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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May 19. 2024

<코딩캠프와 육아에 관한 단상>



아는 엄마가 아이를 여름 코딩캠프에 함께 보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집 아이는 다섯살, 우리집 아이는 일곱살이다.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어린 아이를 코딩 캠프에 보내는 동기와 유익에 대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을 위한 코딩캠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에 들었던 불편한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우선은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주는 것이 맞는 지에 대한 고민이다.


코딩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코딩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코딩 그 자체는 수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러 수단에 숙달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뭘 잘 하고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내가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아가고 알아가는 과정일 것 같았다.


그럼으로써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모양으로 이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지,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무이한 인간으로서 삶의 궁극적인 목표 혹은 지향점을 고민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로서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그 수단이 공부든 영어든 코딩이든 열심히 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부모로서의 역할은 수학, 영어, 코딩을 잘 하도록, 혹은 좋은 대학에 가도록 아이들을 달달 볶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충분하고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두 번째는 격세지감,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다.


당장 10년 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나는 전혀 예측하기 힘들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일을 하는 시기에 어떤 것이 유용할지 또한 전혀 알 수 없다.


그 시기에 코딩이 유용할지, 혹은 AI의 발전으로 인해 코딩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하게될지 나는 모른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수단에 집중하는 것은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비행기가 없던 시절, 한국에서 미국에 가는 방법은 배 편 뿐이었다. 지금은 모두들 비행기를 탄다.


수단은 기술의 진보로, 상황의 변화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목적지, 지향점이 분명하다면 여러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고 (혹은 덜 흔들리고) 우직하게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못한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우리가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수단들 - 코딩이든, 대학의 졸업장이든 - 을 강요하는 것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나는 간혹 회의가 든다.


요즘을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이 경주마처럼 한 방향만 달리도록 훈련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막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종착지에 도착하면 길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도 커서 뭐가 될지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나는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키운다는 것 자체가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수단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저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재능과 흥미와 적성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자신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정의하고 일을 통해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 가운데 다른 이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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