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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itarius Jan 23. 2020

"예쁜 자세 필요 없어요"

최근 회사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여 명중 나만 여자다. 

집단에서 한 명의 여성이라는 건 늘 접하는 것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강당같은 곳에서 선 채로 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남성들은 차렷 자세였다. 가슴도 쫙 펴고 있었다.


신기했다. 지나간 내 사진을 봐도 단체사진에서 나는 주로 손을 앞으로 향해서 양손을 포개고 있다. 너무 공손해보인다고 해야하나. 체구도 작아서 더 왜소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무작위로 인터넷에서 단체사진을 검색해보니 중년의 경우 거의 남성들은 서 있을 때는 차렷 자세, 앉을 때는 약간의 쩍벌(?) 자세였다. 여성들은 나처럼 양손을 모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 이거 뭐지?'


10대 20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10대 남학생 졸업사진을 보니 양손을 모은 경우도 간혹 있었다. 


알게 모르게 내 뇌리에 다소곳한 자세를 해야 한다는 게 박혀 있었던 것인가. 사진을 보기 전까지 전혀 의식을 못했다. 보통 서 있을 때 손이 부담스러워서 배앞에서 양손을 잡거나 한 손으로 다른 쪽 팔을 잡는 경우가 많다. 


당당하게 정자세로 서 있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똑바로 서 있자. 눈은 정면에 가슴은 활짝 펴고.

신체 언어, 포즈로 사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말보다 몸짓이 더 많은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잣대로 보면, 나는 나를 강하게 주장하기 보다는 소극적이고 조금은 위축돼보인다. "저 무섭지 않아요, 세지 않아요" 하는 듯 하다.


지난 70~80년대 남녀를 구분한 가정및 학교 교육 분위기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치마를 입는 여학생들의 앉은 자세에 대해 여러 검열이 있었던 영향인 것 같다. 


이후에  의식적으로 주변인들의 자세를 자주 관찰하게 됐다. 바른 자세, 나쁜 자세도 보이지만 성별의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


한 심리학자는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조언한다. 특정 장소에 들어갈 때 코너만 찾지 말고 어깨를 펴고 가운데로 걸어가라고도 한다. 대화할 때 상대방 눈을 바라보라는 등. 


매우 맞는 말이다. 특히 여성들은 과장될 정도로 어깨를 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예쁘고 얌전하게 보일 필요 없다.  never!


자세와 함께 또 하나 남성집단 속 홍일점으로 나에 대해 깨달은 점은 말할 때 끝을 흐리거나 쓸데없이 웃음으로 매듭짓는다는 것이다. 여러 회의에서 관찰한 결과 말끝을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남녀는 많았다. 대화 도중 자주 웃는 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농담도 아닌, 자신이 해야할 말을 해놓고 실없이(?) 웃는 방송 진행자도 꽤 있었다. 얼마전 팟캐스트를 듣다가 화가 나서 꺼버렸다. 2명의 진행장중 여성은 철저하게 깍두기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심각한 얘기도중 사소한 농담을 슬쩍 집어넣는다거나 본인이 질문해놓고 계속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전문 방송인이 아닌 일반인이라 이해는 하면서도 왜 유독 그런 역할을 여성이 하는지 불쾌했다.


충분히 좋은 발언을 하고도 이런 요인으로 마이너스 효과를 발휘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많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일부에서 이런 지적들이 나옵니다"는 문장을 말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일부에서 이런 지적들이 나.. 옵니다(작게)"는 식으로 말하는 버릇이다. 


내가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없어서 그럴까. 주장이 센 여자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그런 걸까. 내가 어딘가에서 발언한다는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남성 여성으로 평가받아선 안된다. 


50년간 얼마나 남녀를 잣대로 살아왔던가. 말, 행동, 생각... 내 모든 곳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2등'의  습관과 양식들을 하나씩 제거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여성으로서 권장돼왔던 것들이 대부분 소극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크거나 행동이 조금 거칠면 '여자답지 못한 여자', '사내같은 여자'. '아줌마' 등으로 불렸고 대부분의 우리 또래 여성들은 그런 말을 싫어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비합리적인 평가에 끊임없이 제동을 걸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에.

 

 이제서야 여기저기 들리는 여학생들의 바지 교복이나 2030 여성들의 운동 열풍을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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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신체 언어가 여러분의 모습을 만든다'는 TED 동영상

https://youtu.be/nW5 vL44 D7 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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