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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시간 3초

생각과 행동

by 볕뉘

겨울 아침은 늘 사람들을 서두르게 만든다. 차창 밖으로 흩어지는 하얀 입김들 사이로, 각자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무겁고도 고요한 숨결들이 겹겹이 쌓인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추는 그 짧은 순간에도, 누군가는 삶을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리어카 하나가 도로를 건너는 중이었다. 종이와 상자가 산처럼 쌓인 리어카는 할아버지의 작은 몸보다도 훨씬 커 보였다. 발걸음은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릴 만큼 느렸고, 그 느린 걸음이 마치 세상의 무게를 홀로 끌고 있는 듯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할아버지는 도로의 절반도 넘기지 못했다. 뒤이어 차들이 움직일 준비를 하며 작은 진동을 일으키는데도, 할아버지의 걸음은 그 진동조차 느끼지 못한 듯 한없이 조심스럽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이상한 긴장감이 서렸다.

그때였다.
‘딸각.’
옆자리에서 비상등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를 푸는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정해진 수순이라도 되는 듯 문을 열고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차 안으로 한순간 밀려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남편의 뒷모습은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내 심장은 이유 없이 뛰었다.
남편은 망설임 없이, 주저함 없이,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일이라도 되는 듯 리어카를 말없이 밀기 시작했다.
차갑던 아침 공기 위로, 그 작은 행동이 은빛 연기처럼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그 순간
‘아,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구나.’
그 사실 하나가 내 마음을 데웠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선함의 방향을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남편이 운전석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물었다.
“그냥 그대로 지나갈 수도 있었잖아. 왜 굳이 직접 내렸어?”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도와드리고 싶었을 거야. 다만 대부분은 마음까지만 갔겠지. 행동으로 가는 사람과 마음에 머무는 사람의 차이는… 그저 한 걸음일 뿐이야.”

그 말이 내 가슴을 쿵하고 내려앉게 하였다.
마음은 누구나 가진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마음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그 작은 한 걸음이, 어떤 하루에겐 기적이 된다.

신호등 앞에서 나는 사람의 선함이 얼마나 조용한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지를 보았다.
누군가와 발걸음을 함께 하는 그 순간, 한 사람의 겨울이 잠시라도 덜 춥게 되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다시 사람들이 지나갔다.
누군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듯 급하게 걷고,
누군가는 버거운 하루를 온몸으로 밀고,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리어카를 밀고 있었다.

세상은 그렇게 서로의 속도로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낸다.
어떤 이는 마음만 움직이고, 어떤 이는 손까지 움직인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온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편의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마음과 행동의 차이는 결국 한걸음 차이야, "

리어카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서 묵묵히 걸음을 맞추던 남편의 모습이 눈을 감아도 떠올랐다. 단 한 번의 작은 친절이었지만, 그 친절은 공기와 함께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를 것 같았다.

겨울 아침은 여전히 차갑다.
세상엔 아직 누군가의 겨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내일을 견딘다.

그 작은 걸음 하나가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기엔 충분하다.

단 3초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마음이 아니라 움직이는 손끝에서, 발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겨울 아침의 신호등 앞에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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