, 여성들은 연대를 통해 이러한 남성 중심 가부장 체제를 무너트린다. 〈헤어질 결심〉(2022)에서는 남성 권력에 의해 학대받고 통제받던 여성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다가 이러한 세상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에서 가부장적 남성들에게서 고통받던 서래는 권위의 상징인 형사 해준에게 이해를 구하려다가 마침내 이를 포기하고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주체적 여성으로 그려진다.
박찬욱 감독은 이처럼 일관되게 가부장의 폐혜를 여성의 관점에서 그리고 주체적인 여성이 이를 탈출하는 과정을 그려왔다. 이러한 전작들과 달리 “어쩔 수가 없다”는 남성의 관점에서 가부장의 폐해를 그리고 있다. 이 극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 자본주의 시대의 냉혹한 경쟁체제에서 경쟁하는 것은 늘 남자고 그러한 경쟁에서 밀려난 남자는 비참한 삶을 산다. 영화에서 만수의 경쟁자로 죽임을 당하는 범모는 실직 이후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급기야 아내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즉,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의 역할인 가족의 부양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그 남성의 쓸모는 다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만수는 계획대로 경쟁자들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본부장을 모두 죽이고 취업에 성공하지만, 그는 과거의 완벽한 가장이 아니다. 아내와 아들은 그를 의심하며 마음을 열지 않고, 딸은 아빠를 제외하고 엄마에게만 첼로 연주를 들려준다. 그는 AI 로봇과 홀로 일하며, 가정과 회사에서 모두 외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가장에게 주어진 무게를 수행하며 오히려 소외되어가는 가부장 사회 속에서 남성의 처연함을 보여준다.
가부장 체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억압한다. 남성에게 부여된 남성성은 가족을 부양하는 능력으로 결정된다. 이는 남성들에게 늘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최근 20대 남성들이 여성들에 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을 가부장 시대의 눈으로 보지만, 자신들은 또 그러한 여성들과 경쟁해야만 하는데에서 오는 부당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가부장 체제가 해체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느끼는 부당함이 20대 남성들의 지배적인 정서인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해 그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가부장 체제의 문제를 남성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정서는 변화한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해왔던 이야기를 시대를 반영해 살짝 변형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박찬욱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남성 여러분 여러분이 힘든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여성들과 타협을 통해 여러분이 지고 있는 그 짐을 나누세요. 그리고 사회적 시선을 같이 바꿔봅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