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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 책 팔러 다니는 일

작가와 출판사 사이에서

by 볕뉘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책방에 입고하러 다니는 일은 언뜻 보기에 상관없는 일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에 깊고도 너른 강이 흐른다. 어쩌면 나는 매일 공중에서 외줄을 건너는 장인의 마음으로, 작가와 출판사 대표라는 두 이름 사이를 쉼 없이 오가는지도 모른다.

작가로서의 나는 고요하고 내면을 향한다. 말이 되지 않는 마음의 그림자를 오래 들여다보고,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순간의 숨결까지 붙잡아 둔다. 세상에 없는 문장을 짓는 일은 언제나 조용하고 느리며, 빛보다 마음의 결을 더 신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나 자신에게 먼저 닿고, 그다음에야 누군가의 마음 한 귀퉁이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로서의 나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한다.

문장은 내면을 파고들지만, 출판사는 세상 밖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소개하고, 때로는 마음을 열어 보여야만 한다.
책방에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내고, 낯선 책방의 문을 밀고 들어가 인사를 건네는 일은 작가로서 익숙한 고요와는 너무도 다른 세계에서 시작된다.


특히 책방의 거절은 처음에는 마음 한구석을 날카롭게 찔렀다.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어렵겠습니다.”
그 말은 꼭 내가 쓴 문장 전체를 부정하는 말처럼 들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거절이 쌓일수록 나는 가라앉기보다 오히려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의 이런 행보를 어떤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낮 호화로운 취미 생활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용기와 진심이었다. 세상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두드려야만 하는 한걸음의 용기와 진심이 계속 걷게 하였다. 진짜 노력이란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거절을 두세 번 했던 곳도 다음번에 가면 책방 한 모퉁이에 살며시 책을 놔주곤 하신 각 동네 책방 지기님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책을 읽는 독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책방은 열악한 환경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책방의 거절을 발판 삼아 나는 다음 날 또다시 책방의 문을 두드렸고, 그다음 날도 문 앞에 섰다.
뒤돌아 서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만들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를 믿고 있는 작가님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이 헛걸음이 언젠가는 길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다시 걸었다.

작가와 출판사 대표의 차이는 분명하다.

작가는 ‘내면의 진실’을 직면하는 사람이라면, 출판사 대표은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마음의 울림을 글로 빚지만, 출판사 대표는 그 글이 누군가의 손에 닿기까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한 문장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듯, 한 권의 책이 자리를 찾기 위해서도 수많은 발걸음과 용기 그리고 진심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몸으로 배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 작은 괴리감은 결국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었다. 글을 쓰는 내가 있기에 책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내가 무너지지 않았고, 책을 들고 책방에 서 본 내가 있기에 글을 쓰는 나의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던 순간조차 결국은 서로에게 다리를 놓는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작가와 출판사 대표의 마음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거절이 나를 꺾지 못한 이유도 결국 이 두 마음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작은 사업도 수많은 거절을 발판 삼아 버텼기에 오늘에서야 성과를 보는 것이다. 그 시간이 무려 12년이다. 시간을 들였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을 난 결코 잊지 못한다. 수많은 일들이 버티는 과정과 멈추는 용기 사이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세상을 통해 배웠기에 나는 오늘도 책방 문을 두드린다. 용기 한 스푼과 진심 두 스푼 마음을 담아.

책을 팔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작가님들을 연결해 주는 사람으로. 문장과 사람을 이어주는 마음 서재의 마음으로.

내 글이, 나의 작가님들의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주기를 바라는 일, 그리고 그 빛을 독자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 일.

그 두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나는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며 오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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