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을 보다 하시모토 역을 맡은 한 신인배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볼이 푹 패여 광대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걸 보아하니 배역을 위해 다이어트를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대가 갈라진 듯한 목소리는 일부로 목을 긁은 듯 탁했고 흰자위가 희번덕 거리는 눈빛은 저로선 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그로서는 유명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이었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 듯 보였습니다. 그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며 문득 추석대기로 휴일을 날린 걸 못견디게 짜증냈던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이루고자 했구나. 근무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고자 안달했던 제 모습은 틈만나면 편안함을 찾는 마음의 반영이었습니다. 편안함을 우선시하고 편안함을 누리며 간절하고자 했습니다.
이 만큼 밖에 쉬지 못한다며 다 내게 일을 떠넘긴 주위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사실 제 차례였고 제가 받은 월급만큼 응당 해야하는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원망할 대상을 찾았지만 비루하기 짝이없는 좁디좁은 원망이되어버렸습니다. 스스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못하니 누군가에게 몰래 원망을 쏟아내는 게 창피하더군요. 숙고없이 다소 떠들어댔습니다.
저는 더 포기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버리고 버려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만 깨끗하게 남겨야합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여태 원하는 일에 간절히 마음을 쏟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돌이켜 보면 스스로를 합리화하던 모습들 뿐입니다. 진심으로 제탓이라며 받아들인 것이 하나 없습니다. 그건 제가 편안함과 좋은 것들을 잃지 않고 싶어서였고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누리는 것과 간절한 것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간절함은 지금의 결핍과 희생을 먹고 자랍니다. 진정 아프지 않으면 진정 성장하기 어렵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닫는 걸까요. 중요한 것은 대개 까먹고 가끔 기억한다는데 이 사실을 대개 까먹으면 또다시 한참을 헤멜 것이기에 기억을 놓지않고자하는 몸부림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 저는 포기하고 포기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