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털이 범이었던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우는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최초의 슈퍼스타로 거론된다. 1930년대 초반, 경제대공황 시기에 은행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던 당시, 이 커플은 은행을 털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의 범죄행각을 벌였고, 이들의 범죄행위는 신문에 대서 특필되었다. 이들의 거주지를 습격해 수집한 사진들은 당시 새롭게 등장한 와이어포토라는 기술을 통해 전신망을 타고 전국 신문에 동시에 실릴 수 있었다. 머그샷이 아닌 총과 시가를 물고 멋지게 찍은 사진들은 당시 황색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실어나르며, 이들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대공황 시대 대중들은 은행을 날강도로 생각하고 있었고, 공권력을 무능한 존재로 느끼고 있었는데, 이 집단들을 응징하는 멋진 젊은 커플을 통해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스토리는 1960년대, 베트남전과 그 반대급부로 탄생한 히피문화의 흐름을 타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로 재탄생하며, 억압적인 국가와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시대의 산물로 다시한번 기록되었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는 201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14년 공연된 이후로 11년만에 다시 무대에 올라왔다. 영포티 이슈,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공부만 했는데, 취직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기성세대들에 대한 청년 세대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있는 지금처럼 보니 와 클라이드의 이야기가 다시 공연되기 좋은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공연의 무대연출은 상당히 좋았다. 세트와 조명, 영상의 활용은 1930년대 대공황의 황량함을 표현하는 훌륭한 배경이 되었다. 텍사스의 먼지 날리는 헛간부터 차가운 감옥, 그리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범죄 현장까지, 무대는 시시각각 변모하며 관객을 그들의 불안하고도 매혹적인 여정으로 끌어들였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옥주현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가창력 하나로 뮤지컬 주연을 계속해서 꿰차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기가 노래보다 더 훌륭했다. 이 정도 연기력인데, 영화나 드라마에는 왜 출연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 드라마에서 종종 얼굴을 비추고 있는 배나라는 안정된 가창과 연기로 퇴폐미 넘치는 클라이드의 매력을 무대에서 제대로 구현해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이 커플의 매력은 다소 부족한 서사를 잘 메워냈다.
음악 또한 좋았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그의 전작인 <지킬 앤 하이드>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들로 넘버를 채웠다. 재즈, 블루스, 컨트리 등으로 구성된 오리지널 넘버들은 1930년대 미국의 정서를 담아내며, 극에 잘 어울렸으며 대중성도 잘 갖추었다. 메인 테마곡으로 기능하는 'This World Will Remember Me'나 ‘How 'Bout a Dance?’는 <보니 앤 클라이드> 오리지널 넘버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극을 관통하는 주제가 소홀했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대공황이라는 시대적 절망과 미디어의 광기가 낳은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작품은 이 묵직한 주제의식을 치명적인 로맨스라는 포장지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게 연출되었다.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우가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구조적 맥락, 당시 황색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행태, 이들의 쿨한 이미지를 소비하고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를 해소하려 한 대중의 관음적 대리만족 심리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들은 화려한 무대 연출과 멋진 음악 넘버에 가려져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그저 “세상이 우리를 거부하니 우리는 사랑하며 죽겠다"는 식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테마를 차용해 그들의 스타일과 사랑만 소비하는 데 그친 느낌이다.
결국,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는 2026년 한국 관객들에게 사회적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쪽을 택했다. 현재 진행형인 젊은 세대의 분노라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다시 우리 앞에 선보였지만, 이러한 메시지는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청년 세대의 분노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이 작품이 그들의 좌절과 저항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스타일리시한 무대와 음악에 취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눈과 귀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대의 우울함과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낸 최초의 슈퍼스타의 이야기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로 뮤지컬로 대중에게 소비되고 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또 하나의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꽤 의미있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lFMz8zB3G0&list=RDclFMz8zB3G0&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