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가 Oct 04. 2021

하루 책방지기

스토리지북앤필름 후암점, <언파운드북스>

일하며 근근히 썼다아


1.

책방지기 체험은 이번이 세 번째다.

언파운드북스에서의 경험은 오늘이 첫 번째.


하루 동안 그 공간에 온전히 머무르며, 서가와 매대 구석구석 닿아 있는 서점만의 정체성과 개성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동네엔 가까운 독립책방이 몇 없기도 해서, 책방지기를 신청하면 항상 가는 길이 기본 1시간 30분은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엥간해선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는 습관이 있다. 책방으로 가기 위한 먼 길, 창문 밖 익숙지 않은 거리를 바라본다. 가는 과정부터 마치 여행같이 느껴진다. 나한텐 책방지기로 활동하는 그날 하루가 휴식이자 여행이다. 각각의 개성은 확연하지만, 공통적으로 책방이란 공간은 자연스레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책방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꿈은 항상 지니고 있다. 좋아하는 것으로만 가득 찬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니! 하지만 실제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기에, 이렇게 가끔 일일 책방지기로써 활동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배제된 체, 책방지기라는 꿈이 주는 낭만만을 채워나가는 셈이다.


그래서 이런 시스템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주시는 책방 주인 분들께 항상 감사하다. 특히나 언파운드북스 사장님은 친절하고 웃음이 많으셨다(귀여우셨음)



2.

오늘의 책방지기 임무엔 음악 선곡도 있다.

항상 어딜 가든 소리가 공간에 주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 느낀다. 특히나 서점이란 공간은 소리와 빚어내는 조화가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오늘의 흐린 날씨와 어울리는 선곡으로 프랑스 밴드 poom의 앨범 2016을 골랐다. 요새 빠져있는 앨범인데, 흘러나오는 노래를 혼자 조용히 이 곳에서 듣고 있으니 더욱 좋게 들렸다.




3.

출근 후 이것저것 체크하고 앉아있는데, 얼마 있어 화장실 안쪽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났다. 헉.. 처음엔 설마 그 안에 있나 했다. 창문 밖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막상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근처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같았다.


빈 사료 그릇을 가득 채워 줬다. 그 후 책 구경하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몇 시간이 흘렀다. 밖으로 나가보니 사료통이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얼굴 한 번만 보여주고 가지...



4.

책방지기의 특권! 손님으로 왔을 땐 보지 못했던 계산대 안쪽 공간들을 찬찬히 구경했다. 위쪽 서랍엔 다양한 필름과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었다. 나도 특별한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 필름카메라를 들고 왔는데 괜시리 반갑게 느껴졌다. 카메라 하나하나 살펴보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 참았다..



5.

지난 동반지기 책방지기 날엔 공을 쳤었다. 오늘 또한 출발 때부터 날이 흐리더니, 점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오늘 역시 찾아주는 손님이 없어 외롭고 슬픈 하루였다. (……왜 매번 내가 운영할때만ㅠ) 다행히 끝나기 1시간쯤 전, 사장님의 친구분이 찾아주셔 예쁜 연두색 표지의 책 한 권을 사 가셨고, 첫 판매를 해냈다.



6.

독립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언파운드북스의 서재엔 제목부터 신선하고 통통 튀는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서재를 마주할 수 있는 게 독립출판 책방의 큰 매력인 것 같다. 옛날에 한번 제목만 보고 시집을 구매한 적이 있다. 왓챠피디아에 기록하려 해도 안 나오는 독립 출판 시집. 왓챠 기록이 쌓이면 빅데이터가 내 예상 평점을 알려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평점에 기대게 되었다. 높은 예상 평점이 나오면 읽기 전에 기대가 커지고, 반대는 낮아지고. 그치만 독립출판물은 이런 선입견 없이 깨끗한 도화지 상태에서 읽게 된다. 이렇게 읽은 책이 마침 취향이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미리 예상했던 행운보다 우연한 행운이 더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것처럼.



6.

이걸 쓰는 지금 벌써 퇴근이 30분 전으로 가까워졌다. 정말 뭐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더 훑어보고 싶은 책들도 많았는데... 다음엔 맑고 사람 붐비는 날의 책방지기가 되어, 손님들도 많이 만나 뵙고 이야기하고 싶다. 외롭지 않은 책방지기.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책



귀여운 프랑스어 그림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책방주인으로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