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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y 22. 2020

수많은 성격테스트와 ‘나’

나는 누굴까


1초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어째서 동일인이란 걸 안다고 생각해? 단지 기억의 연속성. 그것만에 기대어 우리들은 일관된 자기 동일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어.
-영화 <퍼펙트 블루> 中
생각없이 봤다가 멘탈털린 기괴영화

‘나는 누굴까?’

이 질문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자연스럽게 그때그때 유행하는 성격 테스트들을 한번씩 거치고 넘어가는 편이다. 끝나지 않는 엠네글자 유행을 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 듯 하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확실히 자신을 ‘~한 인간’이라고 정의내리고 범주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안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인간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기에 자신의 조각들을 부풀리고 그것을 연역하여 실재라 믿는 것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나 또한 mbti 테스트를 하면서도 이거 정식 검사도 아닐텐데 근거는 어디에? 다들 장난 삼아하는 걸까 진심일까 생각하면서도 문항 체크를 멈추진 않았다.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면 내심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치만 애초에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걸까? 테스트를 보면 질문들 자체도 되게 모호하다. 나의 경우 <재미있는 책이나 비디오 게임이 종종 사교 모임보다 더 낫습니다.>라는 문항을 체크하기가 참 어려웠다. 어떤 모임이고 어떤 사람들을 기준 삼아야 할까. 잘 맞고 좋아하는 사람들 한정 사교 모임을 택하겠지만, 그냥저냥의 경우 집에서 책이나 영화 보는 게 더 즐겁다면 나는 어떤 문항을 골라야 할까? 전자와 후자 어느 쪽의 내가 실재에 가까울까.


무의식적으로 내가 바라는 이상향이나 이미지에 맞춰 체크를 하게 될 위험성에 대한 의심도 늦출 수 없다. 예를 들어 적극적인 성향으로 변화하고 싶어하는 내성적인 성향의 A가 있다 하자. 그의 성격 테스트는 <평소 먼저 나서는 편은 아니지만 때때로 상황을 주도한다>란 결과가 나왔다. A는 이 결과가 마음에 든다. 이 특성이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다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학교에 갔다. 조별과제를 하게 되었는데 딱히 적극적인 팀원이 보이질 않는다. 아까의 결과가 떠오른 A는 조심스레 자진해 보았고 조장을 맡게 되었다. 이처럼 생각은 행동을 이끌고 이 행동은 다시 생각을 강화한다.


이는 이른바 객관과 주관이 그렇게 날카롭게 구별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 '역시 병원에 가야겠어.' '역시 나는 변화를 거부하지 않아.' 몸이 아프다는 생각이 몸을 아프게 하고 아픈 몸이 다시 몸이 아프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식의 양성 되먹임 과정이 작동하는 것이지요. 이걸 도식으로 나타내면 고리 모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화살표를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루프 효과 또는 환류 효과라고 합니다.
/ <정신질환>, 전기가오리


평소에는 안 하던 행동을 하며 조장을 맡게 된 A를 보고 누군가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테스트를 통해 늦게야 깨닫게 된 것이다, 원래 어느 정도 리더십이 있던 사람이었다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성격 테스트 결과를 별 의심 없이 납득한 A는 새로운 행동을 했다. 하지만 테스트 전 평소의 A는 보통 먼저 나서는 편이 아니었다. 그 결과를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조장을 맡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각이 실제로 행동과 상황을 만들었으니 이 성격 특성이 거짓이라 할 수도 없고, 이전에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말할 수도 없다. 이처럼 가치와 사실은 깊게 연관되어 있고 명확히 구분 짓기 힘들다.



당신에게 생길 객관적 관심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당신의 천성과 외부 환경의 자발적인 작용에 맡겨두어야 한다. 미리 당신 자신에게 '우표 수집에 열중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우표 수집을 시작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당신이 우표 수집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진정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만이 당신에게 유용하며 당신이 자아에 빠져들지 않게 될 때, 진정한 객관적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이제 ‘나는 이리저리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곳으로 떠난다면 지금보다 행복해질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테스트를 떠나, 이제는 자신을 ‘~한 인간’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애초에 틀을 놓고 거기에 얽매여 나의 또 다른 일부분을 닫아놓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하나의 구체적인 범주와 동일시하는 것은,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닫아놓고 마치 특정 일부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자신을 제한하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그보다는 이것저것 다양한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고, 내부에서 우러난 자발성에 집중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각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보다 실재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상황을 경험하는 과정 자체에서 나는 확신을 얻는다. 그것을 진정으로 느꼈기 때문에 훨씬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다. 그 느낌은 무엇과도 뒤바꿀 수 없는 자신의 조각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개개인은 특별히 흥미롭고 이끌리는 것 혹은 거슬리고 맘에 들지 않는 것을 인식하며 자신만의 기호와 판단 기준을 발견해나간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이며, 나는 누구일까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많은 느낌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사람의 고유한 색깔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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